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망고 먹는 법을 검색했다. 가장 가운데 깊은 곳에 씨가 있으니 대략 삼분의 일 지점을 칼로 썰으란다. 가르쳐준 대로 썰어놓은 망고를 쟁반 위에 올려놓고 바둑판 모양으로 속살에 칼집을 넣는다. 이때 껍질이 터지지 않도록 세운 칼끝에 적당한 힘을 주어 작업을 해야 한다. 타원 모양으로 재단된 망고를 두 손으로 감싸 쥔다. 망고 양쪽 끝을 엄지와 검지로 붙잡고 받쳐 든 나머지 세 손가락에 힘을 주어 배가 뒤집히도록 껍질 바깥쪽을 쑥 밀어 올린다. 그러면 과육이 볼록하게 올라오면서 깍두기 모양으로 벌어진다. 다됐다. 이제 티스푼으로 똑똑 떠먹기만 하면 된다. 부드럽고 달달한 맛에 껍질 안쪽에 붙어 있던 마지막 살점까지 박박 긁어먹었다. 망고는 옻나뭇과(科) 과일이라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껍질을 조심하라고 나와 있었다. 알레르기는 없지만 꺼림칙해 냉큼 손을 닦았다. 애플망고 몇 개를 그렇게 해치우고 나서 부른 배를 한참 동안 두드리다가 쟁반 위를 보았다. 탱탱했던 껍질이 그새 사과 색을 잃고 주글주글 말라가고 있었다. 속을 몽땅 내어주고 가죽만 남아 벙벙하게 엎어져 있는 껍질을 보다 돌연 서글퍼졌다. 끼고 안아 배불리 먹여 놓았더니 젖만 똑 떼어먹고 앵돌아져 잠들어 버린, 갓난아기에게 버림받은 어미의 빈 젖가슴 같았다. 여름이 지천이었던 어느 한 날, 모처럼 근교에 있는 식당으로 점심 나들이를 했다. 옹골지고 단단한 아이를 둘씩 길러낸 여자들이 사치 좀 부려보자며 선택한 곳이었다. 식당 밖에는 조금 전 먹은 음식처럼 정갈하게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담장 주변으로는 요염을 떨며 주홍빛 능소화가 피어 있었고, 에움길 가에는 노란 장미가 정원사의 손길을 받으며 까칠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소나무도 위풍당당하게 가지를 뻗치고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유독 모과나무가 많았는데 가지마다 내 주먹만 한 모과를 여러 개씩 달고 있었다. 지인이 기이한 물건이라도 발견했다는 듯 ‘어머나!’라는 외마디와 함께 멀리 무언가를 가리켰다. 여자의 손길을 따라간 곳에는 속이 빈 모과나무 한 그루가 외따로 서 있었다. 멀리서 보기엔 모형 같기도 했다. 진짜 나무일까 궁금해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았다. 속이 빈 나무는 살아있는 진짜였다. 키는 작았지만, 수령은 오래됐는지 다른 나무에 비해 껍데기는 더 거칠고 유난히 메말라 보였다. 살짝 힘을 주어 밀면 곧 땅으로 푸석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나뭇가지 끝에도 아기 주먹만 한 모과 몇 알이 양분을 빨아먹으며 착실하게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가지 끝에 매달려있는 초록 열매가 아웅다웅 섞여 엄마 젖 나누어먹고 자랐던 우리 형제들만 같았다. 물기 없는 빈 껍데기 어디에 남은 힘이 있어 단물을 저 끝까지 밀어 올려 주는 것일까. 늙은 저 나무는 내년 여름에도 모과를 매달 수 있을까. 죽어가는 순간까지 제 일을 감당해 내는, 아무짝에 쓸모없을 것만 같은 껍데기가 존경스러웠다. 그날 밤, 늦도록 쏘다니다 돌아와 누운 잠자리에서 새삼 깨달았다. 껍질이든 껍데기든 아무리 변변찮은 천덕꾸러기 일지라도 세상 모든 외피는 오로지 알맹이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풋것 먹고 배앓이할 적,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배 문질러주던 엄마 얼굴이 어둠 속에서 여릿하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