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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딸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by 박은실

소개할 책은 《세상의 모든 딸들》이다.

나란 사람이 늘 그렇든 완결을 짓는 책은 별로 없다. 이 책은 드물게 완독한 책 중 하나다.

책 읽기 전에...라며 마음 착한 저자는 책 설명을 이렇게 올려놓았다. 예습차원으로 읽어보고 책읽기를 시작한다면 계절의 흐름을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달이 차고 기울어지는 것을 보고 시간의 변화를 알았고, 그것에 따라 살아갔다. 특히 오늘날의 시베리아 지방을 근거지로 하여 2만 년 전에 후기 구석기시대 한복판을 살았던 사람들은 1년을 13개월로 나누었는데, 이 책의 원제인 《Reindeer Moon》은 '순록의 달'이라는 뜻으로 지금의 10월 정도에 해당된다. 봄의 3월을 시작으로 순서대로 나열하면 얼음을 녹이는 달, 월귤의 달, 망아지들의 달, 여행의 달,파리 떼의 달,매머드의 달,노란 잎의 달,순록의 달,눈보라의 달,오두막의 달, 굶주림의 달,포효의 달, 버려진 순록 뿔의 달이 된다.


***


플롤로그 또한 재미있다. 작가에게 주인공 야난이 빙의라도 되었던 것일까. 야난의 독백같은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몇몇 매머드 사냥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아주 대단한 내용은 아니다. 이야기 끝에 큼지막한 고깃덩어리를 얻는 내용은 더욱 아니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에 결혼 예물은 나오지만 여자들을 훔친 이야기는 아니고, 그 예물을 놓고 벌이는 말다툼은 나오지만 전쟁 이야기는 아니다. 내 이야기가 그다지 길지도 않고 지혜를 전달하지도 않을 것이다. 첫 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해준 이야기이고, 결말 부분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맺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시시할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 책은 후기 구석기시대 툰드라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수렵채집인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표지 제목 아래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라는, 적어도 서기 2,000년 이전에 한국에서 태어난 여자라면 한번쯤 호통쳐봤을 대사가 써있다.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세상의 모든 딸들이 눈물로 맹세하지만, 왜 끝내 엄마처럼 살게 되는 것일까?"

라고 나지막한 독백같은 문장도 나온다.



어디서 읽었었지?

"남자는 강하다. 여자는 거룩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내가 새삼 남녀평등이니 뭐니하는 구시대적인 발언을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은 강하고 거룩하다.

책에 나오는 인물표를 함께 올린다. 책을 읽는 동안 이 표를 한 백번은 들춰본 것 같다.



주요인물은 야난과 메리다. 메리는 야난의 여동생으로 엄마가 메리를 낳다가 죽는다. 두 여자아이가 감내해야하는 것이 추위와 배고픔만은 아니다.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늑대의 보호를 받기도 하고 정을 쌓기도 하는데...





현재 우리 사회는 모계사회가 되어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들 낳은 어머니가 위세를 떨던 시대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아들보다 딸과 근거리에 살며, 아들 월급은 모르지만 사위 월급은 아는 시대다. 우리 집은 그렇지 않다고 여기저기서 손을 드는 여성들이 있는 듯도 하다. 그렇지만 조금만 기다리자. 적어도 내 딸들은 나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니까.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명절 증후군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며느리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해마다 두 번씩 명절은 오고 해마다 명절 증후군도 최소 두 번은 오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땅의 모든 딸들이 조금은 위로받고 조금은 편안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 참고로 이 책은 1,2 두 권이다. 그러나 책장은 잘 넘어간다. 가끔 울컥하기도 하니 혼자 있을 때나 구석진 카페에서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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