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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번역가가 되고 싶었다.-2

영한, 영미문학이 아니라 한영, 한국문학 번역가

by Writer Choenghee

영어가 이유 없이 운명처럼 다가와 좋아졌던 나는 영어교사 말고도 번역가도 되고 싶었다. 치기 어린 시기여서인지, 아직 철이 덜 들어서인지, 지독한 현실을 아직은 모르는 순수함이 넘쳐서인지는 몰라도 더 높은 목표, 더 사명감이 필요한 곳에 내 모든 열정을 불태우고 싶었다. 하얗게.


번역가가 영어로 쓰인 영미문학 원서를 한글로 번역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해 외국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 당시 알게 되었다. 지금은 당연한 얘기지만 어릴 적에는 이상하게도 번역가 하면 영어를 한글로 번역하는 번역가밖에 생각하지 못했었다. 어린 만큼 다양한 것에 호기심이 많았지만 그만큼 알고 있는 것은 많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갖고 있는 능력과 가능성, 한계, 그리고 우리나라 번역가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는 무관하게 더 거창해 보이는, 더 어려워 보이는 한영, 한국문학 번역가가 되고 싶었다. 우리나라의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일이 영미문학을 알리는 것보다 더 우리나라에 우리 사회에 공헌하는 것 같아 보였으니까. 우리 한글을 영어로 옮기는 영작이 더 어려워 보이고 멋있어 보였으니까. 이렇게 당시 순수했던 시절 나의 욕망을 글로 쓰니 뜨끈함이 얼굴 위로 올라온다. 글을 쓰는 와중에도 발행이 망설여진다. 발행 걱정은 글을 다 쓰고 더 해보기로 하자.


결국 번역가가 아니라 영어교사가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즐기는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번역은 나의 직업으로서는 부적합하다는 것을. 영어교사가 된 이유는 이것 말고도 많지만 여기서는 더 쓰지 않기로 한다.



2014년도부터 나의 교직생활은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2년 후,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도 함께.


당시 당연히 우리나라 번역가가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반대로 우리 한국문학을 번역한 번역가가 영국인이라는 사실이 실로 흥미로웠다. 얼마나 한국어에 능통했으면 영국인이 우리나라 책을 번역했을까부터 시작해 데보라 스미스라는 번역가에 대한 여러 상상의 나래를 펼쳤더랬다.


교직에 있으면서 이 뉴스를 접했을 때 잠시 번역가에 대한 꿈을 꿨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데보라 스미스 같은 번역가가 되고 싶었었는데. 한국문학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었던 갑작스러운 사명감까지 갖게 된 어린 소녀가 있었다. 그렇게 추억에 빠지는 순간이 이따금씩 있다 바쁜 현실 속에 파묻히곤 했다.


영한 번역가는 그들이 쓴 에세이 책도 수도 없이 많은데 한영번역가는 영국인이 <채식주의자>를 번역할 정도로 찾아보기 힘든 걸까. 우연히 만나게 된 책 <하지말라고는 안 했잖아요?>을 통해 그 이유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척박한 그들의 현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몇 안되는 그들이 있다 우리나라에.




무지했지만 순수해서 현실과도 동떨어진 꿈을 당당히 움켜쥐고 있던 어린 시절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쑥스러웠다. 그렇지만 결국 발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쑥스럽지만 당시의 '나'도 마음에 든다.



*글 제목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책 <하지말라고는 안 했잖아요?>의 리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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