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 어느 순간 감사한 마음이 스쳤다. 얼굴을 볼 수 있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그 작은 일이 내겐 행복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그 순간 내 마음은 따뜻한 감정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늘 함께할 것 같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기에.
남은 시간은 많을까. 결혼식 날, 한복을 입으신 엄마와 정장 차림의 아빠를 꼭 보고 싶다. 훗날 손주 손녀를 안으시며 웃으실 그 모습을 그려보니 벌써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동시에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문득 깨달았다. 부모님을 향한 내 사랑이 더욱 깊어졌음을. 이제는 더 이상 그분들께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그저 건강히 내 옆에 계셔 주시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늙어가는 모습 그대로도, 흘리시며 식사하는 모습도, 잔소리나 서투른 디지털 기기 사용조차도, 그저 사랑스럽고 귀엽기만 하다.
혹시 이게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까? 이게... 조건 없는 사랑인가? 내 부모님이기에, 그 존재만으로 고맙고 사랑스러운 감정.
각박한 세상에서 무엇 하나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날들 속에도, 부모님 생각이 날 때면 주저 없이 찾아가야겠다. 마음이 향하면 내 발걸음도 그리로 향할 것이다. 전화를 걸면 들리는 그 목소리가, 내겐 큰 위안이니까.
돌이켜 보면 부모님을 향한 내 마음은 갑자기 변해왔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여전히 미숙했고, 때때로 화도 냈던 철없는 아들이었다. 25살 즈음이었을까. 난 혼자 흐느끼다 스스로 다짐했었다. 다시는 부모님께 화내지 않겠다고, 그분들을 인간으로 존중하고 사랑으로 모시겠다고.
난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어떤 계기였는 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 다짐을 잘 지켜왔건만 그 마음도 성숙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부모님께 잔소리를 하고, 그들의 흠을 잡고, 때로는 남 보기 부끄러울 때도 있었기에.
그 미성숙한 나를 반성하며 오늘, 나는 또 다른 다짐을 한다. 이제는 모든 것이 괜찮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다고. 앞으로 남은 인생, 항상 부모님의 모습을 내 마음 깊이 새기고, 그분들의 목소리를 마음에 담아두려고 한다.
나중에 그들의 빈자리에 흐느끼고 있을 내가 아주 조금 덜 후회하도록. 눈감고 떠올릴 그들의 모습이 더 천천히 흐려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