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본 벚꽃이 가르쳐준 여유
작년에 벚꽃을 두 번 보았었다
영화도 두 번 보면 다르게 느끼듯이
두 번의 벚꽃은 내게 여유를 가르쳐주었다.
작년에 나는 일 년에 벚꽃을 두 번 보는 행운이 있었다.
진주에서 한 번, 평택에서 두 번. 작년 2월, 공군에 입대했던 나는 진주에서 훈련을 받았다. 모든 훈련을 마칠 시기에는 3월 즈음, 즉 벚꽃이 필랑말랑 할 때였다. 당시 나는 '소대근무'라는 일을 했었고, 나의 일 중 하나는 교통정리를 하는 거였다. 그런데 말이 교통정리지 도로 한가운데 서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20분씩 열중쉬어 자세로 가만히 있는 거였다. 하루 한 시간 내내 서있었다. 가만히 서있는 게 생각보다 많이 힘들고 지루했다
그 지루함을 달래준 것은 벚꽃이었다.
운이 좋게도 진주는 남방이라 봄이 빨리 왔고, 3월 말에 벚꽃을 볼 수 있었다. 4차선 도로 가운데 양옆으로 펼친 벚꽃 나무들. 2주 동안 같은 자리에서 서있으면서 벚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었다. 봉오리가 맺히고, 바람에 흩날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모습 모두. 교통정리가 지루한 군인에게 벚꽃은 그저 멍 때리기 좋은 풍경이었지만, 매일매일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었다. 꽃과 그렇게 친한 사람은 아니었는 데 말이지
찬란히 피었다 사라진 분홍색 정열이 아름다웠던 걸까.
밖에서 꽃구경이라는 걸 해본 기억이 없다. 내겐 벚꽃이 '중간고사'라는 꽃말을 가진 웃픈 의미였지, 특별히 몽글몽글해진 감성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밖에서는 그냥 보았던 걸 왜 이제야 문득 아름답다고 느꼈던 걸까. 생각해보니 여유가 생겨서 그랬던 거 아닐까 생각했다. 바깥에서는 벚꽃보다 중간고사를 생각하느라 바빴지만, 여기서는 매일 한 시간씩 서있어도 맘 편하게 구경할 수 있었으니까. 내가 꽃 하나 차분히 바라볼 시간 없이 바쁘게 살아왔었구나. 억지로 얻은 여유였지만 또 나쁘지만은 않았다.
살면서 이렇게 매일매일 벚꽃만 바라볼 날이 있을까.
한 꽃의 탄생과 승화라는 자연의 순환을 매일 지켜볼 여유와 이유가 언제 또 있을까. 군인이라는 핑계로 이 과정을 지켜본 것은 행운이었다. 남들은 내게 교통정리하느라 고생한다고 말해줄 때, 솔직히 난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았었다. 남들은 TV보며 쉴 때 나는 일을 더 했지만, 벚꽃은 지금 아니면 못 보았고 여유가 있어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보면서 다짐했던 건 전역한 후 첫 봄에는 바쁘더라도 시간 내서 꽃구경을 가야겠다 생각했다.
모든 훈련을 수료하고 평택으로 부대를 배치받았다.
진주에서 평택으로 올라갈 때, 벚꽃 전선도 함께 올라왔었다. 진주의 벚꽃이 지어갈 때 즈음, 평택에서는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했고, 나는 첫 근무를 다시 벚꽃과 함께하는 행운을 얻었다. 영화를 두 번 보면 다른 느낌이 있듯이, 벚꽃도 두 번 보니 다른 맛이 났다. 신병이라 낯선 환경에서 복잡한 마음과 긴장이었지만, 따사한 봄빛과 벚꽃의 춤들은 나를 담담히 위로해주었다. 꽃보는 맛을 제대로 느꼈고, 아마 이 맛을 여유가 생겼다고 할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이 찾아왔다. 하지만 바이러스도 함께 찾아왔다.
좋든 말든 멈추었다. 하지만 난 이 마비는 너무 바쁘게 살아왔던 우리들에게 모멘텀을 주는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번 일로 일상이 멈추면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지 않았는가.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조급함은 잠시 내리고, 억지로라도 가지게 된 여유를 잘 사용해보자. 한때 '해볼걸'들을 일상으로 돌아가면 '해야지'로 정리해보자. 우리도 벚꽃처럼 웅크렸다 풀리기를 기다려보자. 분명 이유가 있어서 멈추었을 것이고, 이유가 있을 때 다시 풀릴 것이다.
봄은 새로운 시작이자, 만물의 소생이오. 무한한 야성을 가진다.
일상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고, 원치 않게 얻은 이 여유는
분명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힘내자. 봄과 꽃들도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