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미워하겠지만
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부분 ‘올빽머리’였다.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나서 옆으로 흘러내리는 머리들을 모두 똑딱 핀을 꽂아 머리에 고정하고 다녔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피겨스케이터의 머리랄까. 나의 완벽주의 성향을 알고 계셨던 부모님께서는 내가 공부하는데 거슬려서 머리를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모두 고정시켜 버렸다고 생각하셨다. 하지만 틀렸다. 나 역시 평범한 십 대 여학생에 불과했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외모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았다. 내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올빽머리로 살았던 이유는 내 곱슬머리 때문이었다. 이쯤 되면 곱슬머리를 가진 사람들은 아 역시 그렇지, 라며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주 심한 곱슬은 아니지만 부스스한 것으로 따졌을 때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의 반곱슬을 가졌다. 그리고 미용실에 가면 서너 살 아이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기분이라고 미용사가 이야기할 정도로 머리카락이 얇고 숱도 많은 편이 아니라 나는 내 머리카락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특히 내가 가장 미워했던 부분은 옆머리로, 어렸을 적 보았던 ‘매직키드 마수리’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귀 옆 바깥쪽으로 뻗쳐 발랄하다기보단 우스워보이기까지 했다. 나도 친구들처럼 찰랑찰랑하고 가지런한 머리를 가지면 얼마나 좋았을까, 단정하고 청순해 보이면 정말 좋을 텐데 라며 바쁜 아침에 언니의 고데기를 빌려 머리를 손질하기도 했지만 어설픈 실력의 결과물은 절대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이런 나의 ‘곱슬머리 콤플렉스’는 계속되었고, 나는 양 극단의 두 가지 선택을 해보았다. 처음에는 파마를 시도했다. 사실 의사소통의 오류로 일어난 일이었는데 미용실의 아주머니께서는 나의 긴 머리를 거의 정수리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구불구불하게 만들어주셨고, 덕분에 나는 친구로부터 해그리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헤르미온느라면 좋았을 텐데 내 큰 키와 작지 않은 덩치는 아무래도 헤르미온느를 연상시키기에는 무리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 헤어스타일의 경우 골칫거리였던 옆머리를 더욱 얄밉게 뻗치게 했기 때문에 내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파마가 다 풀리기 전, 망설임 끝에 이번에는 매직스트레이트를 시도했다. 너무 드라마틱한 변화라 그랬는지 방방 뜨던 머리를 물미역으로 만들고 나니 비 맞은 생쥐꼴이었다. 안 그래도 가느다란 머리카락은 내 두개골을 감싸는 피부인양 얼굴선을 따라 딱 붙었다. 볼륨 없는 머리는 볼품없어 보였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 머리에 약간의 볼륨감이 생기고 난 뒤는 친구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모습은 아니라 아쉬웠다. 솔직한 친구 한 명은 파마가 더 마음에 들었었다며 그래도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답답하고 지긋지긋한 마음에 머리를 삭발을 해버릴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나는 내 곱슬머리를 싫어했지만 주변에 꼭 한 두 사람은 내 곱슬머리를 사랑해 주었다. 엄마는 고슴도치 맘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 곱슬머리를 좋아했다. 유난히 착 가라앉는 머리를 가진 엄마는 너 같은 머리카락을 가졌다면 소원이 없겠다며 내 머리카락의 볼륨감을 부러워했다. 머리를 묶는 것이 훨씬 잘 어울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묶었을 때 유난히 도드라지는 옆머리가 싫어 단발을 했을 때에도 어깨에 닿아 살짝 말리는 머리카락을 보고 파마를 한 거냐며 곱슬머리가 너무 예쁘다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기도 했다. 그래,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비가 내리거나 매년 찾아오는 암흑기인 장마철이 되면 개뿔 같은 소리, 진짜 최악이야 라며 치를 떨었다.
유난히도 길었던 이번 장마철에 내 곱슬머리는 유난히 더 신이 나보였고, 사실 이번 여름은 포기한 것에 가까웠다. 머리카락들은 또 다른 자아가 생긴 것인지 춤을 추는 것인지 저마다의 구불거림과 텐션으로 헤어픽서도, 에어랩도, 드라이도 모두 소용없게 만들었다.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창문 틈새로 불어오기 시작할 즈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연습에 한창이었던 나는 훨씬 차분해진 곱슬머리를 보며 이제는 이 원수 같은 친구와도 사이좋게 지내봐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방 뜨던 머리가 조금 진정되며 내 화도 누그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까지 내가 갖지 못한, 앞으로도 갖지 못할 생머리에 대한 동경만으로 죄 없는 곱슬머리를 미워하고만 살아햐하나. 못 가진 것을 바라기 전에 내가 가진 것을 이용하자,라는 생각에 유튜브에서 곱슬머리를 다루는 법에 대한 영상들을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트리트먼트와 린스로 수분감과 윤기를 더하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렸다. 어느 정도 물기를 제거한 후에는 보습을 위해 에센스와 오일을 발라주었고 탱글한 컬을 위해 머리카락을 쥐었다 폈다 하며 모양을 잡았다. 드라이는 하지 않고 그대로 자연건조를 했다. 결과는 꽤 놀라웠다. 여전히 약간 부스스하긴 했지만 탱글한 컬과 볼륨감으로 오히려 부스스함이 지저분하지 않고 자연스러움을 더해주었다. 애써 뿌리볼륨이나 옆머리 볼륨을 살릴 필요 없이 머리는 알아서 볼륨감을 유지했고 자연스러운 컬 덕분에 훨씬 더 생기 있어졌다. 차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제멋대로 구불거리도록 장단을 맞춰주니 내 곱슬머리는 훨씬 큰 기쁨으로 보답해 주었다.
물론 지금은 산뜻한 가을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또다시 계절이 돌고 돌아 여름이 찾아오면, 나는 늘 그래왔듯 내 곱슬머리와 다시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봄, 가을, 겨울 동안은 내 곱슬머리를 사랑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그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아, 그리고 여전히 옆머리는 뻗치고 있는데 이쯤 되니 귀엽지 않은 내게 주어진 유일한 귀여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사진 출처 Unsplash_Kier in Sight Arch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