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닮고 싶은 수필가는 최민자 선생님이다. 그동안 선생의 작품집은 거의 다 읽었다. 작가적 사유 문장에 반해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던가. '이번에는 최민자 수필을 읽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고 또 했다. 연보라 표지의 《흐르는 것은 시간이 아니다》라는 새 책이 출간된 줄 내 진즉 알고 있었지만, 눈길도 주지 말아야지 했다. 그러나 어찌어찌 내 손에 닿은 책. 책꽂이에 무심하게 놓아두고 진짜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잠은 안 오고 지랄이야. 첫사랑 열병을 앓는 것도 아닌데 때아닌 청승이야. 책장 앞을 슬쩍 지나다 기어이 그 책을 꺼냈네. 이 글 하나만 읽고 말아야지, 이번에는 사진도 찍지 말아야지 했건만. 웬걸? 속도 없이 벌써 찍고 밑줄도 그었잖아. 자존심도 없이. 또다시 몰려드는 허탈감과 충만감. 미치지 않고서야 이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출현돼도 되는 것인가? 나는 도저히 안될 것 같은 허탈감. 읽어 내려가면서 채워지는 충만감이라니. 냉탕과 열탕도 아니고 조증과 우울증도 아니고. 이런 해괴한 상황과 맞닥뜨리니 그저 허허 웃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