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동안 함께 지낸 전기밥솥을 떠나보냈습니다.
전기밥솥이 고장 났습니다.
며칠 전부터 취사 버튼이 잘 눌러지지 않더니만, 어제부터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밥솥은 결혼하면서 산 혼수품입니다. 그동안 별 탈없이 15년 동안을 함께 살았습니다. 고장은 처음입니다. 중간에 고무패킹을 교체한 적은 있습니다. as에 문의했더니 수리보다는 새 제품으로 바꾸기를 권유받았습니다. 바꿀 때도 되었다 싶어서 아내와 전화로 상의한 후 새 제품으로 주문했습니다.
주문한 밥솥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냄비에 밥을 지었습니다. 전기밥솥과 냄비 밥의 맛은 다릅니다. 약간의 탄 냄새가 밥알 사이사이에 스며든 구수한 밥맛은 전기밥솥이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오랜만에 어렸을 적 시골에서 할머님이 지어주신 가마솥 밥맛을 생각하며 냄비에 밥을 해 먹고 있습니다.
밥을 할 때마다 누룽지와 숭늉이 생겨서 좋습니다. 구수한 밥 냄새와 함께 먹는 냄비 밥을 아이들도 좋아합니다. 식당에서 나오는 돌솥밥 같다며 더 많이 먹습니다. 밥 맛이 달라져서 그런지 아이들의 식성이 더 늘었습니다. 가끔은 덜 익은 쌀을 입에서 골라내지만, 잘 먹어서 좋습니다.
냄비 밥은 처음 밥물이 끓어서 넘칠 때, 뜸이 들기 시작할 때, 뜸이 끝나고 밥이 까맣게 타기 전까지 신경 써서 지켜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귀찮아서 아들에게 점심은 스파게티나 국수를 먹자고 말했지만, 아들은 밥이 먹고 싶다며 면 요리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할 수 없이, 다시 냄비에 밥을 지었습니다. 불 위에 밥을 올려놓고 스팸을 구웠습니다. 스팸을 구우면서 아침에 먹고 남은 시금치 된장찌개도 불 위에 올렸습니다. 이틀 동안의 밥 짓는 실력을 믿었습니다. 긴장감 전혀 없이 느낌과 감.... 만으로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스팸을 구워서 접시에 담고 뜨거워진 된장찌개를 국그릇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냄비 뚜껑을 열었습니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때문에 밥이 타는 냄새를 못 맡았습니다. 냄비가 까맣게 탔습니다. 먹을 수 있는 밥을 긁어서 한 공기를 만들었습니다. 아들은 밥을 먹을 때마다 탄 냄새가 난다며 투덜거리며 먹기 시작합니다. 아빠는 탄 냄비에 물을 붓고 끓여낸 누룽지로 한 공기의 식사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문한 전기밥솥이 도착하지 않음을 탓했지만, 결국 원인은 긴장하지 않은 아빠의 자만심과 교만함을 반성했습니다. 왜 최고의 요리사들은 음식을 만들 때 저울로 재료의 양을 정확하게 계량하는지,타이머를 맞춰놓고 시간을 지키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별것 아닌 일, 작고 쉬워 보이는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당연한 교훈을 또다시 마음에 새겼습니다. 이쯤이면 되겠지, 이 정도면 뭐...라는 교만은 가족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배웠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냄비를 주문해야 합니다. 퇴근 후 아내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