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 님 연주를 들으며.
기온이 심상치 않은 요즘, 현재 밖은
영하 11도라고 표시된다. 몹시 추운 이
겨울의 밤, TV 속 아름다운 선율에 넋을 잃었다.
아직 소년티가 남은 임윤찬의 손끝으로
전달되는 피아노 선율이 내 가슴을 파고든다.
이 어린 사람이 표현해 내는 심오한 음의 깊은 바다에 나는 서서히 가라앉고 만다. 정겹고 부드럽게, 때론 휘몰아치는 바람같이 강한
터치로 잔잔한 한 겨울의 영혼을 뒤흔드는
것이다.
얼마 전 있었던 암스테르담에서의 공연 실황이다.
시선을 압도하는 고풍스러운 공연장, 네덜란드의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임윤찬의 피아노 협연은 나만의 호적한 겨울밤, 벅찬 감동과 낭만에 흠뻑 젖게 한다.
천재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우리 집 거실에 앉아 대가지불 없이 무한 보고 들을 수 있는 시대에 감사한 마음이다. 이런 문명의 호사를 누리며 마음을 적시는 나의 생활이 참 소박하지만 그 누구보다 내적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것이다.
영혼이 맑게 정화되는 느낌, 오케스트라와 꽃봉오리 터지 듯 펼쳐지는 윤찬 님의 피아노 선율이, 처음 피아노 건반에 매료되었던 십 대
시절로 나를 이끌었다. 음악이 그냥 좋았고 피아노는 꿈의 악기였다.
어렵게 시작한 피아노가 오직 내 존재의 큰 의미였던 때가 있었다. 자주 연주했던 명곡 리스트를 헤아리다 보면 그 시절의 생각과 채웠던 시간들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어느 겨울, 베버의 <무도회의 권유>를 줄기차게 연습했다. 도입부의 그윽한 선율은 가슴 저 밑바닥에 침잠됐던 알 수 없는 감정들을 끌어올린다. 무게감 있는 낭만이랄까.
와이만의 <은파>를 끈질기게 연습해서 그 길었던 변주 마지막까지 마스터했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뀐 것일까.
지금 역시 내 가장 소중한 재산목록 1호는 피아노이다. 나의 열 손가락으로 결을 들인 내 피아노 소리는 그 어느 것보다 명롱 하고 부드러우며 아름답다. 좋은 곡을 새로 발견하면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나 후배들을 불러서 들려주곤 했는데 가장 빛나던 내 젊은 날의 추억이다.
60분짜리 카세트 테이프를 사 갖고 와서 앞뒤 꽉 차게 연주 녹음을 해 달라던 친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무슨 정성에 한나절 이상 걸려서 녹음을 했는지. 그 친구는 지금 어디에서 우리들의 그 시간을 회상하고 있을까.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그 카세트 테이프는 아직 가지고 있는지.
임윤찬의 연주에 빠져 한 밤을 거의 새운 것 같다. 한 시간 넘게 연주하는 동안 악보는 아예 없다. 슈만과 베토벤, 라흐마니노프의 음표들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춤을 추며 그의 손끝을 통해 마법처럼 살아난다.
내 인생의 오선지를 생각해 본다.
오직 나만이 연주가 가능한 악보이다. 제법
음계공부를 했다고는 하지만 악보를 좀 안다고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삶의 음표와 쉼표를 생각하며 언제 음을 누르고
몇 박을 쉬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다. 나이가
드니 점점 꾸밈음은 부담스럽다. 목가적 형태의 서정적인 선율, 부드럽고 아름답게 연주하는 돌체가 편안하다. 속도는 안단테, 조금 느리게 가 좋겠다.
오늘은 글모임이 있는 날이다.
내 인생을 협연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상긋한 웃음소리와 정겨운 목소리로 진솔한 생각을 나누겠지. 그들은 내 인생의 협연 오케스트라이다.
지휘자는 물론 JESUS MY L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