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빠

부자아빠가 되지 못해서 미안해!

by 주부아빠

중2 아들은 축구 유망주였습니다. 아빠의 못다 이룬 축구선수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4살 때부터 축구교실에 등록했습니다. 다행히 아들은 운동을 좋아했고, 축구교실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엘리트코스로까지 들어갔습니다.


축구클럽 코치 선생님 몇 명은 자신들이 초등학교 감독으로 옮겨갈 때마다 아들을 키워보고 싶다며 전학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유소년 축구시합이 열리면, 한 번만 우리 팀에서 뛰어 달라며 여러 곳의 축구클럽에서 전화가 오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입학 때는 인근 중학교 축구부 세 곳의 감독님들로부터 자기네 학교 축구부로 전학을 시켜달라는 전화가 걸려올 정도로 아들은 축구를 잘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곳곳에서 손흥민처럼 되기 위해 훈련받고 있는 대한민국 유소년 축구선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기에 아들의 전학과 축구 유학은 보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빠의 못다 이룬 꿈을 아들이 이루어주겠거니 생각했지만, 축구선수로서의 성공이 다른 운동보다 몇 배 더 힘듦을 알기에 아빠는 욕심을 포기했습니다.


아빠도 초등학교 때 축구선수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동네에서 축구 잘하는 아이로 사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선수는 못했지만 나름 축구 때문에 즐겁게 살았습니다. 학교에서 축구로 자기 반을 우승시키는 쾌감도 재밌었고, 대학에서 체육대회 때 자신의 학과에게 승리를 안기는 짜릿한 기쁨도 즐거웠습니다. 군대에서 축구를 잘해서 포상휴가를 받는 특혜도 누렸고, 아빠가 되어서 아들에게 축구를 가르쳐주며, 아들과 같이 운동하며 살아가도 즐겁고 행복하기에.... 아들을 축구선수로 키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축구교실을 다니면서 운동용품은 주로 중고사이트에서 구매했습니다.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새것의 수명은 6개월을 넘지 못합니다. 몸에 맞는 운동복이나 발에 딱 맞는 축구화는 비싼 일회용품이 될 뿐입니다. 인터넷 중고사이트에는 이런 부모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고마운 곳이었고 우리 가정이 제일 많이 애용하는 곳이었습니다.


최근, 중2 아들은 축구화가 필요하다며 사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당연히 사주겠다고 말하며 인터넷 중고사이트를 검색해 보겠다며 일어서는데, 이번에는 새 축구화를 갖고 싶다며 아들이 한마디 더 던졌습니다.


아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중고용품에 대한 불평하지 않았다며, 이번만큼은 새것으로 사달라고 차분하게 설명합니다. 2월 말에 친구들과 대회를 나가기로 했는데, 친구들과 이 대회를 위해서 축구화를 맞춰서 경기에 출전하기로 했다는 설명까지 늘어놓습니다. 이미 누구누구는 샀다며 자기만 축구화를 못 신으면 어떻게 하냐며 하소연처럼 말합니다.


아들이 사고 싶은 축구화의 가격은 360,000원입니다. 현재는 20% 할인기간이라서 30만 원이면 살 수 있다며 엄마를 설득하려 합니다. 엄마는 단호하게 거절했고, 중고사이트에서 저렴한 가격의 축구화를 알아 보라며 대화를 끝냈습니다. 축구화 구매에 대한 대화와 협상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습니다.


풀 죽은 아들이 불쌍해 보였으나, 우리 집 형편상 36만 원짜리 축구화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려운 우리 집안 사정보다 기죽고 풀 죽은 아들의 모습이 더 마음 아픕니다.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으로 밤새 잠을 못했습니다.


아들에게 원하는 것을 사주지 못해서 미안했습니다.....


다음날, 엄마의 출근 후 아들을 불렀습니다. 저금해 놓은 돈과 가지 있는 돈이 모두 얼마인지 물었습니다. 다행히 설날 받은 세뱃돈의 일부가 남아 있었고, 용돈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잔고가 비어있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돈을 다 합쳐보니 10만을 겨우 넘겼습니다.


밤새 고민한 계획을 아들에게 설명했습니다. 우선, 엄마에게 점수를 따야 합니다. 아들에게 평소 기상시간보다 1 시간 일찍 일어나 책상에 앉아 공부하라고 말했습니다. 엄마에게 점수를 따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강조했습니다. 오후에는 동생의 학습지를 돌봐주며 동생의 가정교사를 자원하여 실천해야 함을 제안했습니다. 아들은 하겠다며 의욕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돈을 만드는 계획도 실천했습니다. 신발장을 뒤져서 발이 커서 더 이상 신지 않는 축구화 3켤레를 찾았습니다. 축구시합을 주로 인조잔디에서 했고, 시합 후 관리를 잘해 두어서 축구화 상태는 최상급이었습니다. 아들에게 축구화를 닦아 오라고 시켰습니다. 깨끗이 씻고 닦은 축구화에 왁스를 바르고 축구화 끈을 새것으로 바꿔 놓으니 새 제품과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책상 위에 축구화를 올려놓고 책상 스텐드로 조명까지 비춰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중고사이트에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 글을 올렸습니다.


3켤레가 팔리면 최소한 6만 원은 확보됩니다. 그럼 현재까지 16만 원이 확보된 샘입니다.(계산상으로....^^)


중고사이트에 판매 글을 올리고 나서, 아들과 함께 책꽂이 앞에 섰습니다. 우리는 각자 읽은 책 중에서 버려도 되는 책을 골라 가방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선별할 때는 가능한 깨끗하고, 낙서 없는 신간들을 골라보라고 말했습니다. 대형마트의 커다란 비닐 가방 두 개를 가득 채웠습니다. 책가방을 가지고 가까운 중고서점으로 향했습니다. 가져간 책 가운데 1/3 정도만 팔지 못하고, 나머지 책들은 모두 팔았습니다. 책값으로 받은 돈은 3만 7천 원입니다.


제 지갑에서 3천 원을 보태서 드디어... 20만 원을 만들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아들은 아침마다 공부를 합니다. 휴대폰 사용량을 줄였고 피시방 출입을 자제했습니다. 저녁마다 동생의 문제풀이를 함께 했습니다. 무개념 중2의 모습에서 사랑스럽고 듬직한 큰 아들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오늘이 할인행사 마지막 날입니다. 아침에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지금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며 돈을 내밀었습니다. 판매 중인 축구화는 아직 팔리지 않았지만, 곧 팔릴 것이라며 간곡하게 설명했습니다. 아들의 노력과 잠시 달라진 모습에 엄마는 만족했는지, 긴 잔소리 끝에 나머지 금액은 엄마가 보태겠다며 카드를 주었습니다.


신이 난 아들은 엄마가 출근하는 골목길까지 따라가서 사랑해요, 조심히 다녀오세요를 외쳤습니다.


오후에 매장에 갔습니다. 원하는 모델의 축구화를 골랐습니다. 거울 앞에서 축구화를 신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합니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원하는 것을 언제든지 마음껏 사줄 수 없는 아빠라서 미안하다며 속으로 울었습니다.


엄마카드를 자신 있게 제시하며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360,000원이 아니라, 499,000원이었습니다!!


할인을 받아도 처음에 알고 있던 금액은 아니었습니다. 결제는 끝났고 문자는 엄마에게 날아갈 것입니다. 아들은 축구화를 만지작 거리며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지만, 집이 가까워질수록 제 마음은 불안합니다.


주차를 하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일단은.... 일단은.... 받지 않을 예정입니다.~~~

이전 06화아이들은 사춘기, 아빠는 오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