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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스 Sep 09. 2021

친구에게 밥을 사줬다.

더치페이 세대에게 '밥 사주기'가 갖는 의미란


오래된 친구와의 저녁 약속을 마치고,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걷는 길에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충 당장 용돈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친구에게 거금을 썼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끼리 한 약속이 있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내가 '다음 밥 내가 쏠게'라고 말을 했었고, 어쩌다 보니 그 '다음 밥'이 인당 4만 원이 넘는 메뉴로 정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4만 원어치 한 끼는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백수(이자 취준생이라 읽는)인 나에게는 꽤 큰돈이었다. 


푸념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라며 일과를 들려주는 정도의 뉘앙스였다. 종알종알 내가 얘기를 마치자, 아빠는 나지막이 이렇게 말했다. 


"그 원래, 사주는 사람이 더 기분 좋은 법이야. 베푸는 건 원래 그런 거야."


아, 맞다. 그제야 내가 얻어먹었던 수많은 끼니들이 생각났다. 밥을 먹고, 계산을 하려고 하면 '아이, 내가 사줄게' 하며 손사래 치던 친구들, 선배들, 어른들.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너는 내 후배니까, 동생이니까, 친구니까, 오랜만에 보니까, 응원하니까, 축하하니까, 그러니까, 그냥. 낯가림이 심해 웬만한 사이가 아니고서야 밥을 먹을 때 말을 많이 하지도 않는 나인데. 심지어 가리는 음식도 많아, 메뉴를 고를 때도 꽤나 까다로운 저울질을 하는 나인데. 집에 도착해서 그 고마운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누구는 우리를 밥의 민족이라 부른다. '밥 먹었어?'와 '밥 한번 먹자'. 두 문장으로 안부와 안녕을 묻는 한국 사회에서, 사주고 싶은 사람에게 밥을 사준다는 건, 기분이 아주 좋아지는 일이었다. 떠올려보면 내가 여태껏 친구에게, 후배에게, 언제는 친한 언니에게, 밥을 사주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발걸음이 아주 가벼웠다. 밥을 먹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밥을 먹으며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밥값을 내며 당신과의 대화가 이 밥값보다 훨씬 더 가치 있었음을 표현하는 마무리를 짓는 것. 애정표현에 인색한 내가 상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자 애정표현이기도 했다.



You just call out my name

And you know, wherever I am

I'll come runnin'

To see you again

Winter, spring, summer or fall

All you have to do is call

And I'll be there

You've got a friend


-Carole King, <You've Got a Friend>



사실 나는 '더치페이' 세대다. 친구들끼리 밥을 먹고 나면, 계산대 앞에서 각자 자신의 카드를 꺼내 점원에게 내민다. 요즘에는 송금이 편리해져, 한 명이 대표로 긁으면 옆에서 바로 보내주기도 한다. 이렇게 더치페이가 깔끔하게 이뤄지는 시대에, 밥을 사준다는 건, 어찌 보면 특별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네 밥값까지 내고 싶다는 건, 그만큼 나에게 있어 네가 의미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며, 그렇기에 내가 너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다는 것을 넌지시 내비치는 건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아빠와 전화를 끊고, 집에 들어와 침대에 누워 한참을 생각했다. 빠듯하게 남은 용돈 말고, 그래서 나의 친구와 나눈 그날의 이야기들에 대해서. 넘실거리는 한강물 위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매캐한 연기를 손으로 휘적거리며 나눈 모든 이야기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래서 한없이 소중한 친구와의 시간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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