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사랑하는 이유

새벽 출근을 하는 군인이 새벽을 사랑하는 이유

by 이찬중


모두가 잠든 새벽 3시 반
우리는 군복을 입고 새벽 출근을 한다
피곤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새벽을 사랑한다


군대에서 어떤 일을 하냐고 하면, 대충 이런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출처 예천e희망뉴스)


새벽 03시가 되면 손목시계에 작은 알람 소리가 울린다. 아주 미세한 소리가 '삐삐삐' 울리고, 남이 깨지 않도록 재빠르게 알람을 끈다. 비몽사몽 일어나면 중앙에 있는 LED 시계 불빛에 의지해 군복을 찾는다. 군복을 입고, 군화를 조이고, 근무 수첩과 볼펜 한 자루를 챙긴다. 공삼 시 삼십 분, 모두가 한창 잠든 새벽에 나는 출근을 한다.


사람들이 군인들에게 '너 덕분에 밤에 두 발 뻗고 잔다.'라고 하는 표현이 있다.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다는 성의의 표현. 그런데 나에게 이 표현은 글자 그대로의 일상이다. 군인마다 각자의 임무가 있지만, 나의 임무는 24시간 교대로 기지를 지키는 일을 한다. 반드시 새벽에만 출근하는 것이 아니지만 낮보다는 밤을 볼 일이 많다. 피곤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난 이 새벽 출근을 좋아하고 나름의 낭만을 찾는다.


출근길에 별과 달과 해를 보는 것. 가끔 <서시>가 생각날 만큼 아름다운 별과 달이 있고, <광야>가 생각나는 우람한 일출을 본다. 우리가 근무를 핑계 삼아 이렇게 별과 달과 해를 볼일이 사회에선 얼마나 있을까. 그러다 남들이 출근할 때, 우리는 연어처럼 출근길을 거슬러 올라가 퇴근하고 늦잠을 잔다. 특별히 한 것도 없지만 오늘도 새벽을 지켜냈구나 하는 허위적 뿌듯함과 늦잠의 꿀맛이랄까


또 새벽에는 고요한 적막함이 있다. 할 일을 다하면 커피 한잔 타며 멍 때리며 여러 생각에 빠진다. 나중에 전역하고 뭐할까, 좋아하던 애는 잘 지내나,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미래에 대한 생각부터 과거의 흑역사까지. 초소에서 과거와 미래와 지금의 내가 만나서 마음속에서 대화를 나눈다. 가끔은 생각조차 쑥스러운 이야기들도 있는 데, 새벽 감성의 힘을 빌려 펜으로 눌러 적어본다. 때로는 글을 쓰기도 한다. 지금의 이 글도 초소에서 탄생했다.


꽤나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쓰여지고 사라졌다. 시간낭비 같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잔망들이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비록 몸은 갇혀있지만, 새벽의 적막함 속에는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는 황혼의 시간. 비록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이룰 거라며 펜으로 꾸역꾸역 써 내려가는 다짐. 부끄러웠던 과거와 앞으로는 더 잘해야지 하는 미래가 화해하는 공간. 그래서 나에게는 이 새벽들이 소중하다.


새벽 출근을 한 지 1년이 되어간다. 피곤함은 익숙함이 되었고 지금까지 참 많은 생각이 나를 지나가 일부는 나의 질서와 가치관이 되었다. 전역이라는 임이 언제 올까. 그럼에도 나는 꿋꿋이 수백 번의 새벽과 함께 임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반드시 오는 임을 향해, 가장 멋있게 임을 맞이 할 수 있도록 성실히 새벽을 지킨다.


모두가 잠든 공삼시 삼십분,

나는 별과 달과 해를 벗 삼아 두 눈 똑바른 채로 꿈을 꾼다.


이것이 내가 새벽을 사랑하는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시詩는 어둠을 뚫고 내게 찾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