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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실 Nov 09. 2023

연회색 악수

23년 아르코 발표지원 선정-가을, 11월의 색깔

회색은 11월의 나무다. 가을 끝자락을 물고 있지만 서둘러 온 첫눈에게 못 이기는 척 곁을 내주고, 다 떠나보내고 돌아서서 헛헛한 속울음 삼키는 늦가을 나무다. 회색은 맛으로 치자면 참외와 오이의 중간으로 달지도 싱싱하지도 않은 잘못 고른 멜론 맛이랄까. 그 색은 결코 타협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결점의 색 하양과 절망과 침묵의 색 까망이 섞이는 사이에 있다. 타고 남은 재의 빛깔이라는 그것은 무채색으로 모호함과 어눌한 느낌을 준다. 내가 갖기는 싫고 그렇다고 남 주기는 아까운 남사친이라고나 할까.  허무함과 신비감이 뒤섞여 돌아가는 듯한 그것은 yes와 no 사이에서 서성이는 어정쩡한 이미지로 결정 불가의 표본이기도 하다. 그래서 ‘회색인간’이라는 말도 생겨났으리라. 그런 미적지근함 때문에 회색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적도 있다. 겉으로야 이래저래 탐탁지 않은 색이지만 안으로는 감출 수 없는 로맨스와 침착하고도 격조 있는 지성을 품고 있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회색은 안나의 색깔이다. 『안나카레니나』에는 모든 여인의 남자 브론스키와 모든 남자의 여인 안나가 열차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 객차 입구에서 우연히 스친 안나를 본 브론스키는 한 번 더 그녀를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비단, 그녀에게서 풍기는 몸에 밴 귀족적 우아함이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상냥하고 부드러운 그렇지만 절제된 무언가가 있었다. 브론스키가 안나의 첫 모습을 그렇게 생각한 건 아마도 그녀의 회색 빛 눈동자 때문이었으리라. 안나의 눈동자는 겨우내 쌓인 흰 눈이 깊고 푸른 바이칼 호수에 비추어진 맑은 청회색이었지 않았을까. 그녀에게는 밤마다 펼쳐지는 러시아 귀족의 화려한 무도회 뒤에 ‘산문적’이라고 표현된 나이 차이 많은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 생긴 고독과 우울이 감춰져 있었으리라. 그것이 그녀의 청회색 눈동자를 통해 브론스키의 눈 속에 감지됐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녀도 길고 짙은 속눈썹을 들어 올리며 다정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연의 마주침이 운명이 되고 마는 순간이었다. 무도회에서 입었던 안나의 검정 드레스와 회색 눈동자의 지적인 조합은 브론스키를 꼼짝 못 하게 하는 매력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부럽긴 하지만 회색 눈동자의 소유자도 아니고 깻잎 한 장 두께의 지성도 갖추지 못한 내가 감히, 안나의 지적 로맨스를 흉내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회색을 여전히 결정유보의 색으로 남겨 방구석 모퉁이로 밀어놓고 싶지도 않았다. 외롭지도 어눌하지도 않은, 지성과 품격을 겸비한 이름을 회색에게 붙여주고 싶었다. 그러던 날에 최인호 작가의 소설 『공자』에서 이 모든 걸 넘어설 적절한 문장을 만났다.  

 제자 자공이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낫더냐고 공자께 물었다. 스승은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답했다. 자공이 “그렇다면 자장이 더 낫겠네요.”라며 공자님께 다시 물었다. 그러자 현자께서 대답했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여기서 공자님 어록 중 최고로 유명한 문장인 과유불급(過猶不及)!이 탄생한다. 이는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중용의 의미로 유가에서 극치로 삼고 있는 문장이다.   


정수리에 허연 머리카락이 늘어나서일까. 이제는 까다로움과 날카로움이 뾰족하게 올라오는 새치만큼이나 성가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아도 로맨틱 중년이 아니어도 전혀 섭섭하지 않다. ‘과유불급’이란 문장 하나면 족하다. 어차피 중간치 삶이란 것이 윷놀이 판의 개나 걸쯤 일 터. 연회색과 진회색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게 흔하디 흔한 우리네 인생일 까닭에서이다. 회색에서는 극으로 내 쏘지 않는 차분함과 깊이가 보인다. 회색 앙고라 머플러를 마지막 선물로 등을 돌린 남자가 있었다. 그의 눈빛은 제법 따뜻했지만 그 선물은 아마도 뜨뜻미지근한 관계를 청산하려는 의미였을 것이다. 만약 이제쯤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중용의 실천이라도 되는 양 미지근한 연회색 악수를 내밀 용기도 있다.  


 낮과 밤이 섞이는 퇴근 무렵, 희끄무레한 저녁이 내려앉는다. 여느 때야 새뜻한 달 하나가 떠오르길 바랐겠지만 이번만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성내지 않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닐까 말까를 고민하는 직장인인 내가 중용의 도를 겨자씨만큼이나마 깨우친 까닭에서일까. 직장생활의 날카로운 피로가 한 김 나간 숭늉 같은 회색에 섞여 후틋하게 녹아 풀어진다. 희끄무레함 속에서 남들이사 알 리 없는 수수한 미소를 허공에 대고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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