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6 목
매일 저녁 퇴근길마다 보게 되는 모습이 있다.
내가 사는 곳 맞은편 아파트 7층의 창문.
거실 베란다가 위치한 그 창문은 언제나 커튼이 쳐져있는데, 저녁 8~9시 사이에 아파트 단지를 지나다 보면 항상 같은 위치에 서있는 여인을 볼 수 있다.
물론 실루엣만 보이는 것이지만,
어떻게 매일 같은 자리에 같은 시간에 서있는 것인지 참 궁금해하곤 했다. 서있는 자리에서 아주 조금의 변동만 있고 항상 그 자리에 서있는 그 사람. 도대체 어떤 본인만의 루틴이 있는 걸까?
실루엣으로 보이는 그 여인의 모습은 긴 머리에 원피스를 차려입은 모습이라는 것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주말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언제나 평일 저녁 퇴근길에는 항상 그녀의 실루엣을 찾아볼 수 있다. 잠깐 스쳐 지나가듯이 보기 때문이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은 보지 못하였고 그저 그녀의 실루엣만이 항상 눈에 보이곤 하였다.
그러다 어느 날, 같은 시간의 퇴근길에 무언가 허전한 7층의 창문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녀의 실루엣이 보이지 않았다. 창문의 불은 그대로 켜져 있고, 커튼도 쳐져 있었지만, 그녀의 실루엣을 찾을 수 없었다. 왜인지 모르게 장장 1달 만에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그녀의 실루엣에, 놀라기보다는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
분리수거장을 지나는 길, 눈에 익숙한 물건을 보게 되었다. 배우의 실물사이즈를 본 딴 등신대였다. 순간 나의 머리에 스치는 미동 없던 창가의 여인이 떠올랐다.
아, 그렇구나. 내가 퇴근길마다 바라보던 7층 창문의 여인은 바로 너였구나! 바보 같은 현실에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긴 생머리인 건 맞았고, 옷은 등신대라 원피스처럼 보였던 거였지, 사실은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계셨네. 근 1달간 나의 퇴근길에 작은 궁금증을 선물해 준 등신대, 아니 창가의 여인.
앞으로 어디를 가든 등신대가 보이면 나의 기억 속엔 7층 창가의 여인이 생각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