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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재 Jul 23. 2024

자전거로 달리는 몽생미셸 해변

퇴사 후 프랑스에 갔다 - 5.

6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한 이후 프랑스에 3주간 머물렀다. 구체적으로 지내되 촉박하게는 지내지 말자는 생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몽생미셸 이틀차. 호기롭게 3박 4일 일정을 계획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여유 넘치는 여행을 하게 된 저는 자전거를 빌려보기로 합니다. 몽생미셸을 등지고 2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작은 마을Beauvoir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다는 정보를 습득하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노멀 바이크'와 '전기 바이크' 중에 선택해야 했는데, 또다시 자신의 체력을 지나치게 믿어버린 저는 '노멀 바이크'를 외치고 말았습니다. 가격도 더 싸고 말이죠. 


    대여점BIK'INBAIE 직원은 놀랍도록 친절했습니다. 휴대폰 거치대도 달아주고 Komoot라는 바이킹 앱을 까는 것까지 알려줬습니다. 이틀 빌리는 데 36유로면 나쁘지 않습죠? 산악용 자전거였던 것 같습니다. 자알못이라 정확히는 몰라도 좌석을 한껏 끌어올린 게 아마 산악용 자전거 아니었을까요... 제가 가보려는 목적지를 알려주니 직원이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하더라고요. 해변을 따라 자전거길도 아주 잘 돼있다고요. 자신감을 충전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어제 걷는 게 워낙 힘들었어서 그런지 자전거는 일도 아니었죠. 작은 강을 따라 몽생미셸에서 비교적 큰 마을인 Pontorson으로 향하다 보면 철로 지은 다리 하나가 나옵니다. 그걸 건너면 줄곧 자전거길이 이어지죠. 길 잃을 염려는 거의 없습니다. 저는 초행길이라 Komoot를 수시로 켜보며 방향을 확인하긴 했지만요. 말들도 가는 길이라 그런지 중간중간 지독한 냄새가 날 때도 있지만 날씨가 굉장해서 모든 찝찝함이 씻겨 나갑니다. 마주 오는 자전거족에게는 온 얼굴을 구겨 웃어 보이며 '봉쥬!'라고 외칩니다. 그만큼 기분이 좋았거든요. 저같이 스몰 토크 공포증이 있는 여행객 입장에서 자전거 여행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대화를 두려워하더라도 사람은 종종 그리운 법인지라 이렇게 스치듯 인사나 나누는 게 여행을 완성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서도 중장년층에게 자전거가 인기인지 중장년 부부 바이커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무리 지은 자전거 동호회는 보지 못했지만요. 이어지는 풍경은 소박한 농가, 말, 소, 양, 하얗게 바래버린 논밭, 무성한 잡초, 파랗다는 말로는 부족한 정말이지 파아란 하늘입니다. 이런 하늘을 누리는 특권을 가진 유럽인들이 정말이지 부럽습니다. 이곳에서 그토록 탁월한 인상주의 작가들이 탄생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까요. 르누아르 같은 색감이 안 나오고 배겨?

    


    저의 목적지를 공개할 때가 된 것 같네요. 구글지도에 한국어로 '수산시장'Poissonnerie Chistrel이라고 표시된 곳에 좌표를 찍었습니다. 들판 사이를 수없이 가로지르고 민가와 바다 사이를 갈라놓은 갯벌을 오른쪽에 두고 한없이 달리면 다다르는 곳이었습니다. 정말 한 없이요. 길은 정말 잘 닦여 있어요. 그냥 저의 체력이 부족해 끝이 없다고 느껴졌을 뿐이죠. 사실 자전거를 버리고 싶었습니다. 분명 구글엔 1시간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3시간을 달린 끝에 마침내 도착했습니다. 엉덩이는 짓이겨져 닿기만 해도 통증이 오는 상태가 돼버렸습니다.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수산시장' 문을 두드립니다. '시장'이라고 하기엔 작은 해산물 가게라고 보는 게 맞겠네요. 동네 자체가 워낙 조용해서 솔직히 문을 열면서도 '그럼 그렇지. 열렸을 리가 없지. 그럼 난 어쩌지? 너무 배고픈데?'라고 속으로 중얼대면서 조심스럽게 '밥 되냐'라고 물었습니다. 다행히 불상사는 없었습니다. 오늘의 생선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작고 외진 동네에 있는 가게의 카운터 직원이 영어를 할 줄 아는 게 신기했습니다. 


    오늘의 생선은 가자미였습니다. 기대 속에 맛본 가자미는 오랜 배고픔 탓인지 아주 맛났습니다. 감칠맛이라고 해야 할까요, 식감도 좋았고요. 행복감이 넘실대지만 숙소로 돌아갈 생각이 나자 다시금 막막해졌습니다. 힘을 쥐어짤 수밖에 없습니다. 


 

     길을 떠날 때부터 불안했는데 역시나... 돌아가는 길에 크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자전거길 중간중간에 지그재그로 놓여 있는 통나무 펜스를 통과하다가 지나치게 속도를 내는 바람에 그만 오른 손잡이와 펜스 가장자리가 부딪히고 만 것입니다. 사실 부딪힌 뒤에 침착하게 바퀴를 굴렸으면 괜찮았을 텐데 두려움에 균형을 잃고 말았습니다. 자전거 체인이 빠져버렸고 바퀴에 달린 안전등이 깨졌습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바로 뒤에 사람이 오고 있어서 쪽팔리기도 했습니다. 'I'm OK'를 남발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털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어요.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자책하며 아픈 부위를 보니 멍이 2개 생겼더라고요. 빠져버린 체인을 다시 채우는데 손에 검은색 기름이 잔뜩 묻었어요. 갑자기 구두닦이가 된 기분이었죠. 손잡이에 걸어뒀던 헬멧을 푹 눌러썼습니다. 무거운 몸 들춰업고 숙소에 데려다줄 왕자님이 없었으니까요.


    자전거가 혹시 망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은 다급해졌습니다. 대여점 마감 시간인 오후 6시까지 도착하겠다는 일념으로 달렸습니다. HP가 계속 0.1에 머물러 있는데 와중에도 멈추지 않고 달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멍 +2, 지구력 +3... 죽을 둥 살 둥 도착한 대여점에서 직원은 부품을 이것저것 만져대더니 일단 타라고 합니다. 덜컹대던 소리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달리는 와중에 잠깐 페달을 헛돌리면 체인이 곧바로 빠져버려 더 위험해진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꾸역꾸역 호텔에 도착했더니 자전거 보관 펜스가 호텔 뒤편에 있다고 합니다. 찾아가니 펜스에 거미줄이 왜 이렇게 많은지. 그나마 깨끗한 곳에 자전거를 묶어둡니다. 일단 뭐가 어찌 됐든 터덜터덜 호텔에 들어가 몸을 뉘었습니다.


    몽생미셸 일대의 식당 문이 열리는 오후 7시! 배는 고프니 힘들더라도 일어나 다시 식당을 찾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무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아니고, 유바바의 온천처럼 밤에만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이세계 같기도 하네요. 어제와 같은 식당을 가기는 싫어서 (4화 참조) 위로 갔다 아래로 갔다 온 동네를 누비며 문 연 식당을 찾았습니다. 3곳을 들렀는데 풀북이거나 입구가 사라진 행방불명된 식당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자전거를 타기는 싫고, 멀리는 가야겠고, 질질 끌듯이 걸어서 다시 자전거 대여점이 있는 마을로 향했습니다. 실은 피자 푸드트럭이 있다기에 찾아간 것이었는데 좌표상 위치에 가정집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결국 다른 식당을 찾아야 했죠.


    새로 찾은 식당Le Bisqu'in에는 사람이 꽉 차있었습니다. 주인이 너무나도 분주해 보였어요. 처음엔 추운 줄 모르겠어서 바깥에 앉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참 동안이나 메뉴판도 받지 못하고 기다리다 보니 점점 해가 지면서 추워지더군요. 주인과 악착같이 눈을 마주치며 주문 기회를 쟁취한 끝에 덜덜 떨며 어니언수프와 사워크림홍합찜, 무알콜 모히또를 시켰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홍합찜은 프랑스 와서 먹은 것 중 가장 맛있었습니다. 양도 푸짐하고 따뜻하고 신선하고. 홍합이 작아서 양념이 잘 배어 있었고요. 홍합찜을 먹다 보면 비린맛이 잔뜩 나는 '꽝'이 몇 개씩 껴있곤 하는데 여기선 전부 맛이 좋았습니다. 힘들게 찾은 식당이라 더 맛있었던 걸까요. 남기고 온 홍합 몇 개가 아직도 아른 거리네요.



    해 질 녘. 몽생미셸을 바라보며 숙소로 돌아갑니다. 강을 따라 깔끔하게 닦여진 이 길을 걸을 때면 행복해집니다. 너무 얇은 겉옷을 걸친 바람에 벌벌 떨었지만 참 여행 다운 여행이었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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