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묵자 Aug 15. 2017

Prologue. 적막한 비행기 안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길

written on 2017.08.14.Mon. <Day 1>


생애 모든 비행시간을 합친 것만큼 긴 비행을 경험하고 있다.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선택한 창가 자리 예매는 이코노미석에서 13시간 비행이란 걸 깜빡한 채 이루어졌고, 옆에 있는 부부 승객에게 피해를 줄까 화장실도 못 가고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목표한 대로 카메라에 예쁜 뭉게구름을 몇 장 담긴 했지만 어둠이 찾아온 객실에서 조금만 건드려도 새하얀 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을 연다는 것은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다.

난생처음 혼자 경험하게 될 일들을 앞둔 내 심리 상태는 참 복잡하다. 시차 적응을 위해 깨어있어야 할 남은 비행시간을 어떻게 버틸지, 혼자서 입국은 잘할 수 있을지, 숙소 가는 길에 소매치기는 안 당할지 걱정이 한가득이다. 당장 지난주까지만 해도 학교 모의UN 행사를 준비하고 초등학생 교육 봉사를 하며 바쁘게 살다가 훌쩍 떠난 여행이라 그런지 아직도 실감이 안 나서 덤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감정들에 앞서는 것은 작은 설렘이다.

지금 이 비행기는 이탈리아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을 향하고 있다.

이번 내 여행은 매거진 제목처럼 '무작정' 떠나온 여행이다. 사전 준비 하나도 없이 배낭 하나 매고 훌쩍 떠나왔다는 소리는 아니다. 나름의 준비는 좀 했다. '무작정'인 이유는 여행을 결심하고 떠나는 타이밍도 뜬금없고, 유일한 여행지로 선택한 이탈리아란 국가도 주위 사람의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교통편과 숙소 예약은 겨우 했지만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싶은지 여행의 명확한 콘셉트도 아직 미지수라는 점에 '무작정'이란 수식을 붙여 보았다. 어제 새벽까지만 해도 유럽 자유 여행을 갔다 온 친구와 긴급 상담을 한 불안한 여정이다.

왜 혼자 떠나는 이탈리아인가?


수험생 시절부터 대학교에 가면 유럽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로망이기도 했지만, 여기에 붙은 다른 수식들은 몇몇 주변인들의 영향이 상당하다. 첫 번째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학과 동기의 겨울 동유럽 여행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처음 마주한 그녀는 글을 쓰기 위한 여행을 하고 있었고, 매일 게시글이 올라오던 담벼락을 보며 '유럽, 글, 사진'의 조합에 대한 동경이 생기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지금 군대에 가있는 동아리 선배의 영향인데, 학기 초에 여러 번 술을 기울이며 들은 선배의 여러 조언 중 하나는 꼭 혼자 여행을 떠나보라는 것이었다. 너무 좋아하는 형인지라 이야기만으로 혹하기고 했고, 또 얼마 전에도 혼자 여행을 간 그의 모습에 푹 빠져버렸다.


오롯이 나 자신에게서 나온 이유도 두 가지 정도 있다. 하나는 너무나도 바빠왔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혼자 타지에서 여유로움을 느껴보고 싶었다는 점, 또 하나는 짧게나마 브런치 매거진 하나를 완성하고 싶었다는 점이다. 작년 1월에 브런치를 시작한 이후로 글도 꽤 많이 쓰고 주변인들의 호응도 얻었다. 처음에 철학과에 가고 싶다며 철학에 대한 글을 막 썼지만 결국 다른 과에 오게 되어 자연스레 중간에 끊기게 되었고, 연재하리라 마음먹었던 다른 소재들도 힘없이 끊겨 버렸다. 가장 최근만 보아도 이탈리아 가기 전에 감성 좀 충전하겠다고 기획한 '영화에서 이탈리아 보기' 매거진에도 아직도 내 글은 한 편이다. 짧은 여행이지만 약 10개 이상의 도시를 들리는 다양성을 살려 각각의 도시만의 감성을 담아낸 글과 사진, 영상을 꼭 남기고 싶다.

이탈리아라는 국가를 선정한 데에 특출 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연이은 테러로 불안한 유럽에서 그나마 테러 위협이 적은 곳을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물론 이탈리아도 지금 반 관광객 시위나 고질적인 치안 문제로 그리 안전한 건 아니다) 너무 뻔한 국가 지우고, 정보 찾기도 어려운 국가도 하나 둘 지우다 보니 이탈리아가 남았다. 논리적인 듯한 이유를 몇 가지 말해보았지만, 사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소설가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와 '인페르노'의 배경이라는 점이 가장 큰 것 같기도 하다. 이탈리아로 정하고 보니 베니스의 상인도 좋고, 로미오와 줄리엣도 좋고 단테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도 마음에 들더라. 종종 내 선택과 판단은 이런 식이다.

원래 조용히 숨기다 훅 떠나버리려 했지만 결국 주변에 다 알리며 온갖 걱정을 뒤로한 채 출국하게 되었다. 하나 아직까지 내 여행의 걸림돌은 생각보다 무거운 48L 배낭 밖에 없다.



Buon Giorno!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