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손편지를 썼던 이유

by 사육일칠

-군생활 잘했나 보네


고등학교 동창의 전역을 알리는 SNS 사진에 댓글이 달렸다. 사진 속 동창은 댓글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듯, 수많은 후임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단체 사진 말고도 후임 두어 명과 찍은 사진도 보았는데, 보면 볼수록 군생활을 정말 잘한 것 같았다. 만약 누군가 동창에게 "군생활 잘했어?"하고 묻는다면 전역날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겠구나 싶을 정도로. 단체생활을 잘했는지 따질 때, '그 사람의 마지막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함께했는가'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한 선임이 있었다. 그는 나와 친했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부대에 있는 사람 대부분과 친했다. 그만큼 그는 단체생활에 적응을 정말 잘했다. 자신이 선임인 상황에서는 선임의 지위를 포기했고, 후임인 상황에서는 선임인 사람이 선임 노릇을 맘껏 하도록 자신을 낮추었다. 계급의 차이를 한껏 무시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넓은 아량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그의 전역을 축하하는 날에는 역대급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들 것임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도 그의 전역을 축하하는 많은 사람 중 한 명이 될 것이다. 기쁜 일이다. 친한 선임의 마지막을 축하할 수 있으니. 그의 전역을 축하하는 사진 속 후임 중 한 명이 될 수 있으니. 그가 누군가에게 "군생활 잘했어?"라는 질문을 받고, 전역날 찍은 사진을 자랑스레 보여준다면, 사진에 내 모습도 담겨 있을 것이다.


후임 중 한 명이라. 글쎄다. 그가 전역하면 이제 오랜 기간 못 볼 테고, 나와 그는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는데, 그가 나를 '후임 중 한 명'으로 기억한다면 만족할 수 있을까?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전역을 축하하는 상황, 즉 사람이 너무 많아 진솔한 대화를 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진심을 정확히 전할 수 있는 방법. 그가 나를 '후임 중 한 명'이 아닌 소중한 인연으로 기억하게끔 하는 방법. 편지가 있었다. 그때부터 친한 선임이 전역을 할 때마다 진심을 담은 손편지를 썼다.


편지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방법이었다. 전역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 주는 사람이 부대에서 나 밖에 없었으니까. 경쟁자가 없는 블루 오션을 공략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조그만 편지로도 쉽게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왕 쓰는 김에 A4 종이에 꽉 채워서 편지를 썼다.


편지를 받은 사람에게 바랐던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희망 사항이었을 뿐, 요구하지는 않았다.


첫째는, 자신이 편지를 받았음을 부대에 있는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었다. 편지를 받은 사람이 '나 편지 받았어!' 한 마디만 해도 부대에 금방 소문이 퍼진다. 모두에게 편지를 쓸 수는 없기에, 편지를 받은 사람이 있으면 받지 못한 사람도 있다. 편지를 받지 못한 사람 중 나와 적당히 친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사람이 털털한 성격이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섭섭한 감정을 자연스레 느낄 것이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편지를 비밀리에 전하곤 했다.


둘째는, 전역 후에는 자신이 후임에게 편지를 받았음을 군대와 상관없는 지인에게 얼마든지 알리는 것이었다. 자신의 군생활은 후임에게 손편지를 받을 만큼 괜찮았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편지의 주인공이 군대를 벗어나도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길 바랐다. 아마 한 번쯤, 정말 한 번쯤 군대에서 받은 편지를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가 있겠지. 그럼 그 누군가는 "후임이 편지도 써 주고, 군생활 잘했나 봐?" 할 것이고, 당사자는 "에이 뭘.." 하면서 어깨를 으쓱거리지 않을까.


내게 편지란 군대에서 헤어지기 아쉬운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애증의 관계에 있었던 동기에게 편지를 쓰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덧 나의 전역날이 다가오고, 동기와 마지막 식사를 하게 되었다. 같이 식당으로 향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주머니에 숨겨놓았던 편지를 전달했다. 동기는 고마움을 표하고는 편지를 곧바로 낭독하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만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동기는 걷는 중이었지만 결코 편지를 설렁설렁 읽지 않았다. 편지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임에도, 중얼거리며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갔다. 그러다가 의문스러운 점이 있으면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 내 행동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고 적혀 있는데 정확히 무슨 이유로 기분이 나빴느냐'

'그때 말고도 내가 네 기분을 상하게 한 적이 있었느냐'


'이러이러해서 기분이 나빴다' 정도의 답변을 했고, 동기는 자신의 잘못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허무함이 밀려왔다. 1년 동안 동기에게 품었던 앙금을 손편지가 이렇게 쉽게 해결하다니. 아니,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니.


군대에서는 상대에게 불편한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싫든 좋든 오랜 기간을 함께 지내야 하기에, 사이가 틀어지면 서로를 향한 불편함만 남으니까. 기분 나쁜 말을 듣더라도 참는 게 미덕이라 믿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덕이라 믿는 쪽이 편했다. '군대에서 참지 않으면 나만 피곤해진다'는 생각으로, 미련하게 참기만 했던 내 성격을 합리화할 수 있었다. 애증의 동기에게 썼던 편지는, 군대라 하더라도 불편한 감정을 참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동시에, 꼭 편지여야만 불편한 감정을 전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편지는 하고픈 말을 잘 정리하여 상대에게 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편지에 의존할 수는 없다. 애증의 관계에 있었던 동기에게는 그나마 애(愛)가 있었기에, 전역 후에도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었기에 증(憎)을 편지로 해소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증(憎)의 감정만 남은 사람에게는 무슨 수로 속마음을 전할 것인가? 애(愛)의 감정이 없으니 편지를 쓰고픈 마음이 생기겠는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도 해야 하는 말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군생활 내내 그러지 못했기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싫어하는 선임에게는 '선임이라서', 성격이 맞지 않았던 동기에게는 '군생활 중 가장 오래 보니까' 같은 핑계로 해야 하는 말을 삼킬 만한 명분이 있었다. 군대에서 벗어난 지금은 더 이상 명분이 없다.


군생활이 끝나더라도 편지는 계속 쓸 것이다. 다만 섭섭하고 불편한 감정을 편지로만 전하기보다는 대화로 즉각 해소하는 능력을 갖추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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