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언니의 일상다반사
엄마가 다치셨다. 척추 골절로 허리뼈가 주저앉아버렸다. 내 잔소리가 두려우셨던(?) 엄마는 처음에는 그냥 넘어지셨다고만 하셨고, 본인도 그렇게 믿고 싶으셨던 듯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도 심해지는 통증에 병원에 가서 MRI 검사를 한 결과 척추 골절, 말 그대로 허리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정식 진단을 받기 전에도 워낙 통증이 심해 거동이 불편해하셔서 내려가서 좀 간병을 해야겠다고 맘먹고 있던 시점이었다. 마침 전화 온 엄마는 도우미를 불러야겠다며 집안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셨다.
"내가 내려갈게요. 안 그래도 내려가려고 했어요."
"진짜?? 그래도 괜찮겠어? 네가 온다고 하니까 너무 안심이 돠면서 눈물이 나려고 하네.."
순간, 진짜 힘드셨구나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명자씨, 우리 엄마는 강하고 긍정적인 분이다. 초년, 중년의 삶이 녹록지 않아 고생을 꽤 많이 하셨지만 언제나 밝게 사랑으로 우릴 키워주셨고, 사람과 상황을 대할 때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오신 분, 그래서 내가 주저 없이 "제일 존경하는 사람"으로 꼽는 분이다.
그런 엄마도 나이가 70을 넘어가시니 '많이 약해지셨구나..'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번이 결정타였다. 다행히도 엄마는 이 나이 되도록 크게 아프거나 입원하신 경험이 없다. 나이 드신 분들의 친구(?)인 고혈압이나 관절염 정도의 이슈는 있었지만 큰 병이나 큰 사고는 없었기에 스스로도 '나 정도면 건강하지~!'의 마음으로 살아오신 듯하다.
허리를 크게 다쳤기에 일단 거동이 힘들었고 통증이 심하셨다. 결정적으로, 혼자 버티던 기간에 약을 먹기 위해 아픈 몸으로 겨우 식사를 챙기는 동안, 엄마의 멘탈이 무너져버렸다. 외롭고 서럽고 우울하셨다고 했다. 너무 속상했고 좀 더 빨리 내려가지 않았음이 죄송했다. 엄마 입맛에 맞는 식사를 챙기며 몸을 다독이고, 엄마와 수다를 떨며 멘탈을 끌어올렸다. 평소에도 엄마와는 수다가 끊이지 않는 편이라 다행히 점점 안정을 찾아가셨다.
효율적인 치료를 위해 척추에 뼈성분을 주사하는 시술을 받기로 했다. 입원이 필요했고 시술을 받은 병원은 마침 엄마가 10년 전에 10년 정도 간병인으로 근무하셨던 의료원이었다. 입원을 위한 검사와 치료기간 동안 엄마를 알아보는 간호사분들, 간병인 분들이 있었는데 다들 너무 반가워하셔서 엄마의 그 세월이 어땠는지 짐작이 됐다. 동시에 내가 엄마를 간병할 수 있는 상황이 너무 감사했다. 경제적 상황을 떠나 보호자가 같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안 돼서 간병 병동에 계신 분들을 보면 왠지 기가 죽어 보였다. 간호사들의 평범한 말에도 긴장하시는 듯 보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옛 일터에 오게 되니 엄마도 예전 기억들이 많이 떠오르신듯했다. 그중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퇴원할 때 슬리퍼가 필요한 분이 있었는데, 보호자가 없어서 곤란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엄마가 퇴근하면서 슬리퍼를 사다 드리고 퇴원을 도와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환자분들이 한 번씩 단체로 삼계탕 같은 특식을 시켜드시는데 그중 넉넉하지 않으신 분들은 같이 못 드신다고 한다. 엄마 생각엔 조금씩 나누면 같이 드실 수 있을 거 같은데 모든 사람들의 맘은 같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을 일이다. 맘에 걸린 엄만 퇴근하면서 다음 근무자에게 삼계탕 값을 맡겨두고 못 드신 그분을 챙겨달라고 부탁하신다고 했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들으며 계속 생각나는 단어가 "측은지심"이었다. 엄마는 천성적으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잘 챙기시는 분이다. 요새도 가끔 마을행사를 총괄하며 치르시고는, 엄청 힘들었다고 하실 때가 있다. 그럼 난 이렇게 너스레를 떤다. "엄마가 쌓은 복이 다 나랑 보연이한테 올 거야 ㅎ"하고..
퇴원한 지 한 달이 다 돼가고 많이 회복되셨다. 엄마들은 원래 딸 말을 잘 안 듣는 편이다. 괜찮다고 방심하고 또 집안일하다가 통증이 다시 온 거 같지만 뭐.. 말릴 수도 없고, 본인이 젤 속상해할 테니 그냥 몸조리 잘하자고 되새김만 한다. 퇴원 후에 얼마쯤 지났을 때, 엄마가 갑자기 물어보셨다.
"넌 요새 언제가 제일 행복했니?"
"나? 글쎄.. 올해 엄마랑 보연이랑 여행 갔을 때..?"
"난 병원에서 네가 내 발톱 깎아줬을 때, 나 태어나서 남이 내 발톱 깎아준 거 처음이야~."
"나도 첨이야. 남의 발톱 깎아본 거 ㅎ"
그냥 허리 다친 엄마 발톱 길어진 게 보였고, 엄마가 스스로 자를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할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발가락 살이 찝힐까 봐 굉장히 조심스러웠던 기억인데 엄만 그게 그리 뭉클하셨나 보다.
울명자씨는 프리지어를 좋아하신다. 예전부터 나나 동생은 봄이 다가오면 프리지어를 사다 드리곤 했다. 본가에 못 가면 택배로라도.. 그게 요 몇 년 해이해졌다. '엄마 정원에 꽃이 많은데 뭘..' 하는 핑계가 있었다. 이번 시기를 지나고 보니 문득 앞으로 내가 엄마께 프리지어를 몇 번이나 더 사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월 끝물 프리지어를 뒤늦게라도 보낸 이유다. 부디 앞으로의 엄마의 날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으로 채워지길 또 한 번 진심으로 바래본다.
"사랑해요 명자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