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일기장-
학교에 용납되는 숫자보다 10배가 넘는 결석일 수, 딸아이가 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거의 사라질 무렵 기적이 일어난 일이다.
필요한 학적부 서류를 떼러 부리나케 이전
학교로 향했다. 전학을 시킬 것이라는 말에 담당교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전학이 쉽지 않을 겁니다. 결석일수가 이렇게
많은 이 학생을 받기가 어려울 텐데요."
계속 미심쩍은 표정으로 건네주는 서류를 받아 들고 나는 부리나케 학교로 달려갔다. 교무실에 서류를 제출하니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란다.
며칠이 수년처럼 느껴졌다.
교장선생님께서 기회를 주신다고 했으니
곧 연락 오겠지 하면서도 불안하기만 했다.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교감이라고 자신을 조심스럽게 소개하며
지금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라는 말씀이다.
교장 선생님은 어떡하든 자리를 마련하라
지시하셨는데 학교에 이런 선례가 없다는
것이다. 3일 이상 무단 결석했던 학생은
전학이 불가하다는 것이 학교 측 입장이라는 것.
그리고, 만약 어렵게 전학을 받아 주었는데
학생이 새 학교에 적응 못하면 퇴임을 1년
앞두신 교장선생님 치적에도 상당히 누가
된다는 말씀이다.
...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분 말씀의 요지는 학부모가 임의로 전학을 포기해 주기를 바란다는 간곡한 부탁이다.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전학의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어 있는 아이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어찌해야 할까!
내 욕심만 채울 수는 없었다.
중간 역할을 해 주신 목사님께 학교 측 뜻을
전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고...
우리 욕심 때문에 학교의 규칙을 어기고
또 선의를 베푸시는 교장 선생님께 누가
되는 것은 옳지 않은 듯하다고 얘기했다.
교장 선생님께는 우리 사정으로 전학을 포기했다는 말씀으로 전해주시길 부탁드렸다. 너무
감사했노라는 인사와 함께.
다른 기회가 오겠지.
며칠 동안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들떴던
감정을 추스르며 다독였다. 엄마인 내가 희망을 놓지 않으면 우리 딸에게 좋은 기회가 다시 올 거라며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
어쩌면 현실의 상황보다 내 부정적 생각의
확장으로 더 힘들어했는지 모르겠다.
학교를 못 가면 아이 인생은 끝이라는
절망감의 공식 말이다.
요즘은 아이의 내신이 안 좋으면 일부러
학교를 자퇴시켜서 검정고시 성적을 노리는
경우가 있다. 또 학교 부적응 학생들의 대안이 많아지고 다양한 기회도 상당하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학교를 다녔던
이십여 년 전, 고지식한 내 생각은 오직
학교만이 아이들의 희망이라고 고정되어
있었다.
우리의 상황을 전해 들은 목사님께서는
교장 선생님께 그리 전하겠다고 하신다.
그 후, 나는 애써 밝은 모습으로 딸아이를
대했다. 그동안 학교 등교 문제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가. 딸아이가 들었을
수많은 절망의 언어들이 파편이 되어 마음에 박혔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가슴이 너무 아프고 학교보다 소중한 내 아이가 눈에 들어
오기 시작했다.
괜찮아!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지금은 잘 안 보이지만 분명히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실 거라고 믿어. 우리 기분전환 좀 할까?
아이가 끔찍이 좋아하는 외할머니가 계신 곳,
딸아이를 차에 태우고 친정으로 향했다.
쭉 뻗은 고속도로를 한 참 달리는데
내 휴대폰이 울렸다. 조수석에 앉은 아이가
전화를 받아 귀에 대 준다.
"ㅇㅇ어머니 시죠? 여기 ㅇㅇ학교인데
다음 주부터 등교시키세요. "
어찌 된 일이지?
딸아이의 놀란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