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s Apr 28. 2019

새벽 2시 44분

젊음의 궁상

새로운 해를 하루 앞둔 오늘
나는 굽은 등으로 책상에 앉아있어.

마른기침소리와 함께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섞여서
생각보다 경쾌한 리듬감을 만들어 내는데도
내 기분은 그리 경쾌하지만은 않아.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어느 날부터
새벽 두 시와 세시 사이의 책상 앞의 나는 늘
무언가와 사투를 버리고 있었어.

사투라는 표현보다 내 눈이 볼 수 있는 최소한의 시야각만을
열어놓은 채 쓸데없는 감정은 모두 머리 뒤로 넘겨버리고
그 시야 안에 담겨있는 것에만 오롯이 집중했다 라는 표현이 맞을 거야.

그래서 그것이 표면적으로는 그저 마감일에 맞추어 끝내야 하는 일이건
혹은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아 당장 완성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만한
새로운 그림 이건 간에 나는 그 속에 얼굴을 파묻고 모든 것에서 도피했어.

그런데 오늘은,
그렇게 한참을 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어야 하는 새벽 2시 44분의
오늘은 이상하게도 그렇게 쌓아온 시간들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어.

차곡차곡 그려낸 그림만큼 쌓인 그 시간이,
타닥타닥 한 글자 한 문장씩 써 내려가는 이 글들이
제발 내가 바라는 곳으로 이번에는 나를 꼭 데려가 줬으면 하는
간절함이 가득해서 집중할 수가 없었어.

새로운 해를 하루 앞둔 오늘
나는 굽은 등으로 책상에 앉아서 두려워하고 있어.
군대 훈련소보다 수백 배 힘들게 느껴졌던 지난 3년의
삼재가 끝나는 마지막 날.

나는 바보같이 그렇게나 기다리던 새로운 1년을 앞에 두고
오히려 너무 열심히 견디고 버텨낸 나의 지난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 없을까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해독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