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연애는 하고 싶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연애 감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무뎌진다는 표현을 하지만 연애가 아닌 다른 부분에 우선순위가 밀려서 잠시 느끼지 못할 뿐이다. 누군가와 시간과 감정을 교류하고 일상을 나누며, 위로하고 의지하는 관계는 나이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바다. 나이와 상관있는 건 연애 방식이다. 확실히 40대의 연애는 20, 30대의 연애와는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연애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감정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 경험을 되돌아보면 20대에는 감정에 솔직하고 즉흥적이며 연애가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상대방이 나를 최우선으로 여겨주지 않으면 그 자체로 너무 서운하다. 30대쯤 되면 연애 경험도 한두 번 생기고 결혼에 관한 생각이 생기면서 연애에 현실이 추가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좋아하는 감정만으로 관계가 성립되기보단 서로가 원하는 조건이나 상황이 추가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30대는 사람을 제일 많이 만나게 되는 시기이다. 가벼운 연애라든지 잦은 썸, 소개팅이 이어지며 연애 경험이 쌓이게 된다. 경험상 동시에 여러 소개팅이 들어오면 누구와도 이어지지 않게 되고, 나중에 아쉬워하는 일이 생기는 것도 30대이다.
40대는 또 다르다. 40대이면서 아직 싱글이라면 나의 경험과 주변의 경험들로 인해 쌓인 데이터로 충동적으로 연애에 빠져들기가 힘들다. 이건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30대까지의 연애와 비교하게 되면 왠지 열정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또 하나 40대의 연애의 특징은 40대에는 연애를 하더라도 최우선 순위가 되진 않는다. 40대에는 일이나 가족, 관계 등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많다. 여러 부분에서 역할이 작지 않기에 연애에만 에너지를 집중할 수 없다. 그러니 이걸 받아들이고 서로의 다른 삶의 부분도 인정해줘야 한다. 단, 최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거지, 연애를 하는 이상 상대방은 항상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난 굳이 연애할 필요를 못 느낀다.
40대 싱글의 특징을 보면 연애를 하지 않아도 시간을 잘 보내는 나만의 노하우가 쌓여 있다. 연애가 필수가 아닌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만나고는 싶지만 동시에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 노력을 하기 귀찮아하기도 한다. 귀찮음이 연애 감정을 이겨버렸다. 그러나 40대에는 20대, 30대와 비교할 때 좋은 인연을 만날 기회가 확 줄어든다. 그러니 연애하고 싶은 중에 운 좋게 맘에 드는 이성을 만났다면, 귀찮음 따위는 저 멀리 던져버려야 한다. 내가 최선을 다해도 나와 인연이 될지 알 수 없는데, 안일한 태도라면 나중에 ‘그때 그 사람이 괜찮았는데...’라며 후회하기 쉽다.
나이를 먹는다고 사랑에 타협이 가능해지거나 취향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취향은 더 확고해지고, 안 되는 것은 더 많아진다. 이런 점이 30대 중반 이후부터의 연애가 더 어려워지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마음속 깊이 알고 있다. 이대로는 인연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연애하고 싶다면 삶을 나눌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면 어느 정도의 타협이 필요하다. 예전에 ‘이랬으면.’ 하는 조건들은 제일 중요한 것만 남기고, ‘이건 진짜 안돼’하는 것들을 미리 정해둬야 한다. 다만, 자신과 타협하란 의미이지 상대방을 만나며 그 사람과 타협하라는 건 절대 아니다. 타협의 주체는 항상 내가 되어야 한다.
40대쯤 되면 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되고, 현실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된다. 내 장점과 강점을 파악해서 관리하고 어필하는 것도 중요하다. 외모가 될 수도, 성격이 될 수도 아니면 능력이 될 수도 있다. 나도 이미 상대방에게 모든 게 완벽한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종종 주변 또래 싱글들에게 한 번씩 하는 말이 있다. “여태 싱글인 사람들은 다 하자가 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고.” 나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절대 나나 남을 비하하는 표현은 아니다. 그냥, ‘나는 아직 괜찮은데 좋은 사람이 없어.....’라는 건 순전히 내 위주의 생각이라는 걸 깨닫고자 하는 농담일 뿐이다.
독서 모임 뒤풀이 자리에서 연애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다들 연령대가 비슷하고 3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의 나이였다. 거의 싱글이었는데 다들 결혼은 하고 싶어 했다. 아직 상대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지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신기했던 건 이상형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물어봤을 때 거의 공통으로 나온 답이 있다. “똑똑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남자도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똑똑하다”하는 건 ‘현명하거나 얘기가 통하는 사람’에 가까운 의미였다. 다들 성격과 직업이 다른데 비슷한 이상형을 원하는 게 신기했다. 다들 40대가 되기까지 여러 연애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 결과로 가장 바라는 점은 “말이 통하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이라는 비슷한 결론이 나온 것이다. 인상 깊었다.
40대가 되니 연애할 때 설렘보다 편안함이 더 좋고, 열정보다 신뢰가 주는 안정감이 더 좋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자체로 항상 설레니 연애의 목적으로 설렘을 따로 찾을 필요는 없다. 잔잔하지만 믿음이 가는 단단한 관계가 내가 원하는 관계이다. 편하지만 만만하지 않고 언제나 내 편일 거 같은 든든함 말이다. 나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듣고 “그랬구나.”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는 내 사람한테 그렇게 해줄 수 있다.
맘에 드는 사람이 생겼을 때 가장 경계할 점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인연이 반가워서 또는 나이가 많다는 압박감에 조급하게 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조급함은 티가 나게 마련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조급한 사람은 지게 돼 있다. 난 밀당을 잘 못해서 연애에서 이기고 지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조급함을 티 내는 것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실제로 나도 ‘괜찮은 사람인 거 같다.’라고 생각하고 만남을 이어가다가, 남자가 조급하게 굴면 뭔가 부담이 느껴지면서 반감이 생긴다. 여자가 조급하게 굴면 남자는 흔한 말로 “잡은 물고기”라고 느끼는 것도 같은 심리일 것이다. 인내심을 갖자. 상대방을 천천히 관찰해 보자. 상대방이 보여주는 태도와 행동이 나를 좋아하는 표시라는 확신이 든 뒤에 뛰어들어도 늦지 않다.
언젠가 고향 집에 내려가며 고속도로를 운전하다가 문득 ‘연애도 운전처럼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주행할 때 브레이크를 잘 밟지 않는다. 속도 조절을 액셀로 하는 편인데 그래서 나한테는 차간 거리가 중요하다. 앞차가 빨리 달리면 거리를 유지하며 속도를 높이고 속도가 줄면 나도 액셀에서 발을 조금 뗀다. 연애도 그렇게 상대방과 속도를 맞추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달려서 지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고속도로에서 제일 싫어하는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자주 밟는 차다. 속도를 급하게 줄이는 것 말이다. 그게 몇 번 반복이 되면 결국 난 차선을 바꿔버린다. 연애도 그렇다. 길게 이어갈 인연에 감정의 속도야 변동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 감정과 상관없이 혼자 브레이크를 반복해 밟는 경우는 내가 차선을 바꿔야 한다. 그 차를 괜히 따라가서 스트레스받는 건 나 혼자일 뿐이니까.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행복의 중심인 사랑을 뒷전으로 미루거나 오락거리로 치부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삶에서 중요한 것을 다 갖춘 뒤에 누릴 사치로 여기기도 한다. 심지어 그것이 진심이 아닌데도 그렇게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나에게 솔직해져야 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건 지금 해야 한다. 연애하고 싶다면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자. 인연을 만날 기회가 있는 자리에 나를 노출시키자.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을 만한 곳으로 간다면 더 좋을 것이다. 누군가에서 호감이 생기면 상대방과 친해지며 서로 알아가고 맞춰갈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자. 40대의 특징인 여유를 연애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우린 이미 애써서 되는 일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내 인연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열린 마음과 태도를 가져보자.
마흔 살의 연애는 단순히 둘이 즐거운 데이트를 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이어질 긴 인생에서 어떤 사람과 함께 나의 존재감을 유지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러니 신중하게 여유 있게 동시에 적극적으로 내 인연을 찾아보자. 내 인연 찾는 과정을 내 인생의 행복을 찾는 과정으로 생각하면 스트레스보단 즐거움과 기대감이 더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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