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내 곁에 와있던 노래

자우림-스물 다섯, 스물 하나

by 몽스

나는 주로 음악을 찾아서 듣는다. 음악 듣기가 더욱더 간편해지면서, 이제는 손가락 끝으로 터치 한 번만 하면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 줄을 지어있다. 검색창에 노래를 검색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순식간에 귀가 음악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도 쉬운 일이다. 어렵사리 LP를 턴테이블에 올리거나 컴퓨터로 다운로드하여 모바일 기기로 옮기는 것과 같은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손과 귀만 있다면 음악을 찾아 듣는 건 이렇게 쉬운 일이다.


그런데 어떤 음악은 내가 찾지도 않았는데 내 곁에 온다. 검색하거나 터치하지 않았는데도 내 귀에서 맴도는 멜로디가 있다. 생각하려 하지 않았는데도 계속해서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구절이 있다.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그렇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가장 친했던 친구는 이 노래를 너무나도 좋아했다. 노래를 썩 잘하지는 않았지만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만큼은 굴뚝같았던 그 친구는 기어코 밴드부의 보컬 자리를 따냈다. 노래 연습을 빙자해 노래방에 같이 갈 때면, 항상 이 노래를 불렀다. 당시의 내가 듣기에는 어둡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듣지 않았다. 일부러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이 노래가 좋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40년도 아닌 4년이지만, 그 시간 속에는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이 노래를 좋아하던 그 친구와는 완전히 틀어져 인사조차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고, 나는 스물다섯과 스물하나의 중간에 위치한 나이를 갖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다니며 시간이 날 때에는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가끔은 서점에 가서 책을 보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나날의 주인공이 되어가던 어느 날에, 불현듯 이 노래가 생각났다.


그리고 다시 들어본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더 이상 슬픈 노래가 아니었다. 오히려 후련해져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주를 이루지만, 흔쾌히 털어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음악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을 때, 그렇게 나를 찾아왔다.


세상에는 지나간 인연이 너무 많다. 어떤 인연은 나를 떠났음에 죽도록 슬프고 괴롭기도 하고, 어떤 인연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하며, 어떤 인연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미련이 남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떠나간 모든 인연은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기에, 언제든 내가 가는 여정에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인연은 그렇지 않다. 내가 가는 인생의 여정의 동반자는 때때로 변한다. 그러한 인연이 떠난 후의 나는 계속 길을 걷겠지만, 이따금씩 생각나는 인연을 막을 도리는 없다.


가슴 시리도록 행복한 꿈으로 기억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정말이지 '바람에 실려오는 것처럼' 지난날의 너와 나를 그리우는 건 내 의지로 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연에 대한 모든 것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건 과연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어느 날은 시원한 보컬과 밴드 사운드 덕에 마음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지만, 어느 날에 이 노래를 들으면 김윤아가 울고 있는 것만 같다. 울지 않기 위해 웃는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이제야 나는 이 노래를 이해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