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나이 듦
찬비가 조용히 내린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촉촉이 적시며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라고 외치는가 보다.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길을 따라 오르는데
잠시 서서 쉬는 동안 한기가 느껴진다. 내가 이 길을 자주 오르내린 지 벌써 몇 년이던가!
강화를 품고 흐르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
이 문수산 자락, 칠십 대 중반을 넘긴 큰언니가 매주 찾아온 세월이 벌써 십 년이다.
갑자기 몸의 이상이 온 형부가 오직 검사만
받다가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 받은 채, 온 가족에게 안타까움만 가득 남기고 떠나셨다.
너무 기막히고 어이없는 이별을 하게 된 언니는
우리 고향과 가까운 이 수목장에 형부를 모시고,
매주 그곳을 찾는 것이다.
참 별스럽다는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요하고 한적한 그 산을 향한 언니의 발걸음은 쉬지를 않고 있다.
깨끗하게 빨아서 가져간 손수건으로 작은 묘비를 닦고 주변에 떨어진 낙엽들을 깔끔히 정리한다.
그곳에 다녀와야 한 주간을 살 힘이 생긴다고.
형부가 떠나고 몇 년 후, 거의 한 세기를 사셨던 친정어머니도 백세를 코 앞에 두고 떠나셨다.
유난히 넓은 품을 가지셨던 어머니가 우리 형제들을 키우며 자주 지나치셨던 그곳,
형부가 먼저 자리한 그 문수산 자락 수목장에 어머니까지 모신 후부터는 큰언니와 함께 우리 형제들도 더 자주 찾아다니게 되었다.
몇 년을 투병하던 우리 남편은 장모님과
형님을 품에 안은 그 산을 무척 좋아하였다.
조금만 돌아서 올라가면 깊은 숲의 느낌이 물신 풍기고, 자동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너무 좋단다.
따사로운 햇빛이 강렬할 때면 한 겨울에도 포근함이 느껴지는 장소, 생전 남편의 바람대로 그 역시 그 산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찬 공기가 볼을 스치는 날씨이지만
언니들과 동행하는 길이 참 마음 따스하다.
이 길을 언제까지 우리는 함께 걸을 수 있을지, 점점 걸음이 느려지고 허리를 더 자주 짚으며 힘겨워 보이는 큰언니의 나이를 헤아려 본다.
언니가 이렇게 산을 오를 수 있는 날이 얼만큼 남았을까! 갑자기 서글퍼지고 코끝이 찡해진다. 우리가 걸으며 나누었던 이야기들, 산길 따라 핀 꽃들과 풀을 바라보며 깔깔대었던 순간들, 새둥지와 또 날아가는 온갖 새들을 향해 외쳤던 우리의 목소리들을 이 산이 다 기억할 텐데.
남편의 묘비옆에 앉아 깊어가는 겨울산을 본다.
나뭇잎들을 모두 떨군 가지들은 그 자체로 그림 같다.
나무들 전라(全裸)의 그 섬세함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머잖아 계절이 바뀌어 새 옷을 입고 푸르름과 더불어 풍성한 시절이 또 오리라.
나의 계절도 이 산의 모습처럼, 또 저 강화다리 아래의 바다처럼 흐르고 흘러 바뀌고 변하겠지.
다만, 함께하는 시간에 마주 보고 웃을 수 있고,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어떤 것인지...
상념 속에, 묘비 옆 놓았던 커피를 마신다.
눈물을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