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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안에서.

2025.02.26 수

by JasonChoi

그날 나는 굉장히 머리가 아픈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침부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었는데, 집주인이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4년 만에 처음이었다. 집주인 분도 내 번호를 알고 계시지만, 예의상 부동산을 거쳐 연락을 준다고 전달을 받았고, 회사 점심시간에 맞춰 집주인 분께 전화를 드렸다. 내용은 간단했다. 월세인상건이었다.

사실 4년간 동결이었고, 주변 동네가 전부 올랐으니 당연한 이야기이긴 했는데, 세상 모든 물가가 다 올라도 내 월급만 안 오른다는 건 그대들도 모두 알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홧김에 이사 준비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해버렸다. 일단 뱉어버린 말이니 당장 집을 알아봐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지금 컨디션정도의 집을 찾지 못하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굉장히 머리가 아픈 상황이다.


일단 집은 계속 찾아봐야 할 문제고, 당장 짐정리도 시작해야만 했다. 작은방의 컴퓨터와 책상은 분리해야 하고, 거실 겸 안방의 옷장, 서랍장들도 전부 정리해야만 한다. 할 일이 갑자기 태산처럼 많아졌다.


그렇게 일단 짐정리를 바로 시작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먼저 필요 없는 옷들부터 골라내기 시작했다.

작은방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옷들을 모두 정리하고, 정말 오랜만에 캐리어가 들어가 있는 옷장 문을 열었다.


세상에.

옷장 안에서 그동안 내가 찾던 물건들이 모두 얇은 먼지옷에 덮인 채 내가 찾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운동할 때 신으려고 했다가 못 찾아서 새로 산 장목양말, 여행 갈 때 가지고 가려고 애타게 찾던 블루투스 마이크, 교회 아동부 친구들에게 전해주려 했던 만화성경책, 청소할 때 필요해서 온 집안을 찾아 뒤짚게 만들었던 청소기 헤드부품 등 그 밖에도 외장하드, 의자받침대, 트레이닝복 같은 것들도 아주 오랜만에 바깥공기를 마시게 해 주었다...


아, 정리할 때가 되니, 또 한 번, 왜 미리미리 정리를 하고 살지 않았을까 하는 자괴감과 후회가 밀려온다.

다음에 내가 살 곳에선 반드시 매일같이 정리하면서 사는 내가 될 것이다라는 헛된 다짐과 함께 계속해서 짐을 챙기고 있는 나였다.


얼추 옷 정리를 끝내 두고 청소를 하고 있을 때쯤,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또 무슨 일이지 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집주인 분께서 원래 올려달라고 했던 금액에서 조금 더 낮게 월세를 조정해 주셨으니 괜찮으시면 그냥 계약하자고 전달해 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집에서 5년 차 생활을 시작하였다.

물론 미리 정리하면서 살기 위해 조금은? 노력 중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또 오랜만에 만나는 내 물건들이 생길 거라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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