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집에서 주말 아침의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지난 밤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다가 자서 그런지
푸석한 얼굴로 김치통을 정리 중이었다.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을 열어보니 마스크를 썼음에도 한눈에 알아보겠는 예쁜 유리가 서있다. 세상에! 이게 누구야~~
거의 십여 년을 못 만난 것 같다.
중1 때까지 함께 수업을 했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도 못 만났었고 대학 진학을 위해 일본에 갔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이다.
빨간 딸기가 생크림 위에 올려진 케이크를
들고 출국 전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유리는 책을 정말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수업을 위해 읽어야 하는 책 외에도
책꽂이를 눈으로 쉴 새 없이 뒤지며 또 다른
책까지 빌려가서 읽었던 아이.
수년 동안 수업을 함께 하며 책 이야기와
더불어 친구고민, 가족의 고민까지 나누며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기도 했던 꼬마숙녀였다.
혼자 일본으로 건너가 꿋꿋이 대학생활을
해 나가는 그녀는 이제 꼬마숙녀가 아닌 의젓한
여대생이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분야의 전공을 찾기
까지 힘들었고 고민도 많았다며 그동안의 힘겨웠던 외국 적응기를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그래, 세상에 쉬운 게 없단다.
좋은 것은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는 법이라고..
방황하듯 헤매고 의미 없이 보낸 것 같은 시간도 자신을 성장시키는 과정이라고 말해 주었다.
조금 더 살아 본 내가 지나 온 시간들을
돌아보니 정말 그렇다. 오랜 시간 지역 사회에서
나름 교육자로 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행복한 인생을 위한 정답은 없음을 더 느낀다.
부모의 품을 떠나 학교라는
또래 사회를 경험하고 학창 시절을 지나며
아이들은 정말 다양한 변화를 겪는다.
성적이 조금 더 좋거나 일찍이 주목받는다고
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음이다.
성장하는 아이들을 토막 시간 동안만 보며
단정 짓고 함부로 평가해서는 아니 됨을
어디에서든지 나는 강조한다.
포시아 넬슨의
'5개의 짧은 장으로 된 자서전'을
학생들과 자주 읽고 생각을 나눈다.
나는 길을 걸어갑니다.
보도 위에 깊은 구멍이 있습니다.
나는 그 구멍에 빠집니다.
길을 잃고 맙니다... 무기력한 나.
내 잘못이 아닙니다.
밖으로 나오는 길을 찾는데
영원처럼 긴 시간이 걸립니다.
반복되는 장마다
구멍에 계속 빠지지만 잘못을 깨닫고
빠르게 빠져나오게 되며 5장에 가서는
구멍을 보고 길을 돌아 다른 길로 걸어간다.
어느 시점만 보고 평가할 수 없는 게 삶일 게다.
우리는 긴 인생의 여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과 마음을 나누며
더 가치로운 삶의 지향을 꿈꾼다.
살아가는 시절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행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곁에 있는 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작은 응원을 보낼 수 있다면 그에게 선물 같은 사람일 것이다.
잘 성장하여 꿈을 이루어가는 제자를
보는 기쁨이 참 크다. 이 넓은 세상 어디에서든
좋은 연결을 이어가며 빛처럼 영향력 있는 삶
이 되기를 마음의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