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로 사는 아빠에겐 가족이 보약입니다.
주부로 사는 아빠는 외롭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일을 한다는 것은 사회생활이 단절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시켜서 사회생활을 끊은 게 아닙니다. 주부는 가정이 사회이고, 가사가 일이고, 주부의 삶이 사회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주부로 살아 보니 가족 밖의 사회생활은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전업주부로 살아보니, 엄마들의 수다는 가사로 지친 주부들에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보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헌신의 보람과 무임금의 노동 사이에서 엄마들은 같은 처지의 엄마들과 대화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노동의 힘듦을 보람으로 이해하며 살게 됩니다.
주부 아빠인 나는 같은 처지의 주부 아빠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수다를 좋아하지도 않고,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지도 않습니다. 가끔은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운동 또한 혼자서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개인 운동뿐입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처럼 게임을 하기에는 손이 늦고 눈이 아파서 복잡한 피시게임을 이해하는 것이 더 많은 스트레스입니다.
지금은 중년의 오춘기(?)까지 찾아와서, 마음이 수시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중년의 오춘기가 아빠에게 찾아왔습니다. 이유 없이 화가 나서 버럭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찾기도 하며, 때로는 별것 아닌 사소한 일에 상처 받거나 상심하기도 합니다. 중년의 갱년기를 뜻하는 오춘기가 시작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어제도 하루 종일 가족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빨래통에 벗어놓은 양말이 뒤집어진 채 담겨있어서 화를 냈습니다. 등교시간이 임박했는데도, 태연하게 밥을 먹으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큰 아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운동화를 꺾어 신는다고 화를 냈고, 자동차 뒷좌석에서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는 작은아들에게는 음악소리가 너무 크다며 화를 냈습니다. 각자의 방에 벗어놓은 옷들을 정리하지 않았다고 화를 냈고, 심지어는 샤워를 너무 오래 한다며 화를 냈습니다.
평소에는 화를 내기보다는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거라~'하고는 그냥 넘어가는데, 요즘에는 버럭버럭 화를 내면서 쏘아붙이는 말로 대화를 합니다.
아내는 요즘 들어 아빠가 짜증과 화를 자주 낸다며 걱정합니다. 무슨 일이 있냐며 묻기도 합니다. 아내에게 마음 상태를 털어놓았습니다. 나도 감정조절이 잘 안 된다며 내 마음 상태를 설명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아내는 그럴 수 있다며 나를 위로했습니다. 그리곤 아이들을 모아놓고 아빠의 마음 상태를 설명했습니다. 아빠의 짜증과 화는 그 나이가 되면 작고 사소한 것에도 그럴 수 있다며 차분하게 설명합니다.
어젯밤, 두 아들은 아빠와 함께 안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아내는 오붓하게 남자들끼리 자라며 큰 아들방으로 갔습니다. 아빠의 갱년기를 걱정하는 착한 아들들입니다. 아이들은 눕자마자 금세 코를 골며 잠들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아빠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립니다. 아이들에게 화를 낸 모든 것들이 미안해졌습니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주부로 사는 아빠에겐 가족이 보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