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친구들을 바라보며 느낀 차이
도전과 선택의 기로
우리는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 세대의 노력으로 이제 우리가 집안을 일으킬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여전히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 여유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세대의 차이와 우리의 도전 현재 미국의 부모 세대가 현재 한국의 청년 세대인 것 같다. 우리보다 한 세대, 어쩌면 그 이상으로 빠르다. 미국의 부모 세대를 보면 자수성가형 등 잘 사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다닌다. 이런 부모 밑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멘토링을 받으며 사회에 진출한다.
그렇게 의사 부모를 둔 아이가 의사가 되고, 변호사 집안에서 또 한 명의 변호사가 나오고, 엔지니어 출신인 아버지를 보고 'Big Tech' (Google, Amazon 등) 취업을 준비하고, 자수성가형 아버지를 보고 일찌감치 사업에 눈을 뜬다.
미국 청년들의 조부모가 그 힘든 시절 고생해서 가정을 꾸렸고, 부모 세대가 그 덕에 힘입어 집안을 일으켰으며, 오늘날 청년 세대에서 새로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산다. 그리고 그 꿈이 현실이 될 때 전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업적을 만들며 부를 창출한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게 사회를 살펴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우리 부모님의 세대와 우리의 세대 우리 부모님 세대는 힘들게 가정을 꾸린 세대다. 이들 중 집안 사정상 대학 진학을 한 사람이 별로 없다. 당장 먹고사는 것도 힘든데 공부라니? 집에서 살림을 쥐어짜 내어 큰 오빠, 큰 형 한 명만 공부시킬 수 있는 정도였을까? 부모님 세대는 20~30대에 때가 되면 결혼해서 알뜰살뜰 돈을 모아 우리를 낳아 키웠다. 나도 형제가 여럿인데, 아이 한 명은 외로울 것 같고, 두 명까지는 낳아서 키우기로 했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도 다들 이렇게 사니까 서로가 서로를 위안 삼아 견뎌냈을 것이다.
우리는 어찌어찌 부대끼고 살면서 지지고 볶는 부모를 보며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결혼 생활에 질려버렸다. 어찌 됐든 그 시절을 견뎌낸 부모가 고맙고, 미안하다. 하지만 별로 닮고 싶지 않다. 우리가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 중에 하나랄까? 아무튼 우리 부모가 힘들게 집안의 기초를 다졌다면, 이제는 우리가 집안을 일으킬 차례다. 미국의 부모 세대가 앞서 걸어간 길 목 앞에 우리가 서있다.
우리 세대의 도전 우리 세대는 대학을 안 나온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가방끈이 길다. 스펙도 화려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다닌다. 우리는 얼마든지 전문직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영어 잘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부모님이 부족한 살림에도 우리 자식만큼은 나보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많이 투자한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조금만 더 욕심부리고, 열심히 노력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이다.
부모님 덕분에 부모님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됐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녹록지 않다. 이제는 우리가 집안을 일으킬 차례이기에 온전히 나만을 위해서 살 수는 없다. 내가 빨리 자리를 잡아야 부모님도 돕고 내 앞가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치열하게 살아왔다. 수없이 많은 경쟁을 치르며 오늘날 이 자리까지 왔다.
정말 숨 돌릴 틈도 없이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했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그 '누군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은 언젠가 한계에 부딪히는 시점에 다다르게 한다.
우리와 미국 청년 세대의 차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오늘날 우리 나이 때의 미국 친구들과는 많이 다르다. 겉보기에 그들과 우리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부모덕에 어려서부터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힐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것이 그들을 보다 목적이 뚜렷한 삶으로 안내하고,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삶을 치열하게 살아간다.
반면, 우리는 어려서부터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힐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아직도 '나'보다도 '우리'를 위해 살고 있다.
우리는 경제적 여유가 생길 30대 또는 40대에 비로소 나만을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나 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값진 여유다. 그런데 많이 늦은 감이 있다. 여행 중에 어느 술집에 들러 술잔을 기울인다. 우연찮게 내 옆에 혼자 여행하는 19살짜리 외국인 친구를 알게 된다. 해외여행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아무튼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와 서로 기분 좋게 덕담을 주고받지만 속은 쓰리기만 하다. 일찌감치 세상을 탐구하고 다니는 이 친구가 부럽고 질투 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아는 일의 중요성 모든지 일찍 시작하면 유리하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아는 일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내가 아침형 인간인지, 내가 분 단위로 쪼개서 사는 걸 즐기는 타입인지, 나는 장래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가 돈을 버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는지, 나는 원래 소심한 사람인지, 나는 일에 욕심이 많은 사람인지, 나는 모험을 즐기는 타입인지 등 끊임없이 나를 조명하고 발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나의 삶 속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당장 학교 성적이 좋아야 하고,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하며, 남 부럽지 않을 직장과 직업을 갖는데 급급하면 우리 가족이 먹고사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좀 더 멀리 봐서 세계 속의 뛰어난 인재들과 경쟁하는 게 버거워질 수 있다. 출발선이 다른데 똑같이 죽기 살기로 뛰면 간격은 좁혀지기 어려운 법.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세대는 그런 여유가 부족하다. 이대로면 우리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부터 비로소 우리가 찾던 여유를 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의 성공을 관전하고 있지 않을까? 달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세대와 나의 선택 내가 다음 세대, 즉 나의 자식들을 위해 집안을 일으키는데 목적을 두고 살아갈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대로 행복한가? 만족하나? 내가 부모의 바통을 이어받아 집안을 일으키고 내 자식들이 달콤한 열매를 먹는 것도 행복한 시나리오다. 그런데 나도 그 열매를 먹고 싶다면? 내가 먼저 수많은 기회를 누리고 싶다면? 나에게는 나를 돌아볼 여유가 부족했고, 이미 시간은 많이 흘렀다. 그래서 그 열매를 따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뒤늦게나마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기로 작정했으면 이미 그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과 경쟁해야 한다. 어쩌면 몇 년, 몇십 년이 될 그 간격을 좁히기 어렵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그 간격을 좁히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바로 모험과 희생이다.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멀찌감치 앞서가는 선수를 제치려면 승부를 걸어야 한다. 더 빠른 속도로 오랜 시간 뛰어야 한다. 계획에 없던 구간에서 속력을 더 높이는 일이다. 숨은 가파르게 차오르고, 심장은 터질 것 같고, 팔과 다리가 저려오고, 뇌에서 제발 멈추라고 할 때 한 발짝 더 뛰는 정신력을 발휘하는 일이다. 나는 그 선택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감수해야 할 모험과 희생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