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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자 Jan 08. 2017

꿈을 꾸는 바보들을 위한 황홀한 찬가

다미엔 차젤레 '라라랜드(LA LA LAND)'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어렸을 때부터 본 미국 드라마 '글리'이다. 각종 뮤지컬과 가수, 드라마와 영화 취향에 영향을 준 것은 물론 가치관과 꿈꿔온 여러 꿈들의 중심에도 '글리'라는 두 글자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꿈꾸며 노래하고, 노래하며 꿈꾸는 그들의 이야기는 항상 내 가슴을 울리며 단순하게 어떤 음악을 들을 지에서부터 꿈에 대한 고민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스스로를 정립해나가던 사춘기 시절을 글리와 함께 울고 웃으며 보냈기 때문일까. '꿈'이란 단어에 노래가 더해지고, 여기에 춤까지 얹어진다면 그 앞에서 나는 항상 무너져 버린다.


너무나도 훌륭한 두 작품 속에서 꿈꾸며 노래하는 이들을 보며 오랜만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위플래시'로 유명해진 다니엘 차젤레 감독의 영화 '라라랜드(LA LA LAND)'와 일루미네이션의 애니메이션 '씽(SING)'이 바로 그 두 작품이다. 이번 글에선 라라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본다.



아리따운 뮤지컬 넘버들에 웃음꽃이 만개하고,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로 가슴이 아려오고,
달콤한 꿈과 씁쓸한 현실에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고,
그 어디에도 없던 엔딩 시퀀스에 말을 잇지 못하였다.

라라랜드를 보았다. 오프닝넘버부터 얼굴에서 미소를 지울 수가 없어 어쩔 줄을 몰랐다. 언젠가부터 뮤지컬이나 뮤지컬 영화를 보면 어떤 가사나 감정을 담고 있든 울컥해버린다. 그 웅장함에 압도당한 것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위키드나 레미제라블 등의 뮤지컬 오프닝을 볼 때도 매번 그랬다.

사전 정보 없이 개봉 당일에 본 지라 영화 초반까지 라라랜드는 극 중 대부분의 대사가 노래로 구사되는 평범한 뮤지컬 영화인 줄 알았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끊임없이 변주되며 장면 장면 새로운 매력을 보여준다. 뮤지컬, 재즈, 춤, 노래 등 다채로운 공연에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의 사랑 이야기까지 더해져 관객을 사로잡는 라라랜드는 너무나도 완급 조절을 잘해서 일부 관객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장면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낭만적인 듯한 LA의 사랑 이야기는 현실과 힘겹게 사투하는 '꿈'이야기를 담고 있다. 꿈과 사랑,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은 너무나 달콤했던 그들의 꿈과 상상만큼 씁쓸하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오디션에서 엠마 스톤이 부른 노래에서 '꿈을 꾸는 바보들을 위해'라는 가사가 나오자마자 눈물이 쏟아져버렸다. 보통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흘리게 되면 사전에 느끼는 어떤 감정의 선이 있기 마련인데 '꿈을 꾸는 바보'라는 한 구절로 인해 정말로 왈칵 쏟아져버렸다.

아마 그 이유는 꿈을 꾸는 바보들 중 하나인 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서 인 것 같다.

2016.12.07. DAYGRAM

*이미 라라랜드를 두 번 보았고 OST도 수없이 들었기 때문에 라라랜드를 처음 본 날의 감정이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라라랜드를 처음 본 12월 7일의 일기를 그대로 인용해보았다.


라라랜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형용사는 바로 '황홀한'이다. 이토록 아픈 결말을 선사하면서 관객들이 끊임없이 황홀하다는 말을 내뱉게 만들 수 있는 데에는 끝내주는 노래와 춤, 영상미의 역할이 물론 컸다. 모두가 기립 박수를 치고 싶어 했던 Another Day of Sun과 영화의 메인 테마로 사랑받는 City Of Stars는 많은 인기를 끌며 라라랜드의 여운을 한층 더 오래 가게 만들고 있다. 포스터에 그려진 탭댄스 장면을 만든 A Lovely NIght이 흘러나올 때와 재즈 클럽에서 세바스찬의 피아노 연주에 미아가 정신없이 춤을 출 때도 계속해서 회자되는 명장면들이다. 가정법 'IF'의 마법을 그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한 엔딩 시퀀스의 화려한 음악과 색감은 두 사람의 사랑이 새드 앤딩이란 것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



위와 같은 요소도 물론 훌륭하지만 라라랜드를 소위 말하는 '인생 영화'로 꼽을 수 있던 이유는 이런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담아낸 두 예술가의 아름다운 '꿈'과 겹쳐진 내 모습 때문이다.


'꿈'이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라라랜드의 명장면을 몇 가지 꼽자면 각자의 일로 바쁜 세바스찬과 미아가 오랜만에 만나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싸우는 장면, 미아가 마지막 오디션 기회를 얻어 Audition을 노래하는 장면, 그리고 5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 다른 남자와 결혼한 미아가 Seb's란 이름의 재즈클럽에 들어가는 장면을 꼽고 싶다. 세바스찬의 꿈에 대한 열정에 매력을 느낀 미아는 현실에 수긍하고 자신이 원치 않는 음악을 하는 그를 원망한다. 세바스찬은 그녀를 위해 그런 것이라며 대꾸하며 미아와 말다툼을 하고 1인극 공연에 불참하기에 이른다. 미아는 더 이상의 실패가 두려워 고향으로 내려가지만 마지막 오디션 기회를 전해준 세바스찬과 함께 다시 LA로 향한다. 미아는 오디션을 통과해 배우로서의 성공을 거두는 반면 세바스찬과의 인연은 지속하지 못했고, 세바스찬 역시 시간이 지나 자신만의 클럽을 여는데 성공하지만 그때 미아는 곁에 없었다. 이렇게 자신의 꿈은 이루었지만 서로의 사랑은 이루지 못한 미아와 세바스찬은 Seb's 재즈클럽에서 눈빛으로 재회하며 영화를 마무리한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내가 청춘의 꿈과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웃기기도 하지만 나도 짧은 생을 살아오며 참 다양한 꿈을 꾸고 다양한 꿈을 포기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꾼 꿈은 다시 별다른 생각 없이 져버리고, 부모님이 원하던 꿈을 꿀 때도 있었지만 금방 흘려버리고, 생애 처음으로 진정으로 흥미를 느껴 선택한 꿈은 주변의 반대에 무너져버렸다. 고전 재즈를 버리고 대중음악의 길을 택한 세바스찬의 모습은 그동안 내가 꿈꿨던 것들에 반하는, 그저 밥 벌어먹기 좋은 길을 택하려던 3년 전 나의 모습과 비슷하다. 미아를 탓하며 책임을 회피하던 그의 모습은 내가 선택하고 포기한 꿈들의 책임을 부모님을 탓하며 그들에게 돌리던 작년 내 모습과 비슷하다. 항상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오로지 나 자신만이 그 책임을 지려 다짐하려 했던 나지만 그러지 못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스크린에 비치어졌다. 그리고 오디션장에서 미아가 노래한 독백을 들으며, 보다 정확히 '꿈을 꾸는 바보'라는 여섯 글자의 자막을 보는 순간 내가 꿈을 위해 했던 작은 노력들과 포기하던 순간들, 새로운 꿈을 꾸며 매번 확신에 차던 모습이 모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금 나의 꿈은 무엇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2년 동안 그토록 원했던 길을 저버리고 얼마 전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내 선택지에 있었던 두 가지 길이 낭만적인 꿈과 현실적인 선택으로 완벽히 나뉜다고는 볼 수 없지만 현실적인 고민들이 그 선택에 반영된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나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있는 시기와 나 스스로 모든 것을 해쳐나가야 하는 시기의 과도기를 흘러 보내고 있는 내게 라라랜드는 지난날의 꿈들과 앞으로의 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해주었다. 전문 비평가가 아닌 지라 이 영화에 담긴 고전 영화에 대한 향수나 표현 기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꿈과 노래라는 두 소재로 나를 울린 것만으로도 많은 의미가 남는다.


지금도 바보처럼 직접 표현하는 것이 두려워 저 멀리 돌려 표현하고 있지만 언젠가 내가 선택한 길과 그 과정, 노력과 고민에 당당해질 수 있기를 꿈꾸어 본다. 꿈을 이룬 그들은 부럽지만 라라랜드와 똑같은 결말만은 오지 않길.




Here's to the ones who dream
Foolish, as they may se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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