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눈공원 산책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 간밤에 내린 폭설로 질척 질척한 길을 따라 신호등 앞에 섰다. 집으로 들어가 버릴까? 스스로에게 물으며 잠시 고민을 했다. 마침 찬바람이 순간 불어와 뺨을 때렸다. 한번 더 고민을 했다. 그러는 사이 길 건너에서 포장을 치고 붕어빵을 굽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오늘 내린 반가운 춘설 덕에 붕어빵이 많이 팔리려나. 바로 옆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숍 창가에 많은 사람들의 포근한 실루엣이 펄럭이는 붕어빵 가게 포장과 대비되었다. 오늘은 붕어빵 수입이 커피숍 수입보다 많았으면 좋겠다는 오지랖 기대를 하면서 기왕에 나선 길 마음을 다잡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다행히 공원 산책로는 정비가 되어 미끄럽지 않았다. 눈에 눈을 뺏기며 평소 다니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출입금지 테이프가 쳐있었다. 그 구간은 미작업 구간인가 보다. 평소 다니던 길이라 익숙한데 조금 서운했다.
'그래, 산다는 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대부분지.' 마음속으로 위로하며 제설작업이 잘 된 구간으로 발을 옮겼다. 인생은 언제나 갈림길의 연속이었지. 그리고 상상 속의 못 가 본 길은 언제나 아름다웠지. 오늘 평소 못 가 본 길을 가봤다. 눈 오는 날이어서 였을까. 모든 풍경이 아름다워서 였을까. 생각보다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못 가 본 길이 꼭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는 자그마한 결론을 얻었다.
하얀 새가 날다 떨어지나 싶은 착각을 하게 하는, 부는 바람에 나뭇가지에 걸렸던 눈이 후드득, 땅바닥으로 떨어졌다.놀라 옆으로 비켜서다 돌아보니동물원 옆 화단에 나무가 쓰러져있었다. 법정스님의 수필 설해목이 생각났다. 하얀 새의 깃털처럼 가벼운 눈이 나무를 쓰러뜨리다니.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건 진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 나오는 길. 맑은 목소리가 들린다.
"당신이 옆으로 더, 더-" 제설작업이 되지 않은 화단으로 내려간 할아버지는 휴대폰 카메라를 든 할머니 지시에 따라 헤벌쭉 웃으며 움직인다. 찍어드리냐고 내가 묻자 할머니는 겸면쩍은 얼굴로 선뜻 휴대 전화기를 내민다.
핑크 반코트에 진달래색 립스틱을 바른 할머니께 전화기를 받아든 나는 나란히 서라고 주문한다.
찰칵. 찰나 같은 순간이 찍힌다.
검은색 칠부 코트를 입을 할아버지와 나란히 선 할머니 얼굴이 열여덟 처녀의 뺨보다 붉다.
찰칵, 찰칵. 몇 컷을 찍어드리니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우리가 팔십 중반이 됐는데 이런 사진을 언제 또 찍겠어요." 연분홍 할머니의 문장에 아까 흰새처럼 낙하하던 눈송이에 철렁했던 심장이 다시금 파장을 일으킨다.
부부의 인연은 억겁의 인연이라던가. 긴 시간 인연 중 몇 겁의 연으로 나는 오늘 저 노인들을 만났을까.
장갑까지 벗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는 할머니께 도리어 내가 감사하는 말을 한다.
하루 중 반도 더 남은 이 때, 착한 일을 한 것 같아서 가슴 뿌듯한 중간 일기를 쓴다. 이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신 노부부께 거듭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