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4 화
'사랑해서 떠난다는 그대,
거짓말이라도 믿어볼게요.'
박기영의 '그대 때문에'라는 노래 가사.
드라마나, 영화 속 이야기, 또는 노랫말에서나 찾아 듣던 이야기를 실제로 겪어보면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사랑해서 떠난다는 이야기는 참 책임감 없는 거짓말이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서로 사랑하면 누군가가 죽는 그런 드라마나 같은 일이 벌어질 일도 없다. 그런데도 그저 태연하게 뱉던 그 말들이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사랑해, 하지만 우린 헤어져야만 해.
여기서 사랑해는 그저 자신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하기 위한 스스로의 최면일 테고, 우린 헤어져야만 해가 거짓 하나 없는 진실일 것은 분명한데, 어차피 헤어지는 마당에 필요 없는 거짓말을 뱉는 이유가 너무 어이가 없다.
사랑한다는 말이 절대무적은 아니지 않은가.
사랑한다는 말 뒤에 어떤 말이 나와도 상대방이 받아줘야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
서로가 만나 서로를 사랑할 확률은 기적과도 같은 확률일 테지만, 우리는 그런 기적을 항상 목격하고 경험하고 살아간다. 반면 그 기적을 지키지 못하고 헤어져버리는 상황 또한 항상 목격하고 경험한다.
헤어지는 데에는 항상 이유가 필요하다.
물론 사랑에 빠지는 데에도 항상 이유가 필요하다.
그런데 걔 중 반드시 사랑한다는 말을 핑계로 헤어짐의 이유를 명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헤어짐의 이유를 말할 수 없거나, 힘들어서 사랑하지만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상대를 향한 희망고문을 자행한다.
사랑하지만 헤어지자 라는 말을 전해 들은 상대의 입장은 당연히,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야 해?라는 의문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누가 하나가 정말 반인륜적인 불상사를 저질러서 헤어지는 게 아닌 이상,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이에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까지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무책임하게 헤어짐을 종용하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누군가는 헤어짐의 이유를 더 확실하게 팩트로 말하는 것이 잔인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결말이 이별이라면, 솔직하고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어야 상대 또한 아주 조금이라도 미련을 버리기 쉽지 않을까.
일방적인 사랑이 금방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처럼,
일방적인 이별 또한 상대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 일상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친구의 질문에 당연히 아는 답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나는 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그 순간도 너무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받는다면 그건 또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종종 이런 대화를 친구들과 하다 보면, 꼭 이런 반론이 나오기도 한다.
'꼭 말로 해야만 알아?'
물론 말로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고, 알아챌 수 있는 일들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한 호감도가 형성되어 간다. 그런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말로 해야만 그걸 아냐고 한다면, 모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서로 사랑함으로 관계를 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면, 이별하는 순간에도 서로를 위해 약간의 배려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의 거짓말을 믿어보려 했지만, 그녀의 이별통보 며칠 후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서로는 그저 악 밖에는 남은 것이 없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한 거짓말은 함께 지내온 순간 모두를 부정하는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