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를 읽고-1. 그 현실에 한숨만...
2016년 한강 작가와 데보라 스미스 번역가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후, 2022년 또 한 번 한국문학의 부커상 관련 뉴스로 떠들썩했었다.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이 부커상 국제 부문 1차 후보에 동시 지명된 것이다. 이 두 작품을 한 번역가가 영역하였는데 그가 지금 리뷰하려는 책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를 쓴 안톤 허이다. 부커상 역사상 한 해에 두 권의 책을 올린 세 번째 번역가이자 유색인종으로서는 첫 번째 번역가란다. <저주토끼>가 최종 후보에 진출하면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첫 번째 한국인 번역가이기도 하다.
책의 리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전업 번역가는 몇 명으로 짐작되는가. 책에 따르면 전 세계(강조하지만 '국내'가 아니다)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일 년에 몇 권의 영역 한국문학이 출판될까. 현재 영어권을 통틀어 일 년에 한국문학 작품이 열 권만 되어도 많이 출판된 것이라고 한다.
학창 시절 잠시 꿈으로 품었었던 한국문학 번역가를 본격적으로 펼쳐보고자 마음먹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솔직하게 말해 아찔하다. 아마 번역가들이 말하는 한국문학을 번역하기 전까지의 8~10년이라는 죽음의 계곡에서 여러 번역 관련 공부나 일, 영어 강의 등을 하면서 한국문학 번역 일을 따내려고 열심히 그러나 불투명한 미래를 보며 우울하게 헤엄을 치고 있거나 아니면 결국 번역이라는 꿈을 아얘 접고 다른 진로를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죽음의 계곡이라는 그 기간 동안 많은 번역가 지망생들이 이탈한다고 한다.
인생을 살면서 자신이 선택하지 않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 후회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그 길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하지만 나는 가보지 않은 한국문학 번역가의 길에 대해 책을 통해 알고 나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 버렸다. 더 이상 솔직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책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을 읽기 전까진 번역업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래와 같이 생각했기 때문에. 책 속에 내 머릿속이 하나도 틀림없이 활자로 쓰여 있었다.
업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한국문학번역원이 문학번역가를 고용하거나 혹은 에이전트처럼 한국문학 작품의 저작권을 해외 출판사들에 팔고, 번역가들은 수동적으로 번역원에서 번역 일을 받아 작업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건 큰 오해다. (중략)
한국문학번역원은 국제 행사 개최, 에이전트나 번역가가 성사시킨 계약에 대한 금전적 지원 등 실질적 중요성은 있어도 번역가에 비하면 오히려 훨씬 수동적인 역할을 맡는다. 실은 어떠한 유의미한 출판 세일즈 활동도 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진실에 가깝다.
- 책 22, 23쪽에서
적극적으로 책을 발굴하고, 샘플을 만들고, 해외 출판사에 책을 어필해서 저작권을 판매하는 일까지 번역가가 한다고. 해당 작가에게 에이전트가 있다면 에이전트들이 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작가들이 에이전트의 관리를 받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한다. 아래를 읽고 한국문학 번역가의 번역 일을 수주하는 과정을 자세히 알아보자.
이 작업은 속된 말로 100퍼센트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단 번역하고 싶은 책이 있으면 저작권자인 한국 출판사에서 해당 도서에 대한 번역 허락을 받는다. 그런 다음 샘플 번역을 제작하고(길면 좋다고도 하는데 영어로 5,000단어쯤이면 적당하다) 제안서를 쓴다. 그러고 나서 영어권 출판사에 제출하고 몇 개월을 기다린다. 무려 일 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다.
제안서가 영미권 편집자의 마음에 들었다면 이제 물꼬가 트인다. 영미권 출판사에서는 한국어 사용자에게 해당 도서에 대한 보고서를 의뢰한다. 영미권 편집자는 이 보고서 및 내가 쓴 제안서와 샘플 번역으로 자신이 속한 출판사의 집행부, 마케팅부 등 모든 부서를 설득한다.
"영미권 독자는 번역문학을 읽지 않는다"는 인식이 만연한 상황이라 신경숙, 한강, 박상영 같은 슈퍼스타 작가들의 작품조차 매 출판 단계에서 이러한 길고 힘겨운 설득 과정을 거친 후 채택된다. 샘플 번역은 기본이고, 여러 단계의 설득 과정에서 수많은 도서 리뷰, 인터뷰, 이메일을 중간에서 쓰고 번역하고 설명하는데 이 모든 작업은 무상으로 하는 것이 관례다.
- 책 20, 21쪽에서
결국 한국문학 번역가는 번역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한국문학 작품을 번역하기 전에서부터 해야 할 일이 엄청 많은 것이다. 적나라하게 펼쳐진 각박한 현실에 맨땅에 헤딩이라는 표현은 적확하다. 그것도 무보수로. 그 엄청 많은 일들을 한국문학 출판사나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사전 진행을 하면 이후 번역만 번역가가 맡아서 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 모든 것을 번역가가 담당해 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책에는 그의 그간의 투쟁과도 같은 한국문학 번역기가 약간의 울분이 섞인 어투가 들리듯 적혀 있다. 예를 들면,
영미권에서 한국문학 출판이 양적으로 부진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여전히 인지도가 낮은 한국문학의 현실, 영미권 출판계의 고질적인 백인 우월주의(그나마 프랑스 문학이나 이탈리아 문학은 영미권에서 많이 번역되는 편이다), 한국어와 영어 간의 언어학적·문화적 거리 등의 원인이 있다. 게다가 번역가가 개인 차원에서 책 한 권의 번역 권리를 얻으려면 엄청난 장벽을 넘어야만 한다. 단 한 권의 책을 팔기 위해, 세계무대에 존재하는 이 모든 장벽을 넘기 위해 번역가는 힘겹게, 거의 혼자서 외로이 투쟁한다.
그에 비하면 번역을 하는 일 자체는 오히려 쉽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번역 계약을 따오는 과정은 정보의 불균형 속 베일에 가려진 해외 출판업계에서 매일같이 빛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나 매한가지다. 장벽을 넘는 일, 다시 말해서 번역 출판 계약을 따내는 작업이야말로 내 하루의 일상 가운데 8할을 차지한다. 요약하면 번역 계약을 성사시키는 작업에는 번역을 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 책 19, 20쪽에서
한국문학을 해외에서 팔려면 재능 있는 번역가가 그 작품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 수많은 영미권 작품과 경쟁할 수 있도록 작품의 매력을 어필해야 한다. 이건 물론 에이전트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영미권 에이전트의 한국어 실력은 작품을 읽을 정도가 못 되고 국내 에이전트는 타인을 설득해 낼 정도로 영어가 유창하지 못하다(국내 에이전트와 해외 에이전트가 팀을 이루면 이 점은 극복 가능하다). 따라서 에이전트가 있다 해도 번역가는 해외 출판사와의 회의에 자주 투입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당수의 프로젝트에 에이전트가 아얘 관여조차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 책 43, 44쪽에서
그렇게 힘들게 무보수로 일을 해도 번역 일이 많이 들어온다면 그나마 참을만하겠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일 년에 한국문학 작품이 10권만 출판되어도 많이 출판된 거라고 하니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한국문학 번역가로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일었다. 한국문학과 한국문학을 넘어 문학 자체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엄청난 크기여야 가능한 일일 것이란 생각에 이르렀다. 이에 관해 안톤 허가 가진 그 사랑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어릴 적부터 소설이 좋아 교과서 등의 학습서가 아닌 소설책을 줄곧 들고 읽고 있는 그를 향해 공부 안 하고 뭐 하냐며 혼을 내던 선생님들과 문학의 길을 걷고자 했던 꿈을 끝까지 반대하시던 부모님이 계셨다. 수많은 반대에 결국 그가 원하지 않던 법학과에 진학하게 되지만 법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중 참 드물게도 불문과를 복수 전공한다. 추후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영문학을 공부했던 안톤 허. 한국문학에는 뒤늦게 빠지게 되었다고.
결국 그는 어릴 적부터 문학을 좋아하던 그 마음을 조금씩 키워 이제는 맨 땅에 헤딩을 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른 건 아닌가 싶다. 헤어질레야 이제 헤어질 수 없는, 영원을 약속해 내고야 마는. 한국문학 번역이라는 그 험난한 과정을, 죽음의 계곡을 건너 기어코 해내고야 마는 사람은 문학에 대한 열렬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는 없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업 번역가가 될 만큼 보수가 넉넉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는 이 에세이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뿐만 아니라 소설까지 썼다. 즉 번역가이기도 하지만 작가이기도 하다. 흔히 사람들은 작가는 창작이라는 예술을 하는 사람, 번역가는 예술이라기보다는 기술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번역가들은 출판계에서 아주 하위 서열에 속한다고 한다. 노동에 대한 금전적 대우에서, 아직도 표지에서 번역가의 이름이 표시될 권리와 번역에 합당한 비용과 선인세를 청구할 권리 그리고 로열티를 1퍼센트라도 청구할 권리를 위해 투쟁 중이라는 현실에서 알 수 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번역가에 대한 시선과 실제적 대우가 각박했다.
이러한 세상과 맞서 그는 번역가로서의 실제적 경력과 경험, 그리고 읽은 책들을 통해 현세상을 뒤집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응수한다.
번역가는 작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작가가 번역가입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비밀스러운 로망 따위는 없습니다. 창작은 제 번역 일의 일부일 뿐이고, 번역 일도 결국 제 독서 행위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저의 가장 중심적이고 근본적인 정체성은 독자로서의 정체성이고,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거기서 비롯됩니다. 제가 이런 번역가인 것, 이런 작가인 이유는 바로 독자로서의 자부심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할 수 있는 그 그리고 번역가로서의 투쟁적 삶이 대단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직접 겪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들의 연속이었고 그런 삶을 살아보지 않은 편에서 막연하게 번역가들의 삶을 생각하고 상상해 왔기에 그의 말들은 더욱 새롭게 와닿았다. 그렇기에 더 곱씹어 읽고 나의 글로 다시 써볼 수밖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다음 글로 이어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