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산악전 교육(3)

by 박소령

레펠 교육

기초적인 암벽 등반 훈련을 통과한 나는 4일 차부터 중급 레펠 훈련을 시작했다. 중급이라고 해야 별달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높이가 좀 높아지고 엉덩이를 아래로 하고 내려오는 후면 레펠에서 가슴을 아래로 하고 내려오는 전면 레펠로 바뀌었을 뿐이다.

한국에서 11m 레펠 타워나 고작해야 4~5층 높이의 건물에서 훈련하다가 30m, 70m 높이에서 하려니 처음에는 좀 긴장도 되고 내려오는 속도에 대한 감이 부족했다. 그래서 처음 30m 높이의 암벽에서 하강했을 때는 중간에 너무 일찍 제동을 잡아서 절벽 한가운데 매달려 있기도 했다.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자신감이 생겼고 좀 더 과감하게 탈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출발부터 착지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내려왔다. 그리고 바로 통과, 70m 암벽에 매달린 로프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벽이 높아 로프의 끝이 땅에 닿지 않고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특전사에서는 안전상의 이유로 레펠 훈련 시 하강하는 로프의 끝은 반드시 땅에 여유 있게 닿아야 되고 그 끝을 안전 근무자가 잡아 하강하는 사람이 통제력을 잃고 추락할 때 안전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이게 레펠 훈련의 안전 규정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몇 배나 높은 절벽에 매달린 로프의 끝이 3m 높이에 매달려 있었다. 이렇게 되면 줄을 잡고 하강하는 사람은 속도를 줄이며 내려오다가 로프 끝 지점에서 뛰어내려야 하는데 이 뛰는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다. 내 앞에 네팔 군 교육생이 군장을 매고 하강하다가 제동을 잡지 못하고 로프에서 떨어져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는 순간 무척 걱정이 되었는데 옆에서 보던 교관은 배꼽 빠지게 웃기만 했다. 다행히 다친데 없이 벌떡 일어서긴 했으나 안전 수칙을 철저하게 마련한 특전사에서도 종종 팔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나는데 이렇게 대비가 허술해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도 바로 그 허술한 로프에 매달려서 하강을 해야 했다. 걱정은 했지만 그럴수록 몸이 굳어 더 위험할 수 있기에 위험을 즐기기로 했다. 로프를 하강 고리에 걸고 절벽에 매달려 하강 준비 끝 보고를 했다. 교관의 하강 구호가 떨어지자 이전 30m 절벽에서 보다 더 빠르게 하강했다. 속도가 좀 붙자 오히려 박자 잡기가 편했다. 벽을 발로 차고 하나, 둘, 하고 수를 세며 거리를 가늠했다. 거의 다 왔다 싶을 때 다시 한번 발로 벽을 차고 착지 준비를 했다. 로프 끝이 뒤로 잡은 오른손에서 빠져나가고 이어 하강 고리와 왼손을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자 바로 착지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정확히 착지했다. 오히려 과감한 동작이 더 안전하게 만들어 줬다.

하지만 내려오면서 관찰한 로프의 상태를 보니 더 레펠을 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특전사에서는 로프의 실밥이 터지면 바로 보수를 하거나 폐기처분한다. 그리고 애초에 로프가 손상되지 않도록 로프가 바위의 날카로운 부분에 닿을 경우 그 부분에 고무판이나 폐타이어를 대서 손상되는 것을 방지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조치가 전혀 없이 로프가 날카로운 벽면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손상된 로프 부분을 제대로 보수하지도 않았다. 산악용 로프가 워낙 고가이다 보니 쉽게 교체하거나 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면 좀 더 손상되지 않도록 예방 조치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고고도 레펠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리고 이어진 전면 레펠. 전면 레펠도 특전사에서 숙달했던 과목이라 어려울 것은 없었다. 다만 이번에는 교육생들의 안전을 너무 생각했는지 하강 고리에 이중으로 로프를 감는 바람에 제동력이 커져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 당시 내 몸무게가 60kg으로 너무 가벼워서 마찰력을 이기고 하강하려면 온 체중을 싫어야 했다. 그래서 두 번째 하강 때는 교관의 의견을 무시하고 하던 대로 한 번만 감고 내려왔다. 그러니 내박자 그대로 자연스럽게 내려올 수 있었다. 그래서 또 통과.

레펠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고 나서 나는 다른 동료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미 해병대원 4명 중 산악 교관 출신 둘은 역시 아주 매끄럽게 내려왔고 아직 경험이 부족한 매튜와 루다는 중간에 덜컹덜컹거렸다. 제동을 부드럽게 잡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꽉 잡을 때 생기는 현상이었다. 내려오면 오지랖 넓게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외 나머지 동료들도 무난하게 내려왔다. 그런데 하시브가 문제였다. 사실 하시브는 코만도 출신이라는 게 심히 의심되는 친구이다. 암벽 훈련 때도 중간에 매달려 손발을 벌벌 떨고 있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져 애처롭게 보일 정도다. 그런데 이번엔 30m 높이 절벽 중간에 멈춰 섰다. 그것도 벽에 발이 닿지 않는 오버행 구간에 정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발이 닿는 구간이라면 발로 벽을 지지해서 자세를 안정시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로프의 꼬임이 풀리면서 몸도 회전하게 된다. 그러면 본인도 겁이 나지만 보는 사람은 그 모습이 참 우습다. 그래서 암벽 아래에 있는 동료들은 모두 함께 하시브를 보며 웃었다. 기념으로 동영상도 찍어 줬다. 교육 내내 놀려 먹을 생각으로 모두 즐거웠다.

1-마-1.jpg 절벽에 매달린 하시브

나는 내심 레펠 훈련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역레펠도 했으면 했다. 역레펠이란 머리를 아래로 하고 발을 로프에 걸어 거꾸로 선 자세로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동작인데 레펠 자세 가운데 가장 어렵고 위험한 동작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멋있고 뽐내기 좋은 자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악 암벽에서 타기에는 지형적 조건도 맞아야 하고 안전에도 문제가 있어 이번 교육기간에 역레펠은 하지 못했다.


첫 주말

1주 차 교육이 끝나고 첫 주말을 맞이했다.

우선 일주일간 입었던 옷들을 빨았다. 세탁기에 돌려서 야외 빨랫줄에 널었다. 전투복과 속옷, 양말, 수건 몇 가지 안 되는 옷들이 세제 냄새를 풍기며 쏟아지는 햇빛을 받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다음은 방청소. 청소할 것도 없는 서 너 평짜리 방이지만 바닥에 카펫이 깔려있어 청소하기가 힘들었다. 카펫을 걷어다가 밖에서 털고 카펫 아래 바닥은 쓸고 닦았다. 책상을 정리하고 쌓인 먼지를 닦았다. 이불을 들고나가 밖에서 털고 빨랫줄에 걸어 일광 소독을 했다. 한 김에 매트리스도 들고나가 햇빛에 말렸다. 왠지 모르게 몸 이곳저곳에 두드러기 같은 반점이 올라와서 혹시 빈대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었다. 재발 뜨거운 햇빛이 세균들을 물리치고 벌레들을 쫓아 주길 빌었다.

햇빛이 빨래 말리고 이불 널기에 너무 좋았다. 이런 뜨거운 햇빛이라면 아무리 색감 좋은 옷들이라도 금방 색이 변할 것 같았다. 이곳 주민들의 입성이 추레한 이유를 또 한 가지 알아낸 것 같았다.

빨래와 청소를 마치고 식당에 들러 홍차 한잔을 타서 비스킷과 함께 들고 뒤뜰로 갔다. 빨랫줄에 널려 바람을 타고 있는 빨래들과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당나귀들, 푸른 잔디밭과 끝없이 청명한 공기 그 청명함을 뚫고 내려오는 거칠 것 없는 햇빛. 그리고 바람. 그 바람을 타고 오는 갓 베어낸 풀 냄새.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내방이 있는 숙소에서 문을 열고 나오면 정면으로 설산 하나가 우뚝하니 서있다. 닐기리 산이다.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다. 7000미터 정도다. 사실 엄청난 높이인데 숙소 앞에서 보면 우리 설악산 정도 느낌이다. 그리고 워낙 8000미터급 고봉들이 많은 네팔이다 보니 7000미터는 그냥 그런가 보다 정도의 느낌이다. 그런데 그 고고한 8000미터급 봉우리 들은 모두 정복되었지만 이 닐기리 봉은 처녀 봉이란다. 교관의 말에 의하면 몇 년 전 마지막으로 정복을 시도했던 일본 산악 원정대가 아직도 하산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산이 워낙 험해 시신을 수색해서 회수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그들은 그냥 산이 되어버렸단다. 그리고는 입산이 통제되어 이젠 갈 수 없는 산이 되어 버렸다. 그런 설명을 듣고 나서 보니 산세가 정말 험하다. 칼날 같은 능선이 수직 절벽을 양쪽으로 거느리고 그 위를 얼음과 눈으로 살짝 덮어 놨다. 멀리서 보기만 하는데도 아슬아슬하다. 이 닐기리 산처럼 입산이 금지되면서 정복을 포기한 산들이 몇몇 있다고 한다.


1-바-1.jpg 닐기리 봉

가장 높은 봉우리들을 정복했다고 세상의 모든 산을 정복한 것처럼 뻐기고 있는 인간들을 보면서 닐기리 산은 어떤 생각을 할지. 그저 산은 거기 있을 뿐인데 그저 오르기만 하고 정복했다 하는 인간들의 허영에 비웃음을 날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숙소를 나설 때마다 만나게 되는 닐기리 산의 표정은 늘 도도하고 맑았다.

그런가 하면 내 방에서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아주 목가적이다. 창문 바로 앞에 풀밭이 펼쳐져있고 그 풀밭 위에는 주로 당나귀와 말이 풀을 뜯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닭 몇 마리가 노닐며 먹이를 쪼고 큰 암퇘지 한 마리가 가끔 나타나기도 한다. 오늘은 특별히 빨랫줄에 빨래들이 더해져 네팔 어느 시골의 가정집 앞마당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며칠 있으며 보니 학교 내 풀밭을 따로 관리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이면 부대 내 잔디밭과 풀밭에 제초 작업을 하느라 예초기를 돌리기 바쁜데 여기서는 그런 모습들을 보지 못했다. 아마도 당나귀들이 그 일을 담당하는 것 같다.

풀의 뿌리까지 뽑아먹는 염소들과 달리 당나귀와 말은 땅 위로 솟은 풀을 이파리만 이빨로 뜯어먹는다. 그래서 그들이 풀을 뜯는 모습을 보면 쉼 없이 입술을 움직이고 세심히 이빨을 놀린다. 아주 바쁘다. 뜯긴 풀들은 아주 짧게 깎은 까까머리 학생의 머리처럼 반듯하고 일정하다. 예초기로 깎은 잔디밭 못지않다. 그리고 당나귀들은 예초기가 닿지 못하는 구석구석의 풀들도 세심히 깎아 놓는다. 고산 지대에서 당나귀들은 짐과 사람을 실어 나르는 셰르파 일 뿐 만 아니라 훌륭한 정원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훌륭한 일꾼도 문제가 있기는 하다. 예초기처럼 기름을 먹지 않으니 매연이 나지는 않는데 여기저기 싸놓은 똥이 문제다. 자연이 순환되는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우리 훈련장 주변에도 여기저기 지뢰를 묻어 놓아서 가끔 고역을 겪게 한다.

그렇게 바깥에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방으로 들어왔다. 부모님과 여자 친구에게 바깥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안부 문자를 넣었다. 다들 아름다운 풍경사진을 좋아했다. 어떻게 찍어도 멋진 이곳 풍경이 나를 대단한 사진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오후에는 몇몇 동료들과 좀솜 마을로 나갔다. 큰 길가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각자 피자와 스파게티, 햄버거, 케이크, 애플파이 등을 시켜 먹었다. 나에게는 부대에서 주는 음식이나 호텔에서 파는 음식이나 모두 외국 음식이지만 미국, 영국에서 온 친구들은 오랜만에 먹는 양식이 아주 흡족한 모양이었다. 나도 야크 고기로 만든 햄버거가 있어서 호기심에 하나 주문했다.

야크 고기는 그냥 구워 먹기는 좀 질겨서 다진 고기로 많이 먹는단다. 그래서 구이용 고기는 안심 같은 아주 연한 부위만을 쓰고 다른 부위들은 다져서 꼬치에 굽든가 패티로 만들어 햄버거로 많이 쓴다고 주인이 설명해 주었다. 맛은 소고기랑 비슷했는데 특유의 냄새가 좀 있기는 했다. 워낙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라 전혀 개의치 않고 맛있게 먹었다.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각자 커피와 음료를 주문해 놓고 톰의 주도로 카드놀이를 시작했다. 카드놀이 이름이 ‘'쉿 헤드'’ 란다. 직역하면 ‘똥 사는 머리’이고 약간 의역하자면 ‘돌대가리’ 정도의 뜻이 될 텐데 여러 사람이 함께 할 수 있고 마지막에 꼴찌 한 사람을 여럿이서 '쉿 헤드'라고 놀린다. 처음에 영국 중위 톰이 제안해서 시작했는데 이후 교육 끝날 때까지 백인 멤버들은 이 카드놀이에 심취해서 틈만 나면 모여 앉아 패를 돌렸다. 나는 사실 그런 게임을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이날을 제외하고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평생 처음 와보는 외국의 오지 중 오지에서 세계 여기저기서 모인 친구들과 도란도란 놀다 보니 새삼 이 광경이 너무 낯설기도 하면서 기분 좋은 행복감이 들었다. 비록 훈련이기는 하지만 이런 특별한 여행이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너보다 선임이야.

교육이 시작된 지 2주가 지났다. 우리는 시간도 좀 지났고 훈련하는 동안 서로 도움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그러면서 서로 격이 없이 대하고 장난도 치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식 군대 문화에 익숙해 있는 나에게는 좀 불편한 모습들이 있었다.

보통 한국에서는 선임자를 만나면 경례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외국군이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배웠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무도 서로 경례를 하지 않았다. 서로 국적이 다른 교육생들뿐만 아니라 같은 미 해병대에서 온 루다와 죠도 서로 하지 않았다. 루다가 후임이고 죠가 선임이었지만 단 한 번도 루다가 죠에게 경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그 둘은 같은 대대에서 근무하다가 왔다.

나중에 해외 근무를 더 하고 나서 그 이유를 알았다. 우리나라에서 경례는 인사로 인식된다. 군인들이 하는 인사. 그러니 아무 때나 보기만 하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례를 하며 ‘식사하셨습니까?’ ‘편히 쉬셨습니까?’ 하고 안부를 묻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외국군에서 경례는 의식으로 인식된다. 정식으로 보고할 것이 있어 상급자를 찾거나 점호, 국기게양식, 출정식, 진급신고 등 각종 의식행사에서 정식 의례에 포함되어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처럼 수시로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이런 이유는 모른 체 나 역시 그런 분위기에 적응해서 선임인 하시브 소령에게 경례를 하지 않았다. 교관들 중 선임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경례를 하지 않는 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계급이 있는 군대인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일주일이 지나는 어느 날 아침 군장 뜀걸음을 마치고 연병장에서 마무리 운동을 하고 있는데 루다와 죠 사이에 말싸움이 붙었다. 둘 다 흥분해서 말을 빨리 하는 데다가 나와의 거리가 멀어서 무슨 사연인지는 몰랐지만 소위인 루다가 선배 중위인 죠에게 계속 쏘아붙였다. 그것도 미국식 쌍욕을 섞어가며. 한국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죠는 어이없다는 표정만 짓고 그대로 끝났다. 멀리서 보기에는 일방적으로 죠가 당하는 느낌이었다. 190센티미터 가까이 되는 거구의 루다가 175센티미터 정도의 죠를 내려다보며 쏘아 대니 그럴 만도 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나는 죠의 기분을 살폈다. 워낙 사람 좋고 유쾌한 친구라 늘 웃고 다녔는데 그날은 기분이 별로였던 것 같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고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나는 가깝게 방을 쓰는 하시브 소령과 스리랑카 중위 마두라와 친했는데 이 마두라가 장난기 많은 친구다. 그러다 보니 가끔 내게 장난을 거는 경우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 정도가 지나쳤다.

교육이 시작되고 열흘 정도 지났을 무렵 나는 하시브 소령과 함께 오후 티타임에 식당에서 차와 비스킷을 먹고 있었다. 식당에는 매튜, 죠, 그리고 루다도 와 있었는데 다들 옆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마두라가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분이 들떠서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모두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차를 가지러 가며 내 옆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꼬마 아이에게 하듯이 내 귀를 잡고는 흔드는 것이었다.

물론 본인은 반갑다는 표현이었겠지만 나는 기분이 나빴다. 친한 사이에서도 하기 힘든 짓을 감히 중위가 대위에게 한 것이다. 그래서 마두라가 내 귀를 잡고 흔드는 그 순간 반사적으로 그의 손목을 잡아 꺾고는 식당 테이블에 마두라를 눕혔다. 그리고 ‘나는 네 선임이다. 다시는 그러지 마라’라고 눈을 보며 한마디 했다. 순식간에 제압당한 마두라는 꺾인 손목이 아파 반항은 하지 못하고 영어로 욕을 날렸다. 나는 잡은 손목을 다시 한번 힘껏 꺾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마두라의 표정을 확인했다. 마두라는 더 이상 반항하지 못하고 내 눈을 피했다. 나는 그때야 내 눈을 피하는 마두라를 놔주고 식당을 나왔다. 내 뒷모습에 꽂히는 여러 친구들의 눈길을 의식하면서.

이 일이 있은 후부터 동료들이 나를 대하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내 자격지심이었는지 모르겠으나 그간 덩치 작은 동양인인 나를 무시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런 분위기가 없어졌다. 그리고 마두라도 이후부터는 꼬박꼬박 ‘박대위 님’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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