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청소년이 미래다
얼마 전 정치 관련 토크 콘서트를 보던 중 씁쓸해지는 순간이 하나 있었다. '국정 교과서 반대'라는 팻말을 들고 있던 한 남학생의 인터뷰이다. 그 학생은 부모가 쥐어준 팻말을 들고 있으며 그 내용이 무엇인지, 왜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지 전혀 대답하지 못하였다. 긴장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대답은 결국 '그냥 나쁘다'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비판적으로 수용할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이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대상에 있어 자신만의 논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
청소년은 몇 년 뒤면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되고, 정당에 가입하여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게 되는 민주 시민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나 참여 의지 등은 이들이 당장 내후년이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에 비해 너무나도 미약하다. 정치에 관심을 갖는 청소년들에게 종종 들려오는 어른들의 잔소리인 "어린것이 뭘 알아" 따위의 말에 100% 반대할 수는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학생들은 아직 사회에 나가 '정치'란 것을 경험하고, 참여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소위 말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때문에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엔 관심을 가질 여력을 상실하고, 공부라는 틀에만 갇혀 살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정치는 그들에게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물론 고등학교에도 정치에 관련된 교육은 있다. '법과 정치'라는 사회 탐구 교과목 중 일부 단원에 정치와 관련된 내용이 실려있기는 하다. 하지만 '법과 정치' 과목은 법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어 정치의 부분은 정말로 작을뿐더러, 일방적인 지식 전달로 수업이 이루어져 직접 토론하고 발표하며 의견을 조율해 나가야 하는 '정치'의 참모습과도 거리가 멀다. 정치를 조금이나마 배우는 이 과목의 수능 응시자 수는 전체 수험생 60만명 중 약 3만명에 불과, 정말 '일부'의 학생들만 배우고 있다. 법과 정치를 배운다고 해서 모두 현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2017 대수능부터 '한국사'가 모든 수험생들이 필수로 응시해야 할 수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다. 사실 정치, 경제 등도 인문계 학생들의 선택 과목으로 수강해야 할 과목이 아니라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민주주의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배우고, 체험해야 하는 것이다. 현실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정말로 일부의 학생만이 지식으로서의 정치, 경제를 배우고 있다. 청소년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민주시민으로서의 올바른 소양을 함양하고,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들기 위해선 무엇보다 작은 사회인 학교에서 '정치'에 대한 교육이 보강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학생들에게
직접 정치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토론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요즘 나 또한 많이 느끼는 것인데, 직접 친구들과, 또 선후배들과 한 쟁점에 대하여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토의하고 또 토론을 하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라 생각된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판단하고,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과 조화로운 타협점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내가 생각하는 정치의 기본 소양이다. 그러나 대부분 학교에는 이렇게 사회의 옳고 그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론장'이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요즘 '거꾸로 수업', '하브루타 교육법' 등 학생이 수업의 주체가 되는 혁신적인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어 암울한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EBS 다큐멘터리 속 안의 이야기로만 여겨지던 새로운 교육 방법들이 최근 들어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고, 주변 지역이나 학교에서도 간간이 시도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직은 소수 학교에 국한되는 일이겠지만, 낙관적인 미래를 기대해 볼만 하다.
단순한 학생 참여 수업을 넘어 더 심화된, 정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활동들도 존재한다. '모의국회', '청소년 의회', '모의 UN'등의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 일부 학생들은 이런 정치 참여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직접 국회, 의회 등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경험하며 정치에 참여해보는 경험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전자와 달리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공교육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일부 교육 관련 기관의 후원으로 드물게 제공되고 있다. 주최 횟수와 참가 인원도 지극히 제한적이라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공교육 차원에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정치적 무관심을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 중 하나이다. 직접 정치를 학교에서 체험해보고 사회에 나가는 것과, 공부만 하다 사회에 내던져지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이미 몇몇 연구에서 정치 활동과 유사한 형태인 학생회 자치 활동이나 학교의 사회 탐구 관련 교육이 청소년의 정치 관심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진 바가 있어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일명 '국영수 위주의 교육'이 지배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학교에 정치적 공론장을 활성화시키라니 굉장히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수업'이란 것이 이렇게 널리 퍼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유대인들의 교육 방법인 '하브루타'가 한국에서 주목받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작은 변화 시도가 전체의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는 법이다.
나 또한 이 '작은 변화 시도'의 일환으로 친구, 선배와 함께 직접 학교에서 '모의국회'를 개최해 보았다. 약 30명의 학생들과 위원회를 구성하여 주어진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책에 대해 토의하고, 결의안을 만들어 모든 위원들과 함께 토론하고, 또 찬반 투표를 부쳐 정책의 통과 여부를 결정해보았다. 처음으로 이루어진 행사라 물론 전문성 따위는 많이 부족했지만 실시한 설문조사의 응답을 분석해본 결과, 참여 그 자체는 확실히 유의미했다.
정치 참여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전과 후에 학생들의 정치 관심도, 정치 이해도, 정치 참여도, 정치 신뢰도 등의 척도를 측정할 수 있는 질문을 제작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해 보았다. 프로그램의 참여 전과 후의 참가자들의 응답 변화를 분석해보니 '정치 관심도'를 측정하는 질문들의 긍정 답변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물론 제대로 통제된 연구도 아니었고, 적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이 결과를 100% 신뢰할 순 없겠지만 이 프로그램이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심스레 확신해본다.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그것에 대한 관심과 참여 의지를 높여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학교의 프로그램 시행 이후 지역 내 다른 2개 고등학교에서 이를 모방하여 시행하기도 하였다. 무모한 시도가 작은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청소년들의 참여 의지는 생각보다 강하다.
이를 키워줄 환경이 부족할 뿐이다.
흔히 청소년이란 단어는 '미래'란 단어와 함께 거론된다.
아무리 어른들이 노력해도, 청소년들이 이어가지 못한다면 소용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청소년에게 달려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청소년은 많이 부족하다.
그래도 청소년이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