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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과 만년필 Jan 27. 2022

너 나하고 공부할래?-3

그리고 지금

또 한동안 서로 바쁘게 사느라 연락을 못하고 지내다 다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자랑할게 생겼습니다."

"뭔데?"

"만나서 말씀드릴게요!"


다시 만난 그는 자격증 여러 개를 보여줬다. 그동안 알바를 하며 항공정비 학교를 다녔고 따기 힘든 자격증을 이렇게나 땄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난 이런 자격증 구경이나 해봤냐며 주변 선생님들에게도 보여줬다. 센스 있게도 모두 다 '오바'해 가며 "우~~와, 대단한데요!"라고 해주셨다.


학교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퇴근 후 저녁을 함께 했다.

"저 이걸로 공군 부사관 지원하려고요."

"야 그거 좋은 생각이다. 어차피 가야 하는 군대, 취업까지 같이 해결되면 좋지!"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고 헤어지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 다음에도 좋은 소식 가지고 연락드릴게요!"


그러나 그 '좋은 소식'은 쉽게 얻어지지 못했고 한참 동안 그냥 '소식'도 듣지 못했다. 궁금한 마음에 먼저 연락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부담 주는 것 같아 참았다. 고등학교 출결이 좋지 않아 자꾸 불합격을 하는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였고, 고3 때 내가 집에라도 쫓아가 학교로 끌고 왔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다가 드디어 소식이 왔다. '좋은 소식'이 왔다.

내 담임반 학생이 서울대학교에 합격했을 때보다 더 기뻤다.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도 간절히 원하던 것을 이루어낸 그 친구가 참 자랑스러웠다.


임관하고 난 후 찍은 사진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좋은 소식도 전해 왔다.

오랫동안 사귀던 여자 친구와 결혼도 하게 되었다. 어찌나 대견하던지...

결혼식장의 안내 배너. 위의 사진과 동일인물임. (구여친 현부인)


결혼식 후 새신랑은 당연히 바쁘고 나도 학교일로 바빠 한참 만에 만나게 되었다. 신혼살림 이야기를 들었고 부부가 함께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술잔이 돌다가 다시 예전 이야기가 나왔다. 고등학교 이야기를 하면 이 친구는 나보고 항상 고맙다는 말을 했다. 처음 몇 년간 나는 그냥 "짜식...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다"라고 했다. 내 작은 수고를 알아주니 고마웠었다. 그러다 요즘에는 내가 적극적으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 번째 10년 전 그때 나를 선생으로 느끼게 해 줬다. 결석, 지각, 그리고 조퇴가 너무 많아 하루 종일 전화를 돌리고 엉망이 된 출석부를 정리하며 내가 선생인지 뭔지 정체성의 혼란이 왔었다. 교사의 업무 중에 학생관리도 있지만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가르치는 것은 뒷전이 될 정도였다. 그랬을 때 하루에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과 배움이 있는 시간은 내가 교사임을 느끼게 해 줬다. '내가 그래도 교사가 맞긴 하구나.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계속 연락해 줘서 고맙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연락을 줘서 이 친구는 여러 가지 개인사를 의논했고 나를 기쁜 소식에 초대해 그 감정을 함께 하는 기회를 주었다. 졸업하고 1~2년은 많은 학생들이 연락을 하지만 10년씩 연락을 계속하는 제자들은 많지 않다. 이 친구의 노력 덕에 나는 제자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잘 커줘서 고마워~!'


세 번째 그때 그 친구 앞에서는 말하지 못했지만, '나도 한때 훌륭했던 적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할 거리를 줘서 고맙다. 교사가 된 지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적응에 시간이 걸리는 학생들이 있고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학생들도 있다. 그러한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때나, 내 능력의 한계를 느낄 때나, 또는 형편없는 자신에게 실망했을 때 '나도 괜찮은 데가 있는 선생이다고!'라고 나를 다독이는 근거가 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 친구에 대해 글을 써보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글이 너무 장황해질 것 같았고 어떤 이야기를 넣고 빼야 할지 망설여져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새해가 되어 꼭 써봐야지 하며 용기를 내어봤고 겨우 3부작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지금도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갈팡질팡 한다. 이 글을 쓴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내가 가진 소중한 경험을 기록해 두고 싶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나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에요' 하고 자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용기 있게 손을 내밀었던 지금보다 10년 젊은 나와 그 손을 단단히 잡아준 10년 전의 그 학생이 참 고맙다. 난 작은 용기를 내었을 뿐인데 그런 마음을 잘 받아주어 지금까지 나에게 힘이 되고 있는 이 친구가 참 귀하다.


"앞으로도 잘 지내자! 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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