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고고도 산악전 교육(2)

by 박소령

좀솜 산악전 학교

1-다-1.JPG 네팔 육군 산악전 학교

다음날은 숙소에서 쉬다가 교육생들끼리 최종 훈련 준비를 위해 외출을 나갔다 왔다.

짝퉁 오클리 선글라스를 엄청난 흥정 끝에 구매한 하시브 소령과는 달리 나는 구경만 했다. 필요한 물건은 이미 준비해 왔고 좋은 물건을 싸게 사는 거라면 모르겠으나 좋지 않은 물건은 아예 사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다 함께 모여 앉아 마신 히말라얀 자바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커피는 거의 입에도 대지 않았었는데 평생 처음으로 커피가 맛있다는 생각을 해본 순간이었다. 이후 수없이 커피를 마셔본 지금도 가끔 그 커피 맛이 생각날 정도다.

우리가 외출을 다녀온 사이 부대에는 파키스탄에서 대위 한 명, 스리랑카에서 중위 한 명이 더 합류했다.

아직 완전체가 되지 않았지만 나머지 인원들은 다음날 공항에서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드디어 좀솜으로 이동하게 됐다.

모닝 티와 함께 기상해서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출발지는 카트만두 공항이었다. 전에 입국할 때는 민항기들을 사용할 수 있는 민간 터미널로 왔지만 이번에는 군용기를 타고 내리는 군용 터미널로 갔다.

그곳에 이미 미 해병대에서 소위 한 명, 중위 한 명, 영국 구르카 연대에서 대위 한 명이 더 와 있었다. 드디어 12명 완전체가 됐다.

수송 헬기가 도착하기 전 간단히 차를 마셨다. 우리나라 같으면 간단하게 종이컵에 믹스 커피가 나왔을 텐데, 이는 좀 빠졌을지언정 흰색 찻잔에 끓인 홍차가 나왔다.

차를 마시며 새로 만난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이때 미 해병대 중위 죠와 술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다. 미국 켄터키가 고향이라는 죠는 열린 생각과 겸손한 태도, 밝은 성격에 호감 가는 친구였다.

드디어 수송헬기가 도착했고 우리 짐과 함께 사람들도 같이 실렸다. 네팔 육군의 구형 수송 헬기는 짐과 사람을 정확히 구분해서 적제 할 정도의 형편이 못 되었다. 그나마 좌석에 있는 안전벨트도 성치 않았다. 어차피 추락하면 전원 사망할 확률이 높은 헬기 사고의 특성상 안전벨트는 원래 필요 없는 물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우리 교육생 모두는 일단 미지의 여정과 모험에 다소 들떠 안전벨트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들 각국 특수부대 출신의, 모험과 위험을 구분하지 못하는 열혈남아들 아니던가.

한참을 날던 헬기 밖으로 드디어 네팔의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에 흰 만년설을 쓰고 있는 고산들. 그 높고 성스러운 산들을 헬기에서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마치 신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더욱이 고도가 높아 희박하면서도 청명한 공기가 그런 기분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꿈속에서 지고의 신이 되어 자신이 만든 낙원을 내려다보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나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네팔의 산에 매료되어 버리고 말았다.

1-다-2.JPG 헬기에서 내려다본 네팔의 산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던 신들의 정원에 사람의 마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한 곳에 헬기가 착륙했다.

좀솜은 네팔 안나푸르나 인근에 있는 산악 마을로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에도 포함되어 우리나라 사람들도 제법 지나다니는 곳이다. 인구도 얼마 안 되는 작은 마을 같은 곳인데 이곳에 비행장이 있어서 트레킹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모이고 그로 인해 작은 호텔과 식당들이 생겨 제법 북적이는 곳이 되었다.

헬기는 민간 비행장이 아닌 우리가 훈련하게 될 산악전 학교의 헬리포트에 착륙했다. 우리가 도착하자 부대의 간부들과 병사들이 마중 나왔고 모두 함께 짐을 내렸다.

1-다-3.JPG 헬기에서 내린 동료들

좀솜의 첫인상의 주인공은 강렬한 햇빛이었다. 해발고도 2000m가 넘는 곳이다 보니 기압이 낮고 공기가 희박했다. 또 하늘과 가까운 만큼 태양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날씨도 너무 맑아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청명함이 온 주위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좀솜은 해발 고도가 2000m가 훨씬 넘는 곳이었다. 카트만두가 1300m 정도였으니 1000m 정도를 더 올라온 셈이었다. 체질이 약한 사람은 이 정도 고도만 되어도 고산병 증세를 느끼기 시작한다고 했는데 아직 우리 가운데 아무도 고산병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각자 숙소를 배정받고 짐을 풀었다.

나와 하시브는 화장실과 샤워 실을 공유하는 나란히 놓인 방을 쓰게 되었다.

방에는 침대 두 개와 책상 하나가 전부였고 책상 앞에 암벽등반 훈련 교육장이 내다보이는 창문이 있었다. 창문을 여니 맑은 네팔 산정의 공기와 맑은 햇빛, 짧게 자른 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입교식을 위해 모두 강의장에 모였다.

강의장 앞에는 손님이 왔을 때 정화의 의식으로 피우는 향이 입구 양쪽 기둥에 놓여 있었고 교육생들의 출신 국가 국기들이 연단에 세워져 있었다.

간단한 부대장의 인사와 입교 신고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우리 12명은 공식적으로 한 팀이 되었다.

이어서 생활 수칙과 교육 과정에 대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었다.

교육 일정은 전체 6주. 그중 4주는 이곳 산악전 학교에서 암벽등반 및 레펠 하강을 훈련하고 1주는 빙벽등반, 1주는 고고도 등반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이곳 산악전 학교에서의 일과는 아침 06시 기상, 아침 운동으로 15kg 군장 뜀걸음 및 기초 체력단련을 1~2시간 하고 아침 식사 후 9시부터 점심 전까지 암벽등반 교육을 실시한다. 오후에는 로프 사용법이나 사고 발생 시 조치, 환자 구조법 등 기타 과목을 훈련한 후 일과가 끝났다.

대강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곧바로 처음이자 마지막 이론 강의가 두 시간 이어졌고 그날 일과는 끝이 났다.


암벽등반 훈련

아침 6시에 기상해서 각자 지급받은 15kg 군장을 들고 집합했다. 첫날이라 그런지 잠을 잘 못 자서 몸이 무거웠다. 하지만 곧 몸을 풀고 좀 뛰고 나면 다시 가벼워질 것 같았다.

이어 점호 겸 체력단련 교육 신고가 있었다. 교육생들이 일렬로 서 있으면 부사관 교관 중 선임이 앞에 나가 대위급 장교 교관에게 신고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제식 동작이 좀 웃겼다. 미군의 영향을 받은 우리 군의 동작이 간결하다면 네팔 군의 동작은 좀 과장된 편이었다. 특히 이동하거나 방향을 바꿀 때 우리는 양발 뒤꿈치를 붙이며 절도를 표현하는 반면 네팔 군은 무릎을 허리까지 수직으로 들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내리면서 발바닥으로 땅을 크게 굴러 절도를 표현했다. 그리고 경례 동작도 우리는 손바닥이 보이지 않게 손날을 수평으로 만드는 반면 네팔 군은 손바닥이 정면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거기다 더 이상하게 보였던 것은 보고 하는 내내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글쎄요’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으로 연신 고개를 까딱까딱하는데 사실 이 동작은 인도 네팔에서는 ‘Yes’의 의미로 우리나라에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하지만 그때는 미처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해서 뭔가 잘못 돼 서로 심각하게 얘기하는 걸로 보였다. 나중에 해외 파견 생활을 몇 번 더 하고 보니 제식 동작 역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외에도 영국 식민지였던 국가들의 군 제식동작이 네팔 군과 비슷했다. 잘은 모르겠으나 아마도 영국 식민지 시절 전파된 영국식 군 문화가 그 유례인 것 같았다.

사실 외국문화를 접하며 우리의 것과 비교하여 다른 점을 보고 ‘웃기다’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데 아직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깊지 않은 편협한 마음에 좀 ‘웃기게’ 보았다.

점호 이후 간단한 몸 풀기와 함께 군장 뜀걸음이 시작되었다. 군장 뜀걸음은 산악전 학교에 입교한 학생들은 모두 하는 것 같았다. 우리 외국인 과정 외에 네팔 레인저 과정이나 코만도 과정에 편성되어 입교한 네팔 군인들도 모두 군장을 매고 각 과정별로 함께 뛰었다.

사실 뜀걸음이라면 자신 있었다. 한국군의 패기와 끈기. 악과 깡. 이런 것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가 체력단련, 그중에서도 뜀걸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간 이 네팔 고고도 산악전 과정에서 대부분의 한국 교육생들은 뜀걸음 최우수상을 받았다.

특히 특전사에서 군장 구보는 25kg 군장을 매고 5km 거리를 기준으로 측정을 해왔기 때문에 크게 부담이 없는 과목이었다. 그래서 첫출발은 가볍게 시작했다. 뜀걸음 코스는 학교 정문을 나가 좀솜 주도로를 따라 옆 동네까지 왕복 10km 정도였다.

1-라-1.JPG 아침마다 하는 군장 구보

그런데 출발하고 10분 정도가 지났을 때쯤 호흡이 턱 막혔다. 별로 빨리 뛰지도 않았고 아직 무리가 오기는 이른 시점이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하시브 소령과 미 해병대 출신 교관들도 마찬가지로 괴로워 보였다. 이곳이 고산 지역이라는 것을 처음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시계로 기압을 체크해보니 고작 700 hpa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보통 1000 hpa 정도인데 그보다 한참 부족한 것이다. 교육생들의 적응 상태가 안 좋다고 생각했는지 인솔하는 교관이 속도를 늦춰 주었다.

약 10km 정도의 뜀걸음 마치고 영내로 돌아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간단하게 체조와 스트레칭을 하고 아침 체력단련이 끝났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암벽 등반 교육이 시작됐다. 전날 지급받은 장비들을 챙겨 교육장으로 모였다.

처음엔 하네스라고 부르는 안전벨트 착용 방법부터 각종 장비 사용법을 배우고 가장 쉬운 난이도의 암벽 등반에 도전했다. 다들 무난히 통과. 그런데 덩치가 큰 미국 교육생들이 좀 불안했다. 발이 커서 암벽화도 지급받지 못했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그런지 아무래도 작고 날렵한 나와 스리랑카 중위 마두라 보다는 불리해 보였다.

1-라-2.jpg 장비를 착용하는 동료들
1-라-3.JPG 시범을 보이는 교관들

그래도 다행히 모두 함께 중급 코스로 이동하면서 첫날 암벽 훈련이 끝났다.

오후에는 매듭법 교육이 있었다. 나는 오전에 했던 장비 사용 요령이나 오후에 하는 매듭법 교육을 이미 특전사에 있으면서 다 배웠던 터라 쉽게 이해했다. 그런데 아직 경험이 없는 미 해병대 중위 죠와 소위 루다가 애를 먹고 있어서 오지랖을 발휘, 옆에서 좀 거들어 줬다. 덕분에 몇 번 말을 섞지 않았던 루다와도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첫날 교육이 모두 끝났다.

저녁시간엔 다들 방에서 노트북에 저장해 온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로비에서 TV를 봤다. TV 방송은 인도 케이블 방송이어서 힌디어나 영어로만 나왔다. TV 프로그램의 내용은 모르고 인도 여자들이 아름답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저녁시간을 보내야 할지 방법을 구상해야 했다.


다시 군장 뜀걸음과 체력단련으로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둘째 날부터는 중급 난이도의 암벽에 매달리게 되었고 차츰 불합격자가 나왔다. 다행히도 나는 한 번에 합격했고 덕분에 잘난 척하면서 동료들을 돕는 역할을 했다.

‘등반 루트는 이렇게 저렇게 하고 여기까지는 쉬우니까 빨리 올라갔다가 이쯤에서 잠시 쉬면서 팔을 풀고 다시 저기를 통해서 올라가’하는 식으로 알려 주었다. 하지만 동료들은 막상 벽에 붙어 있으면 시야도 좁아지고 마음이 조급해지는지 잘 따라 하지 못했다.

뒤이어 기본 레펠 훈련이 이어졌다. 나는 특전사 그중에서도 여단 특임대에 있으면서 대테러 훈련을 주로 했기 때문에 레펠은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그래서 또 역시 가볍게 패스. 다만 그동안 나는 레펠 훈련을 11m 레펠 타워에서 하거나 3층 정도 높이의 건물에서만 해 봤는데 자연 암벽에서 하자니 발을 대는 면이 불안해서 살짝 긴장이 되긴 했다.

레펠 과정을 일찍 패스한 나는 역시 또 오지랖을 발휘해서 동료들에게 방법을 알려 주었다.

오후에는 수업이 없었다. 오후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만 한다고 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죠와 하시브 그리고 나는 동네 산책을 나갔다. 아침나절에 군장을 매고 뛰던 때와는 다른 좀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큰 길가에는 트레킹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호텔들과 등산 용품점이 몇 군데 있었고 그 근처에 조그만 기념품점이 또 있었다.

주민들을 위한 상점들은 잘 보이지 않았는데 큰길을 살짝 벗어나 비교적 한산한 곳으로 가보니 좌판을 깔아놓고 옷가지와 신발, 가방을 파는 행상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군장 구보를 뛰면서 보면 큰 길가에 과일이나 채소 같은 식품류를 내다 놓고 파는 노점이 서는데 오후에는 잡화류를 파는 노점이 교대로 나오는 모양이었다.

분명 네팔 사람들의 마을인데 주민을 위한 것보다는 관광객들을 위한 상권이 발달해 있는 것을 보니 네팔이라는 나라의 경제가 오로지 히말라야에 의지하고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우리는 커피를 한잔 할 생각으로 큰 길가에 호텔에 딸린 식당이자 커피숍이자 기념품점을 겸하고 있는 가게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주문해 놓고 호텔 내부를 구경했는데 사실 이름이 호텔이라 거창하게 생각되지만 삼층으로 된 목조 건물에 침대만 놓여있는 방과 화장실이 전부인 호스텔 같은 곳이었다. 방 크기가 2인실부터 8인실까지 있는 것 보니 단체 관광객들도 많이 오는 모양이었다.

비록 호텔 시설은 보잘것없었지만 네팔 고산 지역 마을에 나무로 지어진 건물은 동네 분위기와 어우러져 운치가 있었다. 도시의 화려하고 깔끔한 콘크리트 호텔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자유롭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며 기념품도 둘러보았는데 특히 이곳에서 ‘지’라고 부르는, 동그란 문양이 박힌 돌이 눈에 띄었다. 보통 검은색 돌에 흰색 동그란 문양이 자연적으로 박힌 돌을 실에 꿰어 목에 걸 수 있도록 펜던트처럼 만들어서 파는데, 등산하는 사람들은 안전을 비는 의미로, 티베트의 스님들은 지혜를 보는 눈으로 여겨 몸에 지닌다고 한다.

특히 자연석을 다듬은 것은 엄지손톱보다 작은 돌 하나에 가격이 100달러를 부르기도 하니 관광지 상점의 바가지를 감안하더라도 비싼 편이었다. 그 외에 유리에 인공적으로 색깔을 넣어 만든 것도 있는데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 그래서 나는 부피도 작고 군번줄에 꿰어 걸면 훈련 때도 지닐 수 있겠다 싶어 비싼 자연석 말고 값이 싼 인공 ‘지’를 하나 샀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는 아침에 뛰는 군장 뜀걸음 코스 반대 방향인 위쪽 마을로 방향을 잡았다.

좀솜 시내에는 강이 하나 흐르는데, 이 강은 고산의 만년설이 흘러 강물이 되어 흐르는 것으로 여름이라 유량이 많아 물살이 셌다. 그 강 위로 출렁다리가 놓여 있어 그 위를 지나면서 아래를 보니 물 빛깔이 만년설 녹은 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탁하고 검은색이었다. 이런 고산지대에 공장이 있을 리는 없었고 왜 물 색깔이 그런가 했더니, 고산 지대라 나무와 풀이 없는 관계로 물이 흐르면 주변에 있는 돌과 토양을 전부 깎아내고 그 깎인 것들이 물에 섞여 물 색깔이 탁한 것이었다.

우리는 검은 좀솜의 강을 따라 좀 더 위로 올라갔다. 강가에는 멱을 감는 아이들과 그 검은 물에도 빨래를 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 입성이 추레하고 옷가지들이 지저분하다 했더니 아마도 흙모래가 섞인 강물에 빨래를 해서 그런가 싶었다.

또 길을 걸으며 신기하게 보았던 것들 중 하나가 소들이다. 이미 카트만두에서 길가에 노는 소들을 많이 봤지만 여기 소들은 카트만두 소들보다 유난히 작았다. 새끼는 진돗개만 하고 다자란 것들도 셰퍼드나 골든 레트리버 같은 대형 종 개만 했다. 얼핏 드는 생각에 고지대라서 소들이 그렇게 작은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도 작은 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나중에 해발고도 4000m 이상의 진짜 고산지역에서 어깨 높이가 2m 넘는 야크를 눈으로 보고 바뀌게 되었다. 아무튼 이렇게 작은 소들을 보니 어렸을 적에 가지고 놀았던 레고 듀플로 블록 장난감에 있던 소 모형이 생각나서 마음속으로 ‘레고 소’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레고 소들도 여기저기서 쓰레기를 주워 먹고 있었다. 영양실조인지 여기저기 털도 빠져 있었고 작은 덩치마저도 영양실조 탓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야위어 있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 소를 종교적으로 숭배하기는 한다지만 잡아먹지도 가축으로 키우지도 못하니 이곳 사람들에게 소는 경제적으로 가치가 없는 동물이다. 그렇다 보니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차라리 가축으로 키워졌다면 자유롭지는 못하되 잘 먹고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소는 무관심과 숭배의 사이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이 많은 소들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한의 고산지대에서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죽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 단골 카페 주인에게 물었더니,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겨울이 되면 눈이 너무 많이 오는 나머지 살 수가 없어서 따뜻한 저지대로 내려가는데 이때 호텔이나 레스토랑 같은 주요 시설, 재산들을 지키기 위해 일부 사람들이 남는단다. 이때 겨울을 날 수 있을 만큼의 식량을 창고에 저장해 두는데 유리걸식하는 소들을 위한 여물도 함께 마련해 놓고 거두어 먹인다고 했다. 소를 숭배하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강을 따라 올라가며 동네 구경을 하고 있는데 레고 소들 옆으로 야크와 소의 혼종인 조 때가 지나갔다. 네팔이나 티베트에서는 야크나 이 혼종인 조를 키워서 고기와 우유를 얻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성 들여 키우는 조는 야크의 피를 받아 그 모습이 위풍당당하다. 그런 멋진 조 때가 영양실조로 괴로운 작은 소들과 너무 극적으로 비교되어 아이러니한 느낌이 들었다.

위풍당당하고 멋지게 자랐지만 곧 도축이 될 조 때와 비록 영양실조로 추레하지만 자유롭게 천수를 누리게 될 소들.

그렇게 위풍당당한 조 때를 따라 산책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부대로 복귀했다.


그다음 날도 아침 군장 뜀걸음을 시작으로 암벽등반 교육이 이어졌다. 군장 뜀걸음 코스를 바꿔 이번에는 동네 뒷산을 올랐다. 해발고도를 조금씩 높여 고산 등반에 적응하도록 하는 목적이 있었다. 동네 뒷산에는 작은 저수지가 있었는데 물이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맑은 날씨와 강한 햇빛이 반사된 저수지 물빛이 예뻤다.

1-라-4.jpg 미 해병대원 죠

암벽 등반 코스도 좀 더 난이도가 올라갔다. 우리는 오버행 코스를 처음으로 도전했는데 그 오버행 코스가 얼마나 오랫동안 한 가지 루트만 공략되었던지 가장 중요한 홀드 부분이 닳고 닳아 암벽이 반들반들 해져 있었다. 나는 아무리 붙잡으려고 노력해도 미끄러지는 손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이 오버행 코스는 우리 중 미 해병대 산악 교관인 로저만 등반에 성공했다. 키는 185 정도에 팔다리가 길면서도 온몸이 근육질인 로저는 암벽등반 과목에서 우리 중 단연 앞서고 있었다.

오후 수업까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때 다시 모였다. 학교장님 주관으로 입교 환영 파티가 있었기 때문이다. 파티는 장교 클럽 홀에서 학교장님 이하 우리 외국인 과정을 지도하는 전 교관들과 교육생들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간단하게 위스키나 음료를 마시는 자리였다.

학교장님의 환영사와 학생대표 하시브 소령의 답사를 시작으로 저녁 식사가 제공되었고 이후 학교장님의 건배 제의와 함께 술을 마시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매튜와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위스키 잔에 얼음을 채워 홀짝 거리며 마시거나 처음 보는 물담배 파이프를 동료들과 돌려가며 빨아보거나 하고 있었다.

삼겹살 구우면서 다소 소란스러운 분위기로 떠들고 건배하고 취하도록 마시고 하는 한국식 회식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는 다소 따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공식 파티가 끝나고 교육생들과 교관들만 따로 밖으로 나갔다. 인근 호텔 카페에서 다시 파티를 열었다.

첫 번째 파티보다는 훨씬 분위기가 좋았다. 공식적인 공치사도 없었고 우리끼리 농담도 하고 다 같이 아는 노래도 불렀다. 특히 미국 레인저 출신의 상사 해쉬가 분위기를 주도했다. 농담도 잘하고 훈련, 전투 경험도 많은 친구라서 다들 좋아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선생님 흉내 내는 학생이 꼭 있던 것처럼 우리 반에도 교관들 흉내 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역시 해쉬였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교육과정이었는데 언제 그렇게 분석을 했는지 해쉬가 교관들 흉내 내는 것을 보고 우리 모두 배꼽 빠지게 웃었다. 해쉬가 흉내 내는 당사자들도 숨을 못 쉴 정도로 웃었다.

그렇게 1차보다 훨씬 분위기 좋은 2차를 마치고 자리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30분이 지나도록 카페를 떠날 수 없었다.

계산 때문이었다.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총액을 1/n 해서 나눠 내거나 얼마 안 되는 돈 같으면 선임자가 내거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한국식 문화고 우리 외국인 친구들은 각자 마신 음료나 맥주 값을 내려고 계산대 앞에 줄을 서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학생들에게 초대받아 온 교관들 음료 값은 학생들이 내주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또 계산하는 카페 주인은 왜 그렇게 셈이 느린지. 돈을 지불하는 데에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그냥 내가 사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진짜 오지랖인 것 같았다.

또 계산서에 찍힌 맥주와 음료의 양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사나이 중에 사나이들 17명이 모여 파티를 했는데 고작 맥주 5병과 콜라 10병 커피 5잔이 전부였다. 그중 맥주 두병은 내가 마신 것이었다. 다들 특수부대 출신에 몇몇은 전투 경험이 있는 남자 중에 남자들이었다. 종교적 이유로 금주하는 무슬림 친구 두 명은 그러려니 했지만 해쉬, 죠, 루다, 매튜, 로저, 톰 같은 미국, 영국 친구들마저도 콜라라니. 영화에서 봤던 마초 특수부대원들은 그저 영화 속 인물일 뿐이었던가 싶었다.

그렇게 해외에서 경험한 첫 번째 파티는 조촐하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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