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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부아빠 Oct 27. 2022

부끄러움은 아빠의 몫이다.!

아빠도 사실 조금은 부끄럽다.

장모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주말에 아이들이 보고 싶으시다며, 양손에 빵과 과자를 사 가지고 집에 오셨습니다. 한 동네 위 아랫 골목에 살고 계신 장모님은 손주들을 앉아 주시면 아이들과 맞잡은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오실 때는 빈 손으로 다니시라고 자주 말씀드리면, 알겠다고 말씀만 하실 뿐입니다.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하시면서도 아이들 먹을 것을 늘 챙겨서 집에 오십니다.


장모님께서 들고 오신 비닐봉지를 받았습니다. 봉지 안에는 한 때 유행했던, 포켓몽 빵이 잔뜩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 빵은 쉽게 구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사 오셨냐고 물었습니다.


새벽에 교회 갔다 집에 오는데, 편의점 앞에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 서 있는 광경을 장모님께서 보셨습니다. 장모님은 새벽부터 무슨 일이냐며 서있는 사람들에 물었습니다. 기다리던 초등학생은 빵을 사러 왔다며 장모님께 대답했습니다. 장모님은 무슨 빵이 그렇게 맛있길래 이른 새벽부터 사람들이 기다리냐며 신기해하셨습니다.


며칠 후, 새벽교회를 끝내고 집으로 오시던 장모님은 그 편의점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셨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가는 빵을 손주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답니다. 몇십 분의 기다림 끝에 비닐봉지 한가득 빵을 담아 오셨습니다.


고1 아들과 중3 아들은 포켓몽 빵과 스티커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들은 이제 초딩들 놀이에 좋아할 나이가 아니라며 좋아하지 않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이 생각 없이 내뱉는 말에 장모님은 실망하셨습니다. 다행히 큰 아들이 할머니의 실망한 표정을 눈치채며, 사 오신 빵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큰 아들 덕분에 장모님은 그나마 웃으시며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며칠 동안, 식탁에 놓아둔 빵은 조금씩 봉지가 팽팽해지기 시작합니다. 못 먹게 되어 버리기 전에 먹을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결국, 아빠가 먹기로 했습니다.


아침 동안 아빠만 서양식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아이들과 엄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식을 차려서 식탁을 채웠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장모님의 정성과 빵이 아까워서 우유 한잔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포켓몽 빵으로 며칠 동안 식사를 했습니다. 빵의 맛은 여러 종류라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진하디 진하 초코맛 빵은 아침식사용으로는 힘들었습니다.

봉지 속에 들어있는 스티커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모아둔 스티커는 단돈 몇 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당근에 올렸습니다. 당근에 올려놓고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초등학생들 코 흘리게 돈을 노리는 파렴치한 어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올려놓은 스티커를 사겠다는 채팅이 수시로 도착했습니다. 대부분의 구매자들은 자녀의 엄마들이었습니다. 멀리서 자가용을 타고 오거나, 버스를 타고 자녀와 함께 우리 집 근처까지 오셔서 스티커를 구매하셨습니다.


구매 후 돌아가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스티커를 돈을 주고 사가시는 어머님들과 당근에 올려서 팔고 있는 나 같은 아빠... 자식이 뭔지,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티커가 잘 팔릴수록 가격을 조금씩 올렸습니다. 모아놓은 스티커를 모두 팔았습니다. 오후에 아내에게 퇴근 후 동네 볼링장으로 오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요즘 대화가 필요한 큰아들에게도 볼링장으로 오라고 연락했습니다.


그동안 스티커를 모두 팔아서 모은 돈이 제법 된다며 으스레를 떨었습니다. 이 돈으로 큰 아들이 좋아하는 볼링을 치고 귀가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큰 아들은 진짜로 스티커를 다 파셨냐며 되물었습니다. 가격을 올렸는데도 다 팔렸다고 자랑했습니다. 큰 아들은 팔린 스티커보다 그걸 들고 팔러 가신 아빠가 대단하다며 묘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볼링공을 던지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 부끄러움은 아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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