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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실 Dec 22. 2024

무릎을 위한 변주

무릎과 미니스커트

늘 못마땅했다. 내 몸은 날씬한 상체에 비해 하체가 무지 퉁퉁하고 튼실했다. 통나무 같은 다리를 쭉 펴고 끌탕을 할라치면 친정엄마는 그게 좋은 것이라며 위로 하곤 했다.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짧은 치마를 대놓고 입지 못하는 일이 처녀 적 나로서는 여간 불만이 아니었다. 

영화 속 외계인 ET가 먼 인류의 모습일지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 항상 두뇌만 사용해서 머리는 커지고 앉아만 있는 하체는 가늘어져 우리의 모습이 흉측하게 변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때는 우람한 다리가 아름다움의 표상이 될 거라는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불만이 한방에 사라지지는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았던 여인의 쭉 뻗은 늘씬한 다리와 다소 은밀해 보이는 무릎선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하얀 버선목 위로 매끈하게 올라간 여인의 뽀얀 다리. 속치마를 살며시 걷어 올리면 종지를 엎어 놓은 듯한 무릎 곡선이 박속같이 하얬다. 그 선정적인 무릎 골에 남정네들 가슴 좀 뛰었을 터이다.
  누군가의 무릎을 정복한다는 것은 상대의 마음마저 빼앗는 것일지 모르겠다. 주인의 무릎에 냉큼 올라가 앉은 고양이만 봐도 그렇다. 동그란 눈알을 굴리며 앙큼한 목소리로 ‘야옹’하는 자태라니.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막대 사탕을 물고 어리광을 부리는 손자는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 자체다. 조선의 기생들도 돈푼깨나 있는 한량의 무릎을 장악하려 콧소리를 내며 공을 들였을 터이다.
  구한말까지만 해도 여인네 치마 길이는 정강이를 덮을 정도였다. 그랬던 것이 어느 날 치마 끝이 무릎 위로 깡충 올라갔다. 이름하여 미니스커트. 무릎 위로 한 뼘 정도 올라가 허벅지가 보이는 치마다. 그것은 센세이션을 넘어 일종의 도발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7년에 가수 윤복희가 최초로 입었는데, 덕분에 속바지와 속치마에 가려 햇빛 구경 한번 못한 무릎이 은밀한 선정성을 깨고, 마침내 무시로 찬란한 해를 마주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배꼽까지 내놓고 사는 세상이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장발과 더불어 단속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드라마에서 보면 여성에게 프러포즈하는 남성은 한쪽 무릎을 자연스레 꿇고 여성을 향해 마음을 전한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오금에 힘이 빠져 하마터면 나뒹굴 뻔했던 순간이 누구에게라도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조선의 왕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나라에 무릎을 꿇고 굴욕적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로 나라를 들어 바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조선의 형벌 중에는 압슬형이라는 벌이 있었다. 죄인을 무릎 꿇게 하고 그 위에 무거운 물건을 올린 후 사람이 올라타서 압박을 가함으로 무릎관절과 다리뼈가 으스러지게 하는 형벌이었다. 자백을 받기도 전에 쇼크로 죄인이 사망하기도 할뿐더러 살아남는다 해도 서지도 걷지도 못하게 되었다. 이를 참관한 영조 임금이 너무 가혹한 형이며, 만약 불구가 되면 조상에 제사를 지낼 수 없다는 이유로 주리형周牢刑과 함께 폐지했다고 전한다.
  인간이 두 발로 서고 걷는데 무릎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복잡한 관절이면서 상체 하중을 지탱한다. 슬개골은 무릎의 앞쪽에 위치해 관절을 보호하며 아기일 때는 부드러운 연골이었다가 4세 전후로 딱딱해져 골화된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다른 동물과 달리 다리를 곧게 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각도를 조절하여 구부릴 수도 있다. 얼마 전 인터넷 기사를 보았다. 다리를 구부리고 걷는 기존의 로봇과 달리 중국 올카-1 휴머노이드 로봇은 무릎을 곧게 펴고 걸을 수 있다는 기사였다. 이런 구조는 경사로나 계단 같은 환경에 좀 더 인간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고 한다. 문득 계단 오르내리기를 힘겨워하는 엄마가 생각났다. 구부정한 것 같은 엄마 무릎도 얼핏 뇌리를 스쳤다. 구순을 앞둔 엄마는 조금이라도 먼 걸음 할 때면 보행 보조기의 도움을 받는다. 

오랜만에 거실 바닥에 앉아 엄마와 나란히 다리를 뻗어본다. 어릴 적 베고 누워 옛날이야기를 듣던 다리를 자세히 굽어보니 온갖 풍상의 세월을 겪느라 살이 내렸다. 

굵고 튼실한 내 것의 반 정도로 가늘다. 진화 전 로봇의 다리처럼 구부정하다. 근육이 빠지고 인대가 닳은 슬개골은 종지가 아니라 작은 밥공기를 엎어놓은 듯 볼록한 뼈 모양이 또렷하다. 엄마 슬하에서 어리광 피우던 내 어린 시절이 늙은 무릎 위로 그림자처럼 여릿하게 오버랩된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식을 위해 한 번은 꺾여 봤을지 모를 엄마의 무릎에 잠시 손을 얹고 경건한 마음으로 온기를 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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