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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스 Sep 02. 2021

코로나가 끝나면 여행을 가야지

기억 속 반짝이는 그런 곳을 향해서


아, 여행 가고 싶다.


9월이 시작되자 어김없이 찬바람이 스산히 소매를 뚫고 들어온다. 일찍 일어나는 날에는 차가운 아침 공기에 뒤척이며 이불로 몸을 꽁꽁 싸매기도 한다. 오늘도 새벽은 추웠고, 어김없이 이불로 몸을 돌돌 말다가 갑자기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정말 갑자기, 그러나 이제는 정말 가고 싶어졌다. 



내 마지막 여행은, 여행이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너머 모르는 타지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라 한다면, 벌써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작년 초를 기점으로, 나 같은 일반인이 단순 여행을 목적으로 타지에 나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졌으니 말이다. 2019년 여름, 큰 캐리어 두 개를 끌며 인천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만하면 당분간 해외여행은 조금 쉬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슨 건방진 생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오래도록 해외에 나가지 못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므로. 


내 기억에, 방학은 곧 여행이었다. 조그만 코끼리 인형을 들고 할머니 손에 이끌려 날아갔던 태국부터 거의 텅 빈 캐리어 하나를 끌고 덜렁 떠난 일본까지, 매 방학마다 적어도 한 군데로 여행을 떠나는 건 일상에 가까웠다. 짧게씩 다녀오는 평범한 여행이었지만, 그럼에도 여행은 여행이었기에, 대부분의 기억은 행복했다. 가족들과 떠나기도 했고, 친구들과 떠나기도 했으며, 언젠가는 혼자서 떠나기도 했다. 동행하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게 여행이었는데, 떠오르는 대부분의 여행 파트너 또한 좋았다. 까칠해서 대하기 어려운 이들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여행의 일부겠거니 하며 다녔던 기억도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여행 파트너였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상당히 둔감한 여행자였다. 굳이 말하자면 yes맨에 가까웠다. 돈을 아껴야 된다며 짠돌이 같이 굴지도 않았고, 아무데서나 잘 자는 성격 덕에 숙소의 질을 따지지도 않았다. 타지에서 하는 모든 것을 좋아했기에, 딱히 어디를 가야 한다고 고집하지도 않았으며, 대부분의 코스를 동행하는 사람에게 맞추곤 했다. 천성이 노래를 좋아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면 자진해서 노래를 선곡하기도 했고, 아주 괴이한 식단을 제외하고는 웬만한 요리도 거침없이 먹었다. 뚜렷한 호불호가 없는 건 우유부단함으로 표현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어지간해서는 갈등을 유발한 적도, 맞이한 적도 없는 여행을 주로 해왔다.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

삶은 계속되니까 

수많은 풍경속을 혼자 걸어가는걸 

두려워 했을 뿐 

하지만 이젠 알아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어야 했던걸


-이상은, <삶은 여행>



내가 좋은 여행 파트너였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누군가는 그런 내 우유부단함이 답답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원하는 곳을 갈 수 있어 좋을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럼 나는 스스로에게 좋은 여행 파트너였나? 내가 해 온 여행들이 과연 나를 위해 좋은 여행들이었을까, 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새로움과 즐거움은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가슴 떨릴 만큼 전율이 느껴지는 그런 짜릿한 여행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그 순간을 떠올리며 남은 생을 힘차게 살아가게 되는 그런 장면은 아무래도 아직까지 없는 듯하다. 단시간의 행복은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까지 남아있는 여운은 흐릿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코로나가 끝나고 이 마스크를 벗어던지는 날에는, 주저 없이 비행기를 타고 내 기억 속 부대끼는 장소들을 다시금 찾아갈 생각이다. 그때는 오로지 나를 위해서, 내가 살고 싶은 순간들을 만들어, 그 속에서 허덕이는 나날을 살아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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