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목소리도 굵어지지 않은 머스마 몇 명이 운동장 구석에서 무언가를 키득거리며 훔쳐보고 있었다. 그건 어제저녁에 있었던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사진이 실린 신문지 쪼가리였다.
파란색 수영복을 입고 환하게 웃는 아가씨의 굴곡 있는 자태가 철부지들 눈에도 아름답게 보였었나 보다. 내가 가까이 가자 그중 한 녀석이 제법 어른스럽게 한마디를 했다.
“너도 이렇게 될 거야.”
녀석의 그 한마디에 신바람이 난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엄마 화장대 거울 앞에 섰다. 이파리를 주르륵 훑어낸 아카시아 줄기로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파마하고 빨갛게 입술연지도 발랐다. 높은 뾰족구두도 신었다. 왼손을 옆구리에 대고 오른손은 얼굴 옆으로 올려 빙그르르 돌면서 미스코리아 포즈 연습을 했다. 거울 속에는 뒤뚱거리며 걷는 어설픈 미스코리아 한 명이 비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드레스를 입고 반짝이는 왕관을 쓴 채 무대 위에서 연신 웃음을 지어가며 손을 흔드는 꿈을 꾸었다.
머리카락 중간중간 희끗희끗해진 새치가 성가셔지는 나이가 되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년이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붙이고 초등 동창 모임에 나갔다. 누구네 부친상 모친상, 이런저런 문자가 오는 날이 잦아졌다. 상주와의 어릴 적 추억을 한 개 두 개 짜 맞추며 문상하러 간다. 마음이야 아직도 모여라 꿈동산이지만, 가는 세월을 어찌하랴. 어릴 적 내게 농담을 했던 머스마 정수리가 훤하다. 그 녀석, 세월만 먹고 눈치는 어디다 삶아 먹었는지 배실배실 웃으며 나보고 그예 한마디 한다.
“친구, 많이 늙었네.”
‘아무렴. 누가 아니래.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나?’
인정은 하지만 가슴속 한편에서는 게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온다.
다음에 문상 가서 그를 만나면 이렇게 앙갚음할까 보다. 다소 무례하지만, 고인께 용서를 구한 뒤 영정 사진을 가리키며 “너도 이렇게 될 거야!”라고.
뚜우 하는 소리에 휴대폰 문자를 들여다보니 또 누구네 부친상 소식이 떴다.
그런데 만약 이번에 그 사내애가 나보다 먼저 “너도 이렇게 될 거야.”라며 영정 사진을 가리킨다면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 나는, 어떤 연습을 해야 하는 걸까.
그날 밤 나는, 과연 무슨 꿈을 꾸게 될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아직 무엇도 연습할 엄두를 못 내는 나는, 화장대 거울 앞에 우두커니 서서 하얘진 머리카락만 가만히 쓸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