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철구 May 17. 2023

여행을 시작하며

23년 4월 6일. 너무 흔하지만 나의 위시리스트 중 하나인 유럽여행을 떠난다.


파리에서 일주일,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포르투에서 일주일, 남프랑스 니스에서 일주일, 이탈리아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돌아오는 일정이다. 첫 파리에서의 일주일은 곧 군대 입대를 앞둔 큰 아들과 동행한다.


짧지 않은 한 달의 여행 기간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애써 무엇을 많이 하지 않아야지 생각하며 비행 편과 숙소만 예약을 해 두었다. 이국적인 분위기와 환경에서 마치 휴식 같은 휴가 콘셉트로!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여행날짜가 다가올수록 너무 준비 없는 상태가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먼 곳에 가서 동네 주민처럼 숙소 주위만 맴맴 돌며 지내다 오는 건 ROI가 너무 적은, 조용한 휴식이라면 제주도나 강원도로도 충분하지 싶다는 생각에 미치자 출발 한 달여를 남겨두고는 ‘아무것도’에서 ‘무언가’ 할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여행 블로그와 카페, 여행사 홈페이지 등을 보며 한 달의 일정표를 채워갔다. 원준이와 같이 보내는 파리의 일주일은 파리와 파리 근교의 투어로 빼곡하게 일정을 채웠다. 리스본과 포르투에서는 반 정도 계획을 채우고, 남프랑스의 니스는 숙소와 렌터카를 예약한 것 말고는 아무 계획이 없다. 이탈리아에서의 일주일은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다시 로마로 돌아오는 어수선한 일정이라 계획이 꼼꼼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여행은 각종 연결로부터 멀어져서 조금 외로워지고 싶다. 연결되지 않은 곳, 온전히 혼자 인 곳,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시간을 맞고 싶다. 하나 더 바라는 게 있다면 나를 조금 더 잘 바라볼 수 있기를. 이국적인 환경에서 방랑자가 되어 나의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생각하려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연말연시와 이어져 많은 약속이 있었다. 기타를 배우고, 골프도 이왕 하는 거 좀 잘해볼 요량으로 레슨을 받았다. 일주일에 두 번 필라테스와 웨이트 트레이닝을 받고, 세 번 정도 혼자서 운동을 했다. 지인들과 산행도 하고 더 자주 골프를 쳤다. 어수선하고 부산했던 시간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차분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출발 하루 전, 거실 한가운데 한 달간의 짐들을 펼쳐 놓고 빠진 게 없는지 확인했다. 군대에서 훈련을 앞두고 생존과 전투에 필요한 물품이 빠짐없이 챙겼는지 확인하는 군장검사의 효용성이 생각났다. 제대한 지 무려 30년이 지났는데 군장검사가 생각나다니.


어제부터 이어진 비가 아침까지 보슬보슬 내린다. 공항 근처에 오니 보슬비는 안개비로 변했다.


파리까지 비행시간이 상당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인지 항로가 바뀌면서 보통 파리까지 걸리는 시간보다 2시간 10분이 늘어나 14시간 20분을 가야 한다. 이코노미석으로 14시간을 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긴 하다. 괜찮다. 아이패드엔 넷플릭스에서 다운로드한 영화 여러 편과 스무 살 초반에 읽었던 이문열 씨의 <사람의 아들>이 있다.


공항버스를 기다리며




파리에 도착하니 저녁 6시


14시간의 비행에 지쳐 숙소까지 공항 택시를 탔다. 공항택시는 정찰제라 숙소까지는 55유로로 두 명이 버스와 우버를 갈아타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에펠탑이 바로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0층의 숙소에 원준이가 아쉬워하는 것 같다. 전망이 좋았다는 소개를 본 것 같이 에어비앤비 소개 페이지를 다시 보니 건물의 '안 마당'이 잘 보이는 방이라고 적혀 있었다.


파리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지저분했다. 숙소가 있는 16구는 서울의 청담동 같은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거리에 수거 안 된 쓰레기통이 쌓여 있고, 식당에서 준 물병이 너무 지저분해서 깜짝 놀랐다. 유럽의 물이 석회질이라 물병에 얼룩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해가 늦게 지는 파리의 환한 저녁 길을 걸어 구글맵의 평점 좋은 프랑스 레스토랑을 찾았다. 케밥 비슷한 요리와 맥주를 마시며 파리에서의 일주일 잘 지내자며 아들과 건배를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와인과 음식류들을 샀다.


식사 값을 지불하려 내민 신한 JCB카드가 승인이 거절되었다. 이후에도 곳곳에서 거절되었다. 지갑에 빡빡하게 들어있던 여러 종류의 카드 중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를 대비해 신한 JCB카드와 아내가 만들어 준 BC VISA카드 두 장만 가지고 왔는데 주력인 신한카드가 안되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JCB카드도 VISA, MASTER처럼 글로벌 체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일본에서 만든 카드 가맹 체인이라 유럽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는 카드였다. 그래도 꿋꿋하게 JCB카드를 먼저 내밀었지만 일본 SPA브랜드인 유니클로에서만 유일하게 사용이 가능했다. 안 되는 줄 알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JCB카드를 내밀고 거절당하길 반복하니 아들이 내게 집요하다고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