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실 Jul 02. 2024

가장 중요한 것

뭣이 중헌디-산후조리원

“저것을 꺼주실 수도 있나요?”라고 말하며 아기 엄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천장에 붙어있는 베베캠이었다. 베베캠이란 CCTV처럼 아기 모습을 촬영해 전달함으로써 휴대폰 앱을 통해 아기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마련된 장치다.

“우리 조리원에는 최첨단 베베캠이 있어서 신생아실 바구니 안에 있는 아기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외부에 있는 아기 아빠나 부모님께서도 보실 수 있고요.”라며 나는 베베캠 자랑을 늘어지게 하려던 참이었다.  
  

내가 일하는 산후조리원은 다른 직장과 달리 주로 주말에 바쁘다. 자신들이 조리할 곳을 미리 상담하고 예약하려는 방문객이 많기 때문이다. 

정신없는 주말을 보낸 뒤 창을 타고 들어오는 은은한 가을 햇살을 느긋하게 맞고 있던 월요일 오후 서너 시쯤, 송편만큼 부른 배를 내밀고 아기 엄마가 들어왔다. 그녀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고 출산 후 조리할 곳을 고르기 위해 상담을 받으러 온 산모였다.     

이번에 내가 입사한 산후조리원에는 아기 침대마다 베베캠이 설치되어 있다. 직장에서 일하는 아기 아빠나 아기를 보고 싶어 하는 조부모도 승인만 받으면 얼마든지 영상을 볼 수 있다. 면회를 차단할 목적으로 도입된 최첨단 장치지만 신생아실 직원을 감시하는 목적도 있다. 많은 산후조리원은 이 기계를 설치했고 그런 편리함을 내세워 산모를 유치하느라 바쁘다. 상담을 받으러 온 대부분의 산모는 다른 설명을 하기도 전에 캠이 있느냐 없느냐를 물어본다. 혹은 두 눈을 두리번거리며 캠을 찾기도 한다.        
  

사실 나는 백일 사진도 돌 사진도 없다. 남동생들은 물론이고 나보다 먼저 태어난 언니들도 다 찍은 기념사진인데 나만 없다. 자라면서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놀림을 진짜로 믿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진짜 엄마를 찾아가겠다고 울면서 보따리를 싼 적도 있다. 

“에미야, 어린것 사진은 찍어주지 말거라!” 할아버지는 엄마께 지엄한 명령을 내렸단다. 셋째 딸을 낳은 엄마는 서운했단다. 오죽 섭섭하면 그러실까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서운함은 어쩔 수 없었단다. 첫 돌이 지나고 여러 달이 지나도록 지엄한 명령이 해제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엄마는 나를 안고 시내 사진관에 가서 할아버지 몰래 겨우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내가 두 돌이 지나자 할아버지는 엄마를 따로 불러 이런 말을 했다.

“사진이라는 게 사람의 혼이 허연 종이에 박히는 것일 텐데 아이가 저렇게 약하게 태어났으니 행여 잘못되기라도 했더라면 에미가 사진을 품고 얼마나 울었겠느냐.” 할아버지의 속마음을 알고서 그제야 엄마는 서운함을 물렸단다.       
  

베베캠을 보지 않아도 안심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산모에게 던졌다. 첫째 아기 때 캠을 경험해 봤다는 아기 엄마는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게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것 같아요. 혹시라도 아기에게 전자파가 흐르면 어쩔까 싶기도 하고, 만약 무언가가 자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아기가 안다면 좋아할 것 같지도 않구요. 그것보다는 아기 보시는 분들의 마음이 저 카메라보다 중요하지 않겠어요?”라며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지어 올렸다. 그리고 선뜻 예약 카드에 사인했다. 그날 아기 엄마가 돌아간 후,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했던 그 말이 입 속에서 걸어 나와 밤이 깊도록 나를 조랑조랑 따라다녔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 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398781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