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건너에서 희뿌연 무언가가 계속 펄럭이고 있었다. 우이동 계곡 아니면 백운계곡이었을 게다. 친구 두서넛과 더위를 식히려 찾아간 곳이었다. 한여름 피서객을 맞이한 계곡은 여느 계곡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와 친구들은 아이스박스 통에서 꺼내 파는 막대 아이스크림을 사서 입에 물고는 줄지어 기어가는 개미 떼 같은 인파에 섞여 상류로 올라가던 중이었다. 계곡 폭이 그리 넓지 않은 탓에 맞은편에서 피서하는 사람들의 광경을 건네다 볼 수 있었다.
언뜻 보아도 쉰이 좀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아래는 무릎까지 오는 하얀 속바지 차림이었고 윗옷 또한 거의 속옷에 가까운 민소매 차림이었다. 머리는 짧은 파마였는데 땀이 흘러서였는지 손수건을 돌돌 말아 이마 위로 묶었다. 시원한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평상 위에서 아주머니는 그야말로 음악과 혼연일체가 된 상태였다. 둥근 해가 하늘 한가운데 떠 있는 벌건 대낮이었다. 상 위에는 먹다 남은 음식들이 식어 쌓여 있었고, 막걸리 병 몇 개가 바닥에 쓰러져 널브러져 있었다. 확성기를 틀어 놓은 듯한 카세트 라디오 스피커에서는 계곡을 들썩거리며 노래가 쩌렁쩌렁 퍼져 올랐다.
노랫소리에 맞춰 발을 구르고 엉덩이를 양쪽으로 격하게 흔들고 양팔을 하늘 높이 찔러대며 아주머니는 온몸을 연신 흔들어댔다. 흔들 때마다 타이어처럼 띠룽띠룽한 옆구리 살이 파도치듯 출렁거렸다. 아주머니는 마치 정지가 안 되게 고장 난 태엽 인형 같았다. 일행인 듯한 또 다른 여자들도 거의 같은 옷차림으로 춤사위에 맞춰 손뼉을 치며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때 카세트에서 나오던 노래는 강변가요제 대상 곡인 「젊음의 노트」였다. 자그마한 체구에 외국물이 잔뜩 묻은 듯한 이국적 외모로 노래를 부르던 여대생 가수는 아주 다부져 보였다. 가수는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부분에 유독 강한 악센트를 주었다.
아주머니 모습을 보면서 내 엄마가 아니라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여가수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찬 여가수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얼굴이 순간 붉어졌다. ‘안갯속을 걸어봐도 채워지지 않는 나의 빈 가슴.’이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이 곡은 젊은 날의 고민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고 조금은 철학적으로도 들렸다. 계곡을 한참 올라가서까지도 다부진 여대생의 목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우리를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아, 술이 그 아주머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젊은 시절 이루지 못한 꿈이 그녀를 막무가내로 흔들게 했을까. 그도 아니면 여자가 나이 쉰 살을 넘기면 세상 무서운 것이 없어져 누구라도 그렇게 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던 그때 나는 여가수 나이와 엇비슷한 스물세 살이었다.
쏜 화살같이 날아간 시간은 나를 무서운 것 없는 나이 쉰을 훌쩍 넘긴 아줌마로 만들어 놓았다. 귀밑머리 새치가 성가셔진다는 친구와 도봉산을 찾았다. 막바지 장맛비로 불어난 계곡물이 등산 내내 청량한 소리로 귀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초록이 지천이라 네모난 회색 건물에 지쳤던 내 눈도 오랜만에 호사를 누렸다. 올라갈 때는 몰랐던 계곡 음식점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웅얼웅얼 들렸다. 엉성한 가름막 가까이 빠끔히 눈을 가져가 보니 머리가 허연 백발노인들이 평상 서너 개에 나뉘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몇몇 할머니들은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기도 하고 꽃 모자를 살포시 머리 위에 얹어 쓰기도 하며 각자에 걸맞게 멋을 부렸다. 거기에 질세라 할아버지들은 남색 바탕에 노란 줄무늬로 포인트를 준 티셔츠를 입거나 화끈한 오렌지색 남방을 입어 분위기를 맞췄다. 그런데도 감추려야 감춰지지 않는 얼굴의 주름을 보아하니 어림잡아 일흔은 넘어 보였다. 서로 나누는 말투나 거리낌 없는 행동을 보아하니 아마도 초등학교 동창 모임인 것 같았다. 이런저런 유행가 두어 곡이 계곡물을 따라 흘러오고 흘러갔다. 잠시 후 흥에 젖은 젓가락 장단에 맞춰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젊음의 노트」그 노래였다. 젓가락 장단은 그럴싸했으나 어르신들의 느릿한 목소리는 흥을 따라잡지 못했다. 30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여가수의 당찬 목소리는 저만큼 힘차게 달려가고 있는데 어르신들의 목소리는 직직 늘어난 카세트테이프처럼 뒤처지고 있었다. 일흔을 넘긴 노인들이 박자를 무시하고 부르는 이 노래가 그때와는 좀 다르게 다가왔다. 진정성과 애달픔에 슬픔까지 있어 보인다고나 할까. 어르신들의 노트에는 못다 한 청춘의 사랑을 비롯해 말로 다 하지 못한 삶의 질곡들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7080 주점 앞에서 흔들어대는 바람 넣은 광고물처럼 막춤을 추던 그 아주머니 나이 언저리에 내가 서 있다. 산에서 내려오던 친구가 물었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라면 가겠느냐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젊음이 제아무리 좋기로서니 안갯속같이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무턱대고 달려가는 것을 또다시 하고 싶진 않았다. 새삼 내 젊음의 노트를 열어보니 이렇다 하게 써 놓은 것도 그려놓은 것도 없다. 굳이 써넣으라고 한다면 딸 하나 아들 하나 남편 하나. 딸아이가 절대로 알 리 없는 어느 계곡을 찾아가 입은 듯 벗은 듯한 옷차림으로 고장 난 태엽 인형처럼 그 노래에 맞춰 나도 몸을 마구 흔들어볼까. 아니면 칠순 노인들 평상에 앉아서 젓가락 장단이라도 같이 하며 어르신의 노트를 슬쩍 훔쳐나 볼까. 그렇게라도 해야 별것도 없는 내 빈 노트에 대한 억울함이 반분이라도 풀리려나.
계곡을 내려오는 동안 내 노트의 하얀 지면이 떠오르고 유독 악센트를 넣어 부르던 ‘내 젊음의 빈 노트엔 무엇을 채워야 하나’라는 마지막 노랫말이, 되돌이표 모드로 고장 난 카세트테이프처럼 계속해서 나를 질질 따라붙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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