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화 신고 지구 한 바퀴
그간 교육생들 중 별 존재감이 없던 나는 마두라와의 사건 이후 다소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모두 열두 명밖에 안 되는 교육생들 가운데 주목이라고 해봐야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남자들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벌어지는 자존심 싸움이 있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주목받는다는 것은 유치하지만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 이런 다국적 연합 훈련에서는 내가 국가 대표라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예를 들면 마두라와의 일이 있은 후 이틀 뒤 아침 체력단련 시간에 턱걸이 경쟁이 붙었다. 군장 뜀걸음을 마치고 잠깐 앉아서 쉬는데 교관이 오늘 체력단련은 턱걸이라고 하면서 시범을 보였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손바닥이 내 몸의 바깥쪽으로 가게 잡고 턱걸이를 하는데 교관은 바깥쪽으로 갔다가 안쪽으로 갔다가 또 교차해서 잡기도 했다가 여러 방법으로 보여 줬다. 그렇게 해서 열다섯 개.
수컷들이란 이런 힘자랑에서 지고 싶지 않은 본능이 있다. 특히나 다들 무모하기로 남부럽지 않은 특수부대 요원들이지 않은가.
매튜가 나와서 자신 있게 매달렸다. 매튜가 하는 것을 지켜보던 우리는 큰소리로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 스물다섯.”
이어 죠가 매달렸다. 열아홉 개. 덩치가 큰 루다나 로저는 열다섯 개 정도가 고작이었다. 날렵한 마두라도 17개. 나를 제외한 교육생들 중 최고는 스물다섯 개를 기록한 매튜였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 등 다양한 운동을 했고 한때 경희대학교 체육학과를 진학하면서 입시체육을 섭렵했으며 특전사에서 근무하며 꾸준히 턱걸이를 해온 내가 나설 차례였다. 역시 뒤에서 동료들이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 스물넷” 수를 세는 소리는 스물넷에서 가장 커졌다. 그리고 스물다섯. 매튜의 기록을 넘기고 나는 잠깐 쉬었다. 이제 끝인가 싶어 박수를 치는 동료들. 하지만 나는 더 하기 시작했고 마지막에 서른아홉 개를 끝내고 내려왔다. 단연 최고였다.
이 두 사건을 계기로 내 이미지는 굳혀졌다. 그냥 키 작은 동양인에서 무술 하는 동양인으로. 그렇다고 내가 발차기나 태권도 동작을 따로 보여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마두라와의 일과 ‘브루스 리’로부터 파생된 동양인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한 결과였다. 어쨌든 가짜 이미지도 아니었다. 태권도와 특공무술 등 도합 8단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효과는 당장 그날 오후부터 있었다. 미국 레인저 출신 매튜가 교육기간 동안 무술을 좀 가르쳐 달라고 찾아왔다. 오후에 수업이 없을 때는 딱히 할 일도 없어 무료하던 차에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오후 3시에 하자고 했다. 귀찮을 법도 했지만 보통 이런 경우 세 번 정도 하고는 흐지부지 되기 쉬워 부담도 없었다.
또 해병대 죠도 찾아왔다. 매듭법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교관들이 이론 교육 시간에 매듭법을 한번 알려주고는 2주 뒤 평가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다들 혼자서 연습하고 있었는데 혼자 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한참 동안 내 방에 앉아서 지도해 주었다.
이때만 해도 이런 주목을 특별히 의식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곧 의식할 정도의 일이 생겼다.
나에 대한 동료들의 관심이 조금 생기기 시작했을 때 이를 더 증폭시키는 사건이 있었다. 암벽 등반 교육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상급 코스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이 코스에서 최종 암벽 등반 평가가 예정되어 있었다.
처음 그 코스에 도전했을 때 나와 미 해병대 산악 교관 로저를 제외하고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 둘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 우리 둘 중 누구도 서로를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그렇게 구도를 형성하고 분위기를 만들었다. 평가의 합격기준은 1분 30초. 아직 둘 중 아무도 시간 내에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둘 중 누가 먼저 도달하게 될지에 대해 동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런 관심에 기름을 부은 건 책임교관 라비 소령이었다.
교육이 시작되고 나서 우리에게는 염소고기와 닭고기만 제공되고 있었다. 소고기는 당연하고 돼지고기도 비싸서 인지 아니면 무슬림 교육생 2명을 위한 배려였는지 식사메뉴에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돼지고기가 먹고 싶다. 식사에 제공하기 힘들면 학생들이 추렴해서 바비큐 파티라도 하겠다.’고 라비 소령에게 이야기했다. 다른 비 무슬림 동료들도 괜찮다고 했다. 그러자 라비 소령이 다음날 내가 평가 코스를 1분 30초 안에 통과하면 그다음 날 메뉴로 돼지고기를 주겠다며 내기를 제안했다.
그때까지 내 기록은 1분 50초. 20초 정도를 당겨야 했지만 오전 교육이 이미 끝난 시간이라 연습을 할 수는 없었다. 안전을 위해 교육시간 외에는 암벽 교장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나는 뜻하지 않게 교육생 대표가 되어 괜한 책임감을 안게 되었다. 그리고 돼지고기를 위해 교육시간에 찍은 동영상을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이미 루트는 파악됐고 파악된 루트를 이동하기 위한 동작들을 일정한 루틴으로 만들어 몸에 익도록 반복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비 무슬림 친구들을 제외한 9명의 기대를 뒤로 하고 내가 도전하게 되었다.
초, 중반까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이미지 트레이닝이 효과가 있었다. 마지막 종반에는 마땅한 홀드가 없어 손끝으로만 버텨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덩치 큰 미국 친구들이 애를 많이 먹었다. 그래서 나는 미끄러지기 전에 기어오른다는 생각으로 홀드에 손끝이 닿자마자 두 손과 발로 벽을 긁는 기분으로 기어 올라갔다. 결과는 대 성공으로 1분 20초에 통과했다.
벽에서 내려오는데 동료들이 모두 다가와 축하해 줬다. 무슬림 동료들도 돼지고기는 싫었겠지만 어쨌든 우리 중 최초로 지정 시간을 통과한 셈이라 기쁘게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다음 날 점심에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스튜를 먹게 되었다. 매일 먹던 염소고기는 적은 살집에 뼈째 토막 처진 것들이어서 먹기가 여간 불편했는데 살집 많은 돼지고기는 먹기도 좋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먹는 그 맛이란. 먹는 사람들은 다들 만족했다. 심지어 교관들도 그날은 우리 식당에 와서 함께 먹었다. 돼지고기가 비싼 네팔에서는 별미였을 것이다.
그런데 파키스탄 대위 모하마드와 하시브 소령이 식당에 오지 않았다.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닭고기도 있었는데 아예 점심을 건너뛴 것이다. 돼지고기 냄새가 나는 식당 근처에도 오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사실 전날부터 ‘돼지가 얼마나 더러운 동물인 줄 아느냐 왜 그걸 그렇게 먹고 싶어 하느냐’하는 등 싫다는 말을 계속했었는데 이미 그 외의 동료들의 관심을 끌기엔 늦었었다. 다만 아예 식당에도 오지 않을 정도인 줄은 몰라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돼지고기는 돼지고기이고 이제 다시 관심은 로저와 나의 라이벌 구도로 돌아갔다. 교육시간이 되면 은근히 패가 갈려서 응원을 하곤 했다. 미 해병대를 주축으로 한 로저 패와 나를 응원하는 유색인종 패. 그리고 별 관심 없는 영국 패.
드디어 암벽등반 평가 시간이 왔다.
아침 체력단련을 마치고 오전 교육시간이 돼서 장비를 들고 집합하는데 로저와 함께 온 또 다른 미 해병대 산악 교관 데이브가 내 앞에 오더니 퀸의 ‘위아 더 챔피언’을 부르는 것이다. 사실 그간 본인의 실력을 입증했던 로저와 달리 데이브는 산악 교관으로서 실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덩치가 크긴 하지만 체지방율이 낮은 순수 근육질인 로저와 달리 역시 덩치가 크면서 근육이 많지만 체지방도 많은 근육 돼지 느낌의 데이브는 암벽등반엔 영 소질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런 데이브가 나에게 도발을 하는 모습을 보니 그냥 우습기만 했다. 싸움 잘하는 짱 믿고 나대는 앞잡이 같았다.
순서에 따라 교육생들이 하나하나 암벽에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겁이 나서 벽에 붙어 있지도 못하던 하시브 소령도 훈련의 효과인지 합격 시간 내에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완등은 했다. 날쌘돌이 마두라와 해병대 죠, 영국 중위 톰은 합격 시간 내에 들어왔고 그 외에 덩치 큰 미국 친구들 중 반은 완등도 하지 못했다.
드디어 라이벌인 나와 로저만 남았다. 내가 먼저 올라갔다. 사실 나는 교육과목 가운데 암벽등반에 가장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동영상을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가상의 암벽을 허공에 그려 동작을 반복했다. 그런 나를 보고 모하마드는 ‘한국 사람들은 모두 너처럼 열심히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만큼 열중하는 모습이 보였나 보다.
평가를 보기 위해 암벽에 붙는데 너무 떨렸다. 그래서일까 평소보다도 기록이 좋지 않았다. 1분 28초. 합격은 했지만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다음은 로저 차례. 로저는 사실 며칠 전부터 새로운 루트를 개척했다. 도입 부분을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했는데 평가 허용 범위 안쪽이었다. 나도 한번 그쪽으로 시도해 봤지만 팔다리가 짧은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런데 나보다 한참 긴 팔다리를 가진 로저는 계속 그 루트를 익히며 연습했다.
이번에도 그 루트를 선택했다. 그리고 지상에서 로저의 동료인 데이브가 확보를 맡았다. 덩치가 비슷한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데이브는 로저의 등반을 도와줄 요량으로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확보란 등반하는 사람이 벽에서 미끄러지더라도 추락하지 않도록 몸에 로프를 묶는데 그 묶은 로프를 암벽 꼭대기의 도르래나 고리에 통과시켜 다시 땅에 있는 사람에게 로프의 끝을 잡도록 해서 등반하는 사람이 추락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확보하는 사람이 줄을 세게 당기면 등반하는 사람은 힘을 위로받아 등반하기가 수월해진다.
데이브가 당기고 로저가 오를 준비가 됐다. 등반 시작. 역시 교관다운 여유와 힘이 느껴졌다. 내가 짧은 팔과 다리로 발발발 거리며 올라갔다면 로저는 긴 팔과 다리로 성큼성큼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엄두도 못 낸 초반 도입을 단 두 동작 만에 지나갔다. 거기서 이미 승패는 갈렸다.
그러나 중반에 반전이 일어났다. 로저가 평이한 코스에서 미끄러진 것이다. 첫 번째 슬립, 그리고 또 정도 오르더니 다시 두 번째 슬립. 총 두 번 미끄러지고 완등 했다. 그러고도 시간은 1분 15초. 대단한 기록이었다. 로저의 기록이 나오자 로저 보다 데이브가 더 기뻐했다. 본인은 완등도 못했으면서.
이렇게 암벽등반 라이벌전은 로저의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나는 로저가 두 번 미끄러졌으니 감점을 감안하면 내가 진정한 승리자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명백한 정신승리였다.
암벽 등반 및 하강 훈련 이외에도 강이나 협곡을 건너는 도하훈련, 로프 활용법, 환자 후송 등 기타 과목도 함께 훈련했다.
그 가운데 도하 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우리는 오전 체력단련 시간에 가볍게 뜀걸음을 하고 좀솜 강가로 나갔다.
우리 외국인반 교육생들 외에 네팔 교육생들도 모두 나와 있었다. 도하 방법에는 강을 가로지르는 로프를 설치하고 활차나 도르래를 이용해서 건너는 방법과 강 양쪽에 말뚝을 박고 로프를 연결해서 그 로프를 잡고 건너는 방법이 있는데 주변 환경 여건을 보고 가용한 방법을 활용하면 된다. 오전에는 강둑이 없고 주변에 로프를 묶을 기둥이 없는 지역에서 말뚝을 박고 로프를 설치해서 물을 건너는 방법을 실습했다.
강물을 건널 때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물살이 약하고 수심이 얕으면 물살을 이기고 최단거리로 가로질러 가면 된다. 반면에 물살이 세고 수심이 깊으면 말뚝을 상류에서 하류로 멀리 박아서 로프를 묶어 물살을 타고 내려가면서 건너는 것이 안전하다.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실습했다. 아침나절에 물에 들어가려니 무척 쌀쌀했다. 검고 거센 물살의 좀솜 강이 거칠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위험과 모험을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는 모두 용감히 물에 뛰어들었다. 물은 차가웠지만 물살을 타고 내려가는 두 번째 실습은 꽤 재미있었다. 그래서 한 번씩 더 했다.
다음엔 좁은 개울을 건널 때 장대를 짚고 건너는 방법을 실습했다. 말 그대로 장대로 개울 가운데를 짚고 뛰어 건너면 된다. 무척 쉽다. 하나 둘 모두 성공하고 있는 가운데 하시브가 장대를 짚고 뛰다가 추진력이 약해 물에 빠졌다.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 쉬운 걸 못하다니. 역시 하시브였다.
그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이미 동료들 사이에서 무술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냥 건너기엔 밋밋하고 뭔가 멋진 걸 보여 줘야 했다. 다들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나는 장대를 짚고 최대한 몸을 크게 회전해 옆 돌기를 하면서 건너기로 마음먹었다.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추진력을 얻기 위해 안 해도 되는 도움닫기도 했다. 10미터 정도 뒤에서 달려 장대를 최대한 멀리 짚고 뛰려는 찰나. 개울의 반도 건너지 못하고 개울 가운데 엉덩방아를 찧었다. 망신이었다. 동료들은 하시브 때 보다 더 크게 웃었다. 장대를 너무 멀리 짚은 것이 패착이었다. 뭐든 과하면 안 된다. 그냥 멋 부리지 않고 했으면 충분했을 텐데. 아무튼 동료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고 말았다.
아침 훈련을 그렇게 마치고 다시 오전 훈련을 나가기 전에 훈련 때 입은 옷을 빨았다. 전투복 한 벌이라 그냥 손빨래를 했다. 그런데 옷을 아무리 빨고 헹구어도 작은 흙모래가 계속 나왔다. 역시 좀솜의 검은 강물이 그냥 검은 게 아니었다.
아침을 먹고 다시 강가로 나갔다. 이번에는 강둑에 있는 나무에 로프를 설치해서 그 로프를 타고 건너는 실습을 했다. 사실 로프를 타고 건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고 그 로프를 설치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간 관계상 로프 설치는 교관들의 시범으로 대신하고 우리는 로프를 타고 건너는 실습만 했다.
오후에는 수업이 없었다. 그 대신 한 가지 작은 이벤트가 있었다. 로저가 닭고기 바비큐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교관들에게 부탁해서 닭을 한 마리 사 왔다. 그리고 동료들 몇몇이 모였다. 그런데 그 닭이 잡아서 손질한 닭고기가 아니라 그냥 살아있는 닭이었다.
모두들 생존 훈련 간 동물을 잡고 해체하는 훈련을 경험한 사람들이라 자기가 아는 닭 잡는 법을 설명하며 떠들었다. 누구는 그냥 칼로 목을 치라고 했고 누구는 목을 계속 비틀어 돌리라고 했고 누구는 닭 머리를 날개 안으로 접어 넣고 옆구리를 퍽 치라고도 했다. 그 수많은 방법들 중 로저가 선택한 방법은 가장 단순한 빙빙 돌리기였다.
빙빙 돌리기란 닭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고 줄넘기 줄을 돌리듯 닭의 몸통을 사정없이 돌리는 것이다. 그러면 닭의 모가지가 부러지고 숨이 끊어진다. 그런데 이 방법의 단점은 자칫 너무 세게, 너무 많이 돌리면 모가지가 끊어져 몸통과 몸이 분리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분리만 되면 다행인데 그 분리된 몸이 돌아가던 원심력으로 휘이익 날아가 땅에 떨어지면 사방으로 피가 튀고 다소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경우는 그 땅에 떨어진 목 없는 몸뚱이가 벌떡 일어서서 뛰어다니는 것이다. 닭은 자율신경계가 사람보다 잘 발달되어 있어서 머리가 없는 상태에서도 1분 정도를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생존 훈련 간 닭 잡는 훈련을 할 때는 반드시 닭을 잘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 배운다. 교관들 가운데는 목을 칼로 자르고는 교육생들에게 목 없는 몸뚱이가 뛰어다니는 호러스러운 장면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목 없는 닭이 교육생들 사이를 뛰어다니고 교육생들은 소리 지르며 피하느라 아비규환이 된다.
아마 로저도 이런 광경을 염두하고 그 방법을 선택한 것 같았다. 그리고 로저가 닭의 모가지를 붙잡고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참을 돌려도 닭이 죽지 않았다. 돌리는 로저도, 내심 한바탕 벌어질 호러 쇼를 기대한 우리도 김이 빠졌다. 결국 끝없이 고통받는 닭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가 되자 그냥 칼로 목을 쳐서 끝을 내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로저의 실력이 좀 의심스러워졌다. 땅에 구덩이를 파고 불을 피워 닭을 굽기 시작했는데 내가 보기엔 너무 불이 세다 싶었다. 그렇게 센 불에 닭을 통째로 구울 경우 분명 겉은 타고 안은 익지 않는다. 더구나 닭이 크기도 너무 컸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오지랖을 발휘해서 불을 좀 약하게 해야 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안 된단다. 아니나 다를까 그러는 와중에 겉껍질은 벌써 타기 시작했다. 영 틀렸다 싶어 나는 기대를 접고 숙소로 들어왔다.
그리고 저녁식사 시간에 로저가 구운 닭고기가 나왔다. 역시 이게 닭인지 오골계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검은 물체가 식탁에 있었다. 겉껍질을 해치고 안을 헤집어서 껍질 아랫부분에 잘 익은 곳만 몇 점 잘라먹었다. 뼈 근처에 살들은 전혀 익지 않았다. 고든 램지의 말처럼 ‘솜씨 좋은 수의사가 오면 다시 살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불에 구운 직화 바비큐 고기는 언제 먹어도 좋다. 로저에게 잘 먹었다고 진심으로 인사했다.
4주가 흘러 예정된 교육이 마무리되고 종합평가결과가 나왔다. 종합 평가 과목은 앞서 이야기 한 암벽등반과 매듭법을 포함해서 레펠과 군장 뜀걸음 4과목이었다.
평소 한국에서 근무할 때의 나는 평가나 훈련에 목을 매고 열심히 하는 편이 아니었다. 평소 하던 대로 하는 편이고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하거나 승부욕이 많은 편이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왠지 여기서는 욕심이 생겼다. 전 과목에서 모두 1등을 하고 싶었다. 외국에서 생기는 괜한 국가대표 의식인지 특전사 자존심인지(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불분명한 사명감이 나를 부채질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결과는 내 뜻과 같지 않았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암벽등반은 로저에게 밀려 2등을 했다. 군장 뜀걸음은 젊은 피 매튜와 톰에게 밀려 3등, 겨우 매듭법과 레펠에서만 1등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 각국의 특수부대 출신들이고 산악 교관도 두 명이나 있었으니 이만하면 잘한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그때는 어찌나 아쉽던지.
특히 군장 뜀걸음 평가 때는 쉽게 적응하지 못한 고도와 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소위, 중위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내 무거운 걸음을 한탄하며 자괴감이 들기까지 했다.
그렇게 아쉬운 평가결과를 끝으로 우리의 4주간 산악전 학교 주둔지에서의 교육은 끝이 났고 이제 빙벽등반 훈련을 위해 케상 캠프로 이동해야 했다.
4주간의 훈련기간 동안 가장 가깝게 지낸 사람은 앞서 여러 번 이야기했던 하시브 소령이었다. 밝은 성격에 농담도 잘하고 친절한 친구인데 무슬림 남자 특유의 허세가 좀 있고 게으르며 겁이 많기도 했다. 방글라데시 사람답게 눈이 크고 코가 오뚝해서 잘생긴 편인데 키가 작고 몸매가 통통해서 귀여워 보인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반에는 두 명의 무슬림이 있었는데 하시브 소령이 그중 한 명이었다. 나머지 한 명은 파키스탄 대위 모하마드였다. 그런데 하시브 소령은 좀 사이비 신자였다. 비록 돼지고기를 심하게 기피했지만 한 번도 기도하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오전에 평가가 끝나고 오후에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을 끓여 하시브에게 놀러 오라고 했다. 한국음식이 좀 당겨서 먹으려던 차에 바로 옆방에 있는 하시브에게도 냄새가 퍼져 혼자 먹기가 좀 불편해서 불렀던 것이다.
그래서 내 방에 조촐한 상이 차려졌다. 라면과 캔에 담긴 김치, 즉석 밥과 김이 식사 메뉴였고 네팔에서 생산하는 쿠크리라는 럼주 작은 병이 하나 있었다.
고산지대라서 그런지 라면이 좀 설익었지만 오랜만에 먹는 라면 맛이 좋았다. 하시브도 처음 먹어보는 한국 라면이었지만 맛있게 먹었다. 본인 입맛에는 좀 맵다면서 물을 좀 많이 먹긴 했지만 만족스러워 보였다.
나는 얼큰한 국물과 함께 쿠크리 럼주 한잔을 마셨다. 역시 국물엔 독주가 어울린다. 그런데 하시브가 간절한 눈빛으로 처다 봤다. 무슬림이라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분명 한잔 달라고 하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한잔 할래?”
하시브 소령은
“네가 권하니까 한잔 할게”
하며 잔을 내밀었다.
나는 좀 아쉽다 싶을 만큼 적은 양을 따라 주었다.
역시나 하시브도 양이 적었는지 잔을 계속 들고 있었다. 나는 더 따라 주었다.
그리고 하시브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대로 죽 들이켰다.
“너 처음 아니구나? 전에도 마셔봤지?”
내가 하시브에게 물었다.
“방글라데시 안에서는 못 마시는데 이렇게 외국에 나오면 한 번씩 마셔”
그러면서 잔을 또 내밀었다.
“이거 무슬림을 타락시켰으니 난 지옥에 가겠구먼.”
하며 나는 한잔 더 따라 주었다.
“괜찮아. 넌 불신자라서 원래 지옥 가는 거야.”
하시브가 내 농담에 응수했다.
“너하고 함께라서 심심하지는 않겠다.”
우리 둘은 지옥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며 건배했다.
그리고는 서로 가족 이야기를 했다. 나이는 동갑이었는데 나는 아직 미혼이었고 하시브는 군대 후임과 결혼해서 애기도 있었다. 부인은 계급이 소위였다. 그래서 부인 나이를 물었더니 본인보다 네 살 연하 28이란다. 우리나라의 소위 계급이면 20대 초, 중반인데 방글라데시는 계급의 운용체계가 달라 그렇게 나이 많은 소위도 있는 듯했다.
그러면서 집에서 꼼짝도 못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아니 무슬림을 생각하면 다분히 가부장적이고 집안에서는 남자가 왕처럼 군림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니까 다 옛날이야기란다. 지금은 여자들이 왕이라며 한잔 더 달라고 했다.
그렇게 서로의 가족 얘기를 하면서 작은 럼주 한 병을 다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