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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영cjy Oct 13. 2024

이방인의 식탁

낯선 땅에서 살아가기

미국에서의 생활은 지역마다 그 특성이 달랐다. 도심에서부터 외곽에 이르기까지, 주택과 타운하우스, 아파트들이 어우러져 다양한 주거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에는 인도, 유럽, 아랍, 중국 등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사람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음식의 냄새만큼은 그 나라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냄새가 다른 이에게는 불쾌할 수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우리 가족은 한국 음식을 자주 해 먹었지만, 그럴 때마다 늘 조심스러웠다. 혹시라도 음식 냄새가 문제 되어 관리실로부터 경고를 받으면, 우리는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되도록 빵이나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항상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한식을 요리할 때는 항상 문을 활짝 열고, 환풍기를 돌리며 최대한 냄새를 줄이려고 애쓰셨다. 그러나 한식의 강한 냄새는 어느새 이웃에게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위층에 새로 이사 온 흑인 여자가 바닥을 쿵쿵대고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그저 수리 작업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내 상황은 달라졌다. 


어머니가 여러 가지 한식을 요리하고 있을 때, 갑작스러운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셨다. ‘혹시 냄새 때문인가?’ 불안한 마음에 급하게 요리를 숨기고 나물 반찬만을 식탁에 올려놓으셨다.


문을 열자마자 그 여자는 어머니를 밀치고 부엌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 모습은 너무나 황당했다. 만약 우리가 그런 행동을 했다면, 큰 소동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여자의 앞을 가로막고 강하게 항의하셨다. 그 여자는 부엌에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자 멋쩍게 사과하고 돌아갔다.


우리는 관리실에 가서 이 사건을 이야기하며, 인종차별을 당한 것은 아닌지 항의했다. 다행히 관리실은 다문화를 이해한다며 우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일로 마음이 불편하셨고, 직접 2층으로 찾아가 그 여자에게 따지셨다. "너는 도대체 뭘 먹고 사느냐?"며, 식탁에 놓인 햄버거를 보시곤 "밥도 안 먹고 물만 먹고살라고?"라고 크게 소리치셨다. 어머니의 분노에, 여자는 크게 당황한 듯 보였다. 난 어머니의 대담한 행동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이후 어머니는 미안한 마음에 작은 접시에 감자볶음, 잡채, 물김치 등을 담아 그 여자에게 건넸다. 진심이 통한 걸까? 다음 날 그녀는 빈 그릇을 들고 와 고마움을 전하며 웃었다. 그 이후로는 서로 더 조심하며, 큰 마찰 없이 지냈다.


어머니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웃과 더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 것에 아쉬워하셨다. 우리도 청국장 찌개도 끓여 먹은 마당에 그 여자가 불쾌할 만도 했다는 생각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는 "우리가 빵만 먹고 살 수 있냐?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줘야지."라고 하셨지만, 그 속에는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이민 생활은 종종 이런 어려움을 동반했다. 우리의 익숙한 것들이 타인에게는 낯설었고, 타인의 익숙한 것들이 우리에게는 낯설었다. 서로를 배려하려고 하지만, 가끔은 그 배려가 온전하지 못했다. 우리는 때로 사소한 일도 인종차별로 오해하며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곤 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어떻게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생계와 일상을 핑계로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 문을 닫음으로써 우리는 더 고립되고 외로워졌다. 


누군가 말했다. "미국에서 살려면 미국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그 말에 공감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외지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고, 편안함을 찾는 본능에 따라 한인 사회에만 의지하게 될 것이다.


이민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거나, 현지에 정착하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이 없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후회할 수밖에 없다. 이민 생활을 돌아보며, 나는 많은 아쉬움과 후회를 남겼지만, 그 추억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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