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 힙합 가사 속 동성애 혐오
본 글은 글쓴이가 1학기 때 수강했던 인권 관련 교양의 과제로 제출한 레포트이다. 대학 레포트라 조금 딱딱해 평소 브런치 글과 조금 다르기도 하고, 교수님 요구 조건을 맞추느랴 글의 응집성이 조금 떨어지는 감도 있는데 양해해 주시길...
최근 케이블 방송사의 힙합 프로그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비주류 장르로 여겨지던 ‘힙합’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힙합에 대한 인기가 증가함과 동시에 힙합 가수들의 발언이나 가사의 내용에 대한 각종 논란도 함께 불거지고 있다. 힙합은 예전에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과 풍자, 혹은 약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등장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내용이 필수적인 것처럼 삽입되기 시작했고, 대중적 무대보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성장한 힙합의 특성상 별다른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었다. 과거 힙합 가사를 살펴보면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장애인이나 성적 소수자를 폄하하는 욕설, 인종 차별적 표현 등이 가감없이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문제는 이런 가사를 사용한 가수들이 대중적 인지도를 얻고 나서도 문제 의식을 갖지 못하여 아직도 이런 가사들에대한 필터링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성 혐오의 해’라고도불린 작년 한 해에도 논란이 되는 가수와 노래가 끊임없이 등장했다. 현대 대중 힙합 가사 속에서도 어렵지않게 찾을 수 있는 사회적 약자를 비방하는 욕설과 혐오 발언들에 대한 제고는 반드시 필요하다. 본 글을 통해서 ‘내가(feat. Beenzino & TheQuiett) – DOK2’라는 힙합 곡에서 ‘동성애 혐오’를 담고 있는 일부 가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이와 같은 잘못된 인식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살펴본다.
DOK2의 ‘내가(feat. Beenzino & The Quiett)’는‘내가 망할 것 같아?’라는 후렴구를 반복하며 자신들의 돈과명예를 과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곡이다. 3명의 래퍼가 일명 ‘자기 자랑’을 하는 가사들로 가득한데,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Beenzino의 가사이다.
Quiett형의 랩을 듣기 전엔 고추한테 경고하고 들어. 게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는 위와 같이 성정 지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담고 있는 가사를 통해 함께 노래를 만든 다른 래퍼를 치켜세운다. ‘게이 될 수도 있으니까’라는 표현은 충분히 혐오 표현으로 여겨질 수 있다. 가사는 ‘게이’라는 성적 지향을 ‘될 수 있는 것’이나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즉, 성적 지향을 하나의 ‘기호’나‘취향’으로 여겨 개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으로, 혹은 멋진 동성을 봄으로써 획득될 수 있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또한 '고추한테 경고하고 들어'라는 표현은 동성애를 단순히 성적흥분이나 쾌감의 영역에만 한정한다. 성적 지향에 대한 이런 표현과 근거하는 전제는 전적으로 잘못되었으며, 수많은 차별과 폭력을 양산할 수 있다.
동성애에 ‘변화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이는 과거 전세계적으로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폭력을 가한 ‘전환치료(Conversion Therapy)’가 성행할 수 있었던 기본 전제로 작용한다. 동성애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세기 초프로이트 같은 경우 동성애는 정신병이 아니고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성적 지향이 정해지며, 이미 정해진 사람의 성적 지향은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1920년대가 되면서 정신분석학계는 동성애를 일종의 병으로 추정하여 ‘전환치료’라는 명목 하에 동성애자에 대한 심각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전환치료'는 동성애를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것으로 느끼게 만드는 탈동성애 전도에서 시작하여 동성애 관련 매체를 보여줄 때 전기 충격을 가하거나 혐오약물을 투여하는 고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1950년대에 들어 미국 정신의학 협회에서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분류하자, 이와 같은 '전환 치료'는 더욱 더 성행되었다. 이에 저항하는 스톤월 항쟁 이후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규모화되며 미국 정신의학 협회의 '동성애=정신병 조항'이 삭제되었지만, 많은 국가에서 동성애 '전환치료'의 시도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건강한사회를위한국민연대'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같은 동성애 혐오 단체, 일부 기독교 언론 매체와 교회를 중심으로 동성애의 치료 가능성에 대한 주장이나 인권 침해적 발언들이 계속해서 제시되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심각한 인권 의식 부재는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할 정치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2016년 총선 같은 경우 ‘기독자유당’이란 이름을 내 건 정당이 핵심 공약으로 ‘동성애 법제화 반대’를 내세웠고, 최근 치러진 대선 토론에서도 동성애 자체를 반대한다는 혐오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동성애 자체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없는 개인의 성적 지향이다. 성적 지향에 대한 무지로 인해 이러한 발언이 가능했던 것이다. 최근 ‘동성애 엄벌’을 주장한 홍준표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한 전광훈 목사는 지난 2016년 3월 "동성연애를 국가 질병으로 규정하고, '메르스'처럼 '한센병'처럼 국가가 격리하여 치료해서 치료받은 사람은 정상적인 사회 활동으로 복귀시키는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바도 있다. 이 밖에도 매년 열리는 퀴어퍼레이드에 대항하는 동성애 반대 시위 등에서도 ‘동성애 치료’나 ‘동성애 반대’같은 잘못된 인식에 근거한 표현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고추한테 경고하고 들어. 게이될 수 있으니까’라는 가사의 표현은 동성애의 변화 가능성이나 선택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표출함은 물론 동성애를 육체적 쾌락에만 한정하고, 전환 치료라는 심각한 폭력의 기본 전제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이자 혐오 표현이다. 이런 무지가 ‘전환치료’까지는 직결되지 않더라도, 대선 토론에서 등장한 ‘동성애 반대’ 표현과 같은 방식으로 동성애자들의 존재애 대한 부정으로는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 혐오 집단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만연한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개인들의 탓도 물론 있겠지만, 동성애 이슈를 공론화하지 않고 교육하지 않는 전반적인 사회 풍토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규교육 과정에서는 성적 지향이나 LGBTQ의 명확한 개념을 가르치고 있지 않으며, 이를 교육할 계획조차 없는 듯 보인다. 수많은 오해와 혐오 속에서 성소수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벽장 속에 숨어 버리고, 성다수자가 성소수자와 소통할 기회 또한 더욱 더 줄어들게 된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부재가 명백한 혐오 표현이 대중 음악을 통해 아무렇지도 않게 재생산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만든 것이다.
일부 팬들은 힙합의 혐오 논란에 ‘힙합은 원래 그런 것’이나 ‘힙합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와 같은 말들로 반응한다. 힙합의 본토인 미국의 예시를 들어 그 논거로 사용하기도 한다. 힙합의 기원에 어떤 역사적 맥락과 조건이 있다고 해도 그 효과가 성차별적이거나 혐오적 표현을 담고 있다면 ‘힙합을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핀잔하면서 담론 형성 을 막는 것은 명백하게 문제다. 평론가 강일권은 ‘힙합은 원래 그래’라는 주장은 오히려 힙합 장르에 대한 비하와 멸시만을 불러올 뿐이므로 미국 힙합 장르 내에서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또 한 미국에서 한다고 한국에서도 한다는 방식의 접근을 지양해야 함을 주장한다.
예술과 표현의 자유 따위를 언급하며 반박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결코 ‘혐오의 자유’가 아니다. 자유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누리고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지 사회적 약자를 비방하는 ‘헤이트 스피치’는 결코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들어올 수 없다. 대중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힙합 가수들은 물론 극성 팬들 또한 ‘힙합은 원래 그래’라는 편협한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힙합의 혐오성을 인정하고 문제 의식을 가져야 한다. 문제점을 인정하고 공론화에 두려워 않는 것이 혐오 표현에서 비롯된 인권 침해를 줄이는 것은 물론, 대중 힙합 발전에도 기여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