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가까운
몇 분과 봄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깜짝 하루여행을 계획한 분의 옛 동료가
두 세시간 거리에서 벌을 키우는데
그곳 마을을 들르기로 한것이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10분쯤 들어간
농촌마을은 고요했다. 물씬 풍기는 흙내음과
솔솔 부는 바람에 실려오는 거름냄새까지도
안도의 위로를 전해준다.
우리가 흙의 태생이어서일까
그저 정겹고 반가울뿐이다.
새해가 되며 부여된 삶의 사명,
잘 시작해야 하고 작년에 못다한 일은
반성도 해야했던 겨울이었다.
1,2월을 복합적인 마음으로 지내고 3월을 맞이했으니 봄기운을 빌어 새힘을 얻고 싶은 마음도 있었나보다.
그냥 그대로 있지만 그래서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자연이다. 뭘 애써서 하지 않아도 된다고, 때가 되면 물이 돌고 생명의 기운이
두루 퍼진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일행을 위해 방목으로 키우던 토종닭을 잡으며 동네 한바퀴 구경하고 오라시는 훈훈한 미소를 뒤로하고 구불구불 마을길을 따라 걸었다.
낯선이들의 출현에 경계를 늦추지 않는
멍멍이들의 짖는소리, 처음 만나는데도
순한 눈길로 꼬리를 연신 돌리는 견공에게는 인삿말을 걸기도 하며 농촌의 한가로움을 만끽했다. 아직은 한가로움이다.
구역마다 그물로 빙둘러 막아놓은 밭에는
마늘싹이 뾰족뾰족 나왔는데 그 초록이 반갑고
귀여웠다.
산짐승들에게서 밭을 보호하는 장치 같았다.
흙내음 맡으며 돌아 오는 길에 밭둑에 모여있는 냉이를 지나칠 수 없는지 일행 두분은 양손
가득 뽑아 들었다.
식사가 다 준비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내려오니 갖가지 약초를 넣고
끓인 토종닭 백숙이 차려져 있다.
세분의 남자들이 차려놓은 식탁이 풍성했다.
구수한 백숙에 녹두죽까지 곁들인 상차림, 김장김치와 알타리 김치가 절묘한 맛을 더해
주는 진수성찬이었다.
아, 이렇게 감사할수가!
돌아오는 길, 의림지에 들러 저수지 둘렛길을 걸었다.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의림지는 아직 얼음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겨울과 봄이 혼재하는 시기,
이 둘렛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마음도
어떤이는 겨울을, 어떤이는 봄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자신부터가
겨울과 봄을 동시에 품고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떠난 사람의 2주기를 앞두고
수시로 마음이 가라 앉았다. 마지막
시간을 지냈던 그 때가 너무 선명하게 떠오르고
함께 했던 순간들이 어젯일처럼 가까운데
벌써 2년이 지난 것이다.
그리움이 밀려와서 떠들며 웃다가도
눈물이 차올라 눈을 계속 깜박여야 했던
일이 부쩍 빈번하다. 시간이 지나면..
시간이 지나면 어떠할지는 모르겠지만
수십년 함께했던 이 거리에 그와의 희,노,애,
락이 담겨있으니 잊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2주기를 이틀 앞두고
망설이다 따라나선 여행길은 마음에
위로와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
이렇게 나는 그가 떠난 3월의 시간을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인다. 즐거웠던 시간과
미움이 극에 달했던 순간까지도 추억이라는
작품을 알록달록 채색하는 시간인 것이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며 마지막 일정인
약속 장소로 향했다. 우리 일행의 지인이 일하는 곳을 방문하고 함께 저녁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하며 맛있는 저녁까지 대접해 주셨다.
늘 만나던 곳이 아닌 새로운 장소에서
만나게 되니 더 반갑기만하다.
그분의 사무실을 둘러 보기도 하고 틈틈이 연습했다는 섹소폰 연주도 둘러앉아 감상했다.
단기간에 연주 실력이 월등해졌다는
평가를 나누며 한적한 느낌의 외진 사무실과
그 곳 시간의 공백을, 아니 외로움을 연주향상으로
채우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그분의 삶이,
우리 공동체의 세밀한 돌아봄이 필요한 여지를 느끼게 되었다. 문득 하루여행을 계획하고 돌아
봄의 일정을 준비하신 분의 따뜻함에 감사한 마
음이 들었다. 역시 인생의 가치를 아시는 분..
누군가를 방문하고 둘러 본다는 것은
그를 조금 더 깊이 알아간다는 것이겠다.
얼굴을 알고 이름과 몇가지 가족사항을 안다는것으로는 그를 알 수 없다는 것,
이번 방문을 통해 가까이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살펴야하지 않을까하는,
이미 어두워진 고속도로를 달리며 삶의 숙제를 하나 더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