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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장사

좋아하는 것들-바람 농담 달 처음

by 박은실

사업은 남의 돈을 가지고 하는 것이고, 장사는 내 돈을 가지고 하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농담처럼 말했다. 남의 돈이든 내 돈이든 두 가지의 공통 핵심은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출근 지하철 문이 닫히기 직전 빛의 속도로 뛰어가 탔다. 일곱 명씩 앉는 자리 가운데 빈자리가 보였다. 이 무슨 횡재인가. 냉큼 궁둥이를 붙였다. 가쁜 숨을 고르던 중 어디선가 글자 냄새가 마스크 필터를 뚫고 스며들었다. 모두 휴대전화에 코를 박고 있는 이때, 때아닌 활자 냄새라니. 내가 앉은자리 몇 사람 건너 앞에서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선 채로 조간신문을 읽고 있었다. 복잡한 출근 지하철에서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풍겨오는 활자 냄새가 습기를 밀어낸 초가을 공기 방울처럼 싱그러웠다.

인간이 감동하고 행복을 느끼는 요소는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 아니라고 한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신문사를 차린 애신의 전 약혼자 희성의 대사 “내 원체 무용無用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농담… 그런 것들.”처럼 먹고사는 일과는 전혀 무관한 것들이란다. 거기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처음’이라는 단어와 깎은 잔디 냄새, 티딕 LP 판 튀는 소리, 새 책 냄새, 토마토 꼭지 향기… 이런 무용한 유용有用을 더한다. 어차피 한 번 왔다 한 번 가는 삶. 허탕 치는 것보다는 뭐라도 남겨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호랑이도 가죽을 남기는 건 아닐까.

현재 시간 아침 9시 30분. 실내 온도 21도. 습도 50%.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창문을 활짝 열고 호호 불어가며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아메리카노에 헤이즐넛 시럽 두 펌프를 추가했다. FM 라디오에서는 쇼스타코비치의 「The second waltz」가 활발하게 흐른다. 이런 몇 가지 것들과 어쭙잖은 문장 한 줄을 길어 올린 나의 하루는 벌써부터 남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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