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진흙처럼 걸쭉한 기억' (재닛 피치의 작품에서)

2025.03.05 수

by JasonChoi

오랜 친구와 관련된 기억이 하나 있다.

중학교에서 만나 20살 청년이 될 때까지

세상에서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시절 하굣길에 친구들과 PC방을 다니다 말을 트게 된 그 친구. 특별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왜인지 금세 친해져 버린 친구였다. 방과 후에 축구와 농구를 같이 하고, PC방을 다니고, 노래방을 다니며 그렇게 친해졌고, 주말에는 도서관에 가고, 내가 다니던 교회에도 함께 가던 친구.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서로 다른 곳에 배정되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저녁에 만나 쓸데없는 잡담을 하고, 산책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루는 그냥 습관처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시간이 늦어 갈 곳이 없어져서 어머니의 차키를 빌려 차 안에서 내내 수다를 떨기도 했다. 수다거리가 떨어지면 그냥 서로 아무 말하지 않고 4-5시간이 지나도록 그저 앉아만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당연하게 느껴졌던, 그렇게 편하고 가까운 친구가 옆에 있었다.


그런 가까운 날들을 뒤로하고, 대입을 앞둔 어느 날,

둘 모두가 친하게 지냈던 다른 친구 2명과 동네를 걷고 있었다. 멀리서 익숙한 모습의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고,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그냥 무시였다. 당황한 우리는 뭐라 말 한마디 못해보고 그 친구를 그냥 보냈고 그렇게 허무하게도 우리는 멀어지게 되었다. 며칠 뒤 다른 친구들과 함께 연락도 해보고 동네에서 마주치기도 했지만, 우리는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그 친구의 차가운 반응을 그저 방관하기만 할 뿐이었다.


나에게는 청소년기 모두를 함께 한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하나였던 사람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친구 하나를 잃었다. 그토록 가까웠음에도 아무런 이유조차 모른 채.


나에게 이 기억은 진흙처럼 걸쭉한 기억이었다.

질척 질척하게 내 인생에 항상 붙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그런 기억. 닦아내고 싶지만 쉽지 않고, 털어내고 싶지만 다른 곳에 또 묻어버리는 그런 기억. 힘껏 그 속에서 발을 뽑아내버리고 싶지만 좀처럼 발이 빠지지 않는다. 20대 초반에는 그 진흙에서 발을 빼려다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기도 했고, 20대 후반에는 발을 빼는 도중 헛디뎌 다른 발이 더 깊이 빠져버리기도 한 것처럼, 나에게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은 진흙과도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중이다.


지금은 그 진흙 속에서 애써 빠져나오려 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이미 더욱 소중한 친구들이 생기게 되었고,

그들로 인해 과거의 기억은 빠르게 흐릿해져 가게 되었기 때문에. 하지만 잊어버릴 수는 없을 기억일 것이기에, 그 시절 나에게 정말 가깝고 멋진 친구가 있었구나 라는 기억으로만 남겨두려고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누군가 당신에게 한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