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는 어둠을 뚫고 내게 찾아와

글자를 읽는 것 너머 느낀다는 것은

by 이찬중


문학을 싫어했던 이과 소년이
스스로 시집을 사서 필사하기까지
힘들고 지치는 순간일 때마다, 시는 어둠을 뚫고 내게 찾아왔다


97C0C036-15D5-4230-BEF6-ECAE76128473.jpeg 생일 선물로 받은 시집. 하루하루 새로운 의미와 삶을 살으라고 준 귀한 선물이다.


문학을 싫어했었다.

왜 싫어했을까. 내게 문학이란 수능 점수를 낮추는 과목이었다. 특히 시詩는 고작 몇 글자에 의미부여나 하는 게 이해가 안 되었다. 과하게 말하면 겉 멋 부리는 거 같았고, 시인들끼리 북 치고 장구친다랄까. 이해도 안 되는 데, 억지로라도 외워 5지선다형으로 문제를 풀었어야 했으니 반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앞으로 문학을 볼 거라고 생각했다. 4년 뒤에 군대에서 내가 스스로 시를 필사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시를 읽게 된 이유는 조금 유치하고 우연적이었다.

군 입대 후, 내가 하는 '군사경찰'이라는 임무는 기지를 지키는 일을 한다. 당시엔 신병이라 하루하루 긴장감과 많은 생각에 빠져있었는데, 우울하지 않은 신병은 없다고 '나 여기서 뭐 하고 있지'하는 생각을 하며 하루를 버틸 때였다. 임무 특성상 같은 장소에서 교대로 근무를 한다. 일이 조금 익숙해지자, 매일이 같은 풍경에 질리기 시작했고, 조금은 멍 때리며 주변의 사물을 보기 시작했다. 하루는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보았는 데 문득 시 하나가 생각났다. 이상의 '이런 시詩'였다.


시를 싫어했던 내가 이상의 시를 기억했던 이유는,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좋아했던 시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거는 뭐든지 좋다고. 그 사람이 좋아했던 시라 스스로 찾아 읽어보던 유일한 시였다. '이런 시'를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보통 이 시는 사랑에 대한 내용이 담긴 후렴구가 유명하다. 그런데 사랑을 얘기하는 데, 도입부에서 돌멩이에 길게 서술을 한다. 왜 사랑 시에 뜬금없이 돌멩이가 나타났을까. 이상은 원래 이상한 시를 쓰니까 그러려니 했었다. 당시 내가 의문을 가졌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더라'

경계근무를 하면서 길가의 돌멩이를 바라보니, 내 기억 깊숙이 있던 이 문장이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보잘것없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치이는 나와 비교하며 '너도 나랑 비슷한 처지구나' 선임도, 친구도 위로해주지 못한 위로를 길가의 돌멩이에게 받았다. 그런 돌멩이를 이상은 주목했다. 의미부여를 해서 싫어했던 시로부터, 의미를 찾아 내 자존을 지탱해나가고 있었다. 고작 돌멩이로부터


그때 문득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숨겨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굴러다니는 돌멩이조차 의미가 있듯이, 세상 모든 것에는 의미와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럼 나의 군생활에도 숨겨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내가 지금 베레모를 쓰고 권총을 들고 있는 이 순간이 헛된 시간이 아니지 않을까. 그 의미를 찾기 위해 돌멩이에서 사랑을 찾은 시인의 눈을 빌리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 되면 필사를 하였고, 필사가 안되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시어들이 하나 둘 내 마음에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글자를 읽는 것을 넘어 느낄 수 있게 되면서

반년 정도 시를 읽으며 돌멩이에서 사랑을, 동해바다에서 넓은 마음을, 오래된 고궁에서 옹졸한 마음을 느끼며 감탄하기도 한다. 때로는 외웠던 시들의 시적 순간들이 내 삶에 일치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시들을 모아, 군복 왼쪽 가슴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내가 군생軍生을 보내며, 하루하루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의 다짐으로. 내가 싫어했던 시가, 아이러니하게 내 하루를 지탱해주고 있다. 나도 겉멋이 들었나 보다.


문학을 싫어했던 내가 스스로 시집을 읽게 되도록 변했듯이

세상에 숨겨진 의미와 이유를 찾으면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시인의 눈을 빌려 삶의 순간에 시적 상황이 마주칠 때마다 속으로 읊으며 나를 지켜나간다


그렇게 시詩는 어둠을 뚫고 내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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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時) _ 이상


역사役事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내어 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인가 본 듯한 생각이 들 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 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 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 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 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버리고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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