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브런치 작가가 된 이유

불안하다는 이유로 자기 계발을 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

by 사육일칠

단지 불안해서 군대에서라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뿐이다. 거창한 이유를 하나 꼽자면 '글을 빨리 알려서 대체 불가능한 작가가 되기' 정도이다. '빨리 알려서'라. 조급함이 느껴진다. 빨리 알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


사실 군대에서는 멍을 때리며 보내는 시간이 많다. 군대에서 멍을 때리는 시간 또한 내 인생의 시간이다. 사회에서의 시간만큼 똑같이 소중하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는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유일하게 글쓰기를 할 줄 알았기에, 브런치 작가 심사에 최대한 빨리 합격해서 불안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것 말고도 군대에서 한 건 여럿 있다.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한 것, 책을 다섯 권 정도 읽은 것, 학점을 딴 것 정도인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 덕분이다. 사실 '덕분'이기도 하고 '때문'이기도 하다. 불안 덕분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불안해하는 시간이 많았다는 뜻이니까. 자기 계발을 하는 순간에는 불안하지 않았다. 동시에, 자기 계발을 접하게 된 후에는 뭔가를 하지 않을 때 더욱 불안함을 느꼈다.


다행히 군대에서는 자기 계발에 관심을 가지는 또래 친구가 여럿 있었다. '군대에서 굳이 열심히 살 필요가 있나'하고 나태함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이면 주변 친구들이 알아서 나를 자극해 주었다. 주변 환경 덕에 군대에서 무엇이든 이루었기에 전역이 두렵지 않았다. 전역 이후에도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올리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관심 분야가 생기면 틈틈이 공부도 하고. 성장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뜻밖의 기회도 생길 것이고, 언젠가는 나만의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으리라. 희망에 가득 찬 상태로 사회에 나왔다. '사회에서 나태하고 의욕 없이 보낸다면 어떡하지?' 걱정하기는 했지만, 에이 설마. 그토록 꿈꿔왔던 전역의 기쁨을 가지고 뭐든 못 하겠어?


그렇게 나는 뭐든 못 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전역의 기쁨은 일주일을 채 가지 않았다. 또한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10월에 전역을 하고 3월 복학 예정이라면 약 5개월 간의 공백기가 생기는데, 이 긴 공백을 밀도 있게 채울 현실적인 계획은 전혀 세우지 않았다. 그냥 군대에서 하던 것처럼 열심히 살면 되겠지, 정도로 생각만 했다. 군대에서 열심히 살 수 있었던 건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자극을 수없이 받는, 열심히 살기 좋은 환경 덕분이었음을 전혀 모른 채로. 또한 자기 계발하기 좋은 환경을 내 힘으로 만들어 본 적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학교, 군대, 아르바이트 활동)에 수동적으로 참여하기 바빴을 뿐. 환경에 의존했던 자기 계발의 한계가 드러났고, 가차 없이 무기력해졌다. 무기력을 느꼈지만 마음속으로는 얼른 자기 계발을 하라고 스스로를 재촉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기력을 잃어서인지 몸도 성하지 않았고, 장염을 오랜 기간 앓았다. 우울한 상태에서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으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겨우겨우 장염에서 벗어났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 계발을 하지 않고도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일단 자기 계발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꿔보기로 했다.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여태까지 자기 계발이 인생의 불안감을 모두 없애주리라 기대하곤 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자기 계발을 일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활동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해야겠다. 눈앞에 있는 저렴한 과자를 슬쩍 집어먹는 것처럼. 저렴한 과자에 대단한 맛을 기대하지 않기에, 대단한 맛이 나지 않아도 그러려니 한다. 만약 대단한 맛이 나면 예상치 못한 기쁨을 느낀다. '자기 계발은 저렴한 과자와 다름없다.'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비유를 중얼거린다.


두 번째로, 자기 계발을 하지 못하는 환경에서도 행복하려면 내 일상이 단단해야 한다. 여태까지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만 생각했지, 일상을 나에게 맞추어 계획하지 않았다. 얼마나 자야 하는지, 몇 시에 식사를 해야 몸이 가벼운지 등의 사소한 생활 습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소한 생활 습관이 내 인생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인생이 행복함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말이다. 일상을 단단하게 만들어 놓으면 적어도 무기력한 감정 정도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단단한 일상은 감정 상태를 정상 궤도로 올려놓을 것이다. 자기 계발을 '불안감을 없애는 치료제'가 아니라 '일상을 다채롭게 하는 곁다리'로 인식할 수 있는 상태 말이다. 언제든지 자기 계발을 가볍게 시작할 수 있도록 일상이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요즘은 <부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유튜버 김짠부 님의 책 추천 영상을 보고 사게 되었다. 왜 부동산을 공부하려고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라고 소개해 주셨는데, 살 때 당시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불안해 죽을지도 몰라'하고 전전긍긍하며 보내던 시기였으니까. 그런데 자기 계발을 무작정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을 먼저 돌아봐야겠다고 다짐한 이후, 그제야 김짠부 님의 책 소개가 와닿았다. 그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 때 이 책을 읽어 보려 한다. 왜 부동산을 공부하려 하는지 자연스레 생각하게 될 것이고, 왜 자기 계발을 하는지 생각함과 동시에, 내 일상이 얼마나 단단한지 살펴보려 한다. 천천히, 자주 읽어야겠다.


브런치 작가가 된 이유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글을 쓰고 브런치에 올리면 뭐라도 한 것 같은 기분에 불안하지 않았다. 단지 불안함을 덜어내기 위해서 글을 계속 써 왔다. 불안함 때문에 자기 계발을 계속해 왔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자기 계발에 지나치게 기대하지 않고, 일상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집중하며, 글을 쓸 때 조급해하기보다 즐거움을 느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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